주간동아 888

2013.05.20

‘비트코인’이 도토리 수준이라고?

실물 없는 디지털 화폐 폭발 일보직전…쉽고 빠른 거래 장점 수두룩

  • 김진화·한국비트코인거래소 Korbit 파트너

    입력2013-05-20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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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의 성장은 현저히 느려질 것이다. (중략) 2005년 즈음이 되면 인터넷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팩스기기보다 대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

    예측이란 본디 위험한 것이다. 특히나 이런 과감한 예측이라면 더욱 그렇다. 구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98년 나온 발언인 걸 감안하면 다소 민망해질 지경이다. 2005년이 현실이 된 시점에 상장한 지 1년도 안 된 구글의 시가총액은 타임워너를 넘어버렸다. 전 세계 미디어기업 가운데 가장 비싼 기업이 된 것이다.

    이 예측의 주인공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다. 그렇다고 그의 학문적 성취와 역량까지 폄하해선 곤란하다. 이것만 빼면 그의 예측은 상당수 맞아떨어졌으니 말이다. 문제는 자기 분야를 넘어서까지 신통한 능력을 발휘하려는 과욕에 있을 것이다. 오래된 크루그먼의 ‘굴욕’을 되새김질한 이유는 그가 다시 유사한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하이테크 관련 예측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그 대상이 인터넷만큼이나 세상을 확 바꿀 것으로 예상돼 관심과 경계의 대상이 되는 디지털 가상화폐여서 더욱 그렇다.

    참여자 모두가 관리 운영

    올 들어 미국과 유럽을 뒤흔든 비트코인은 태어난 지 4년 된 디지털 가상화폐다. 만 4년을 채운 1월 이 신생화폐 가치는 13달러 정도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4월 중순 266달러까지 치솟았다. 곧바로 조정에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100달러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며 안착하는 상황이다. 미국 주요 언론과 금융시장이 깜짝 놀라며 주목한 건 당연한 일이다. 바로 그때 크루그먼이 다시 펜을 들었고, 4월 14일자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비트코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암울한 미래를 예측했다.



    그는 일단 비트코인이 기존 페이팔이나 신용카드 같은 전자결제수단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것이 가진 반사회적 성격으로 인해 화폐로 자리 잡을 수 없으리라 예견했다. 이를 뒷받침하려고 기존 화폐가 문제없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의 이번 예측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잘못된 사실과 정보에 기초한 것이어서 1998년만큼이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먼저 비트코인은 실물이 없는 디지털 화폐지만 기존 전자화폐와는 크게 다르다. 중앙은행은 물론, 어떤 중앙통제적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화폐 발행과 관리가 이뤄진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P2P(컴퓨터 간 동등한 수평적 연결)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상에서 수학적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참여자 모두가 관리, 운영할 수 있게 설계했다. 현금을 쓸 때처럼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도 일반 전자금융거래와 다른 점이다. 향후 100년간 발행되는 화폐량이 미리 정해졌다는 사실도 특이하다.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는 방책이다. 이렇게 보자면 금과 아주 유사하다. 실제 발행도 금을 캐는 것처럼 컴퓨터를 이용한 마이닝(채굴)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 금광처럼 실물이 채굴되는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을 통해 중앙기관이 부재한 데도 거래기록을 안전하게 승인, 관리한다. 아울러 해킹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네트워크를 지키는 임무도 수행하게 된다. 관리 유지에 기여한 데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새로 발행된 화폐가 장비와 시간을 사용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시스템이다.

    금보다 뛰어난 점은 세계 어디에 있든 쉽고 빠르게, 인터넷을 통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래 수수료를 거의 들이지 않고 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편지에 로켓을 단 것을 e메일이라고 해보자. 오죽하면 영어 표현에 달팽이(snail)가 들어갈 정도로 느리던 우편서비스 수요의 상당수를 순식간에 전달되는 e메일이 대체했다. 이와 유사하게 금에 로켓을 달았다고 해보자. 이게 바로 비트코인이다. 실제로 돈을 주고받는 방법이 e메일을 보내는 것과 유사하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 간 직접 거래가 이뤄진다.

    ‘비트코인’이 도토리 수준이라고?

    한국비트코인거래소 홈페이지(왼쪽). 비트코인의 달러 대비 가치 그래프.

    타임지 “가장 완벽한 돈”

    전화기에 날개를 단 게 휴대전화고, 다시 여기에 컴퓨터를 장착한 게 스마트폰이라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금에 날개를 달고 여기에 컴퓨터까지 장착한 게 바로 비트코인이다. 그만큼 쉽고 빠르게 타인과 거래가 가능하며 여러 가지 스마트 기능까지 추가해 사용할 수 있는 화폐란 뜻이다.

    이렇다 보니 ‘타임’지 같은 전통 매체에서 일찍부터 비트코인을 소개해왔고, “추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완벽한 돈”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포브스’지의 경우 얼마 전 아예 기자 한 명을 투입해 일주일간 비트코인만으로 살아보게 했으며, 그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장문의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다행히 기자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훌륭한 르포기사를 탈고했다. 인터넷 등장 초기에 나왔던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니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세계 유수 언론들은 이미 비트코인에 대한 리포트와 분석에 여념이 없다. 어쩌면 비트코인을 가장 경계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유럽중앙은행조차 지난해 9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면서 논쟁적인 가상화폐 제도”라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들의 반응은 더 뜨겁다. 유니온 스퀘어, 와이컴비네이터 등 명성과 실력을 갖춘 투자자들이 적극 나선다는 점에서 더 관심을 끈다. 이들은 비트코인의 등장이 인터넷이 등장할 때와 유사하다며 관심을 표명했고, 5월 들어 사상 최대인 500만 달러짜리 투자가 성사되는 등 구체적인 투자 러시로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느낌이다. 국가의 권위를 매개하지 않는 돈이 어떻게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돈의 본질이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 기능성과 다른 사람들이 받아줄 것이라는 신뢰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금속화폐와의 연결고리가 최종적으로 끊어진 1971년에도 사람들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지 않은 종이화폐에 불안해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비트코인에 대한 실험이 정말 혁신적인 이유는 그 자체가 오픈소스로 공개돼 또 다른 가상화폐 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글로벌 차원의 가상화폐가 등장할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기존의 국가단위 화폐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아는 경제 양상은 혁명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애플이라는 한 회사가 가져온 파괴적 혁신이 전 세계 이동통신사들을 어떤 상황에 놓이게 했는지를 보라. 그것이 경제 기초가 되는 화폐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스케일이 다른 얘기가 된다.

    그런데도 한국은 놀랄 만큼 조용하다. 비트코인을 싸이월드 도토리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도 아이폰을 배척하던 나라가 이젠 ‘애플리케이션’(앱)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 벤처가 아닌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불편한데, 가상화폐 트렌드에서도 한참 뒤처지다가 뒤늦게 휩쓸리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국의 비트코인 프로그램 다운로드 순위는 55위 정도에 머문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라는 우리 경제의 두 가지 화두가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비트코인으로 촉발되는 가상화폐 분야다. 기존 금융 분야의 모든 비즈니스 모델을 넘어서는 다양한 응용 비즈니스 가능성이 얘기되고 있어서다. 새로운 비즈니스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는 역동적인 생태계라는 뜻이다. 금융에 대한 접근이 쉽고 평등해지는 경제민주화 요소도 지니고 있다. 기존 화폐가 무분별한 발행과 인플레이션을 통해 경제를 멍들게 하고 환율정책 또한 대기업에 이익이 됐다는 점은 이제 상식적인 내용이다. 비트코인에는 적어도 그런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 자체가 희박하다. 물론 익명성의 어두운 측면인 세금 회피 소지나 암시장의 활용 개연성 등 부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이상 빨리 경험하고 대처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가상화폐 새로운 역사 시작

    개인 차원에서도 이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금융은 정보 비대칭성을 바탕으로 지식 유무에 따라 계층을 나누는 힘을 지녔다. 금융위기 당시 믿었던 금융기관들이 신용부도스와프(CDS)며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낯선 상품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연기금까지 기만한 일을 떠올려보라. “아는 것이 힘”이라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구는 금융이 지배하는 시대에 절대적 명제가 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이 이번에는 제대로 맥을 짚었는지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기술적 상상력을 기존의 힘으로 억누르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실패로 귀결됐다는 게 우리가 하이테크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케인스는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는다”고 말했는데, 충분히 ‘장기적으로’ 지속돼온 정부와 중앙은행의 통화독점 체제야말로 수명을 다한 게 아닐까. 기술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등장한 가상화폐가 화폐의 경쟁 체제라는 새로운 역사의 서막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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