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7

2013.05.13

‘거북이 스윙’ 만사 OK 굿샷

느림의 미학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3-05-13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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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장타 치기를 포기했다면 인생을 포기한 것과 같다. -나카지마

    골프가 어려운 것은 정지한 공을 앞에 두고 생각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호바네시안

    빠른 백스윙을 하는 사람치고 플레이를 잘하는 사람 없다. -잭 니클라우스

    위의 골프 명언들은 개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말씀이 아니다. 오로지 골프 한길에만 매진한 고수들이 그 나름의 철학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 위 명언 가운데 초보자나 고수에게 모두 해당하는 단 하나를 추천하라면 “빠르게 하지 마라”는 잭 니클라우스의 말이다. 하여간 급하면 당한다. 느림의 미학, 이것이 관건이다.

    나는 다양한 계층과 성격을 가진 골프친구가 참 많은 편이다. 그들 중 ‘빠름~ 빠름~’을 가장 잘 실행하는 친구는 사업가다. 그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적응하고 선도하려면 스피드가 관건이라고 생각해 항상 머리가 복잡하다. 기업환경은 어떻게 변하는지, 사람들 관심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늘 신경 쓴다.



    골프에서도 그런 생각이 습관이 돼 늘 뛰어다닌다. 일반적인 골프장의 표어, ‘샷은 느리게 걸음은 빠르게’를 몸으로 실천하는데, 문제는 스윙도 빠르다는 데 있다. 백스윙이 어찌나 빠른지 그냥 올렸다가 친다. 번쩍! 하는 것이다. 실력은 항상 90대 전후다.

    어느 날 저녁시간이 좀 느긋해 사업가 골프친구의 인생철학과 골프 가치관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스피드가 생존 비결이라는 그의 수단은 어느 정도 이해됐지만, “골프 스윙이 왜 그리 빠르냐”는 질문에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TV를 봐. 유명 선수의 헤드스피드는 눈 깜짝할 순간이야. 나는 독학으로 배웠기에 얼마나 빠르게 쳐서 스피드를 내느냐가 핵심이라고 생각해.”

    그 친구에게 느림의 미학을 잘 설명해줘야 그 날 밥맛이 좋을 것 같았다. 들을 준비가 돼 있나. 그러면 느림의 가치를 강의해주마. 먼저 몸의 수준이다. 우리 몸을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중심이 지구 중력에 맞게 설계됐고 운용된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발바닥은 누르는 것이 기본이다. 중력을 아래로 전달하고 내 신체를 지탱하려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손은 창조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언제나 밑으로 향한다. 머리에는 중력을 받아들이는 꼭짓점이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하늘의 에너지를 받는다.

    빠르게 친다고 스피드 붙지 않아

    머리 중심과 발바닥 중심을 연결하는 선, 이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심축의 기혈 흐름이다. 항상 위아래로 흐른다. 이를 중심으로 주변의 에너지 흐름이 원을 그리면서 도는데, 바로 경락이다. 내부 몸의 에너지 흐름을 정경 12맥이라 하고, 에너지 저장 장소를 기경 8맥이라 한다. 이 두 맥은 멈춤과 움직임을 조화롭게 하는 도로이다. 빠름을 강조하는 맥과 멈춤을 강조하는 맥, 이 둘을 얼마나 조화롭게 하느냐가 장수 비결이다. 즉 이 두 맥을 조화롭게 하는 데 건강의 비결이 있으며, 조화의 근원은 바로 느리게 하는 동작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둘째, 생각 에너지의 수준이다. 여기서 수준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 급수가 어디에 와 있느냐는 진단이 필요해서다. 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자기 생각을 만든다고 여기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하얀색 도화지에 주변의 환경적 요인이 그려졌다고 보면 된다. 어려서 부모의 생각과 음식, 친구들과의 어울림, 사회적 가치관이 자신에게 적응돼 스스로의 고유한 생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시비비가 생기고 판단력을 만들며 비교분석을 하게 된다. 여기서 생각의 수준을 결정짓는 요소는 첫 번째가 생존이고 두 번째가 종족 보전이다. 이 두 가지에 대한 틀이 완성되면 삶의 가치를 찾아 다른 생각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는 생각의 수준은 고요함과 느림의 미학을 체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생각과 몸의 철학을 이해하면 자신의 쓰임새에 대한 수준이 업그레이드된다. 이른바 직(職)과 업(業)이 업그레이드 기준이 되는데, 직이란 생존을 위한 일과 노동이고 업이란 자신이 찾는 삶의 만족도를 위한 몸의 쓰임새다. 보통 사람들은 직업을 생존수단으로만 여길 뿐 자신의 고유한 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사회에서는 늘 다툼과 갈등, 범죄가 일어나는 것이다. 개인 차원에서 자신만의 업을 찾는 것이 바로 생각의 수준을 찾는 것과 동일한 일이다. 좀 장황한 설명이라 재미는 없겠지만 깊이 음미해보길 권한다.

    ‘거북이 스윙’ 만사 OK 굿샷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골프에서도 이러한 생각의 수준이 어떻게 몸과 결합하는지 경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한마디로, 다른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골프 그 자체에만 매달린 생각의 수준을 한번 음미해보라. 자려고 누웠는데 푸른 초원이 펼쳐지는가. 걷거나 움직일 때 몸이 저절로 움찔거리는가. 작대기만 쥐면 스윙을 하고 구멍만 보면 넣고 싶은가.

    친구가 전해준, 골프 미치광이들의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유형을 정리해보니 다음과 같다. △당구 치다가도 내 공 뒤에 마크를 한다. △야구를 보다가 홈런이 나오면 맞창났다 생각하고 파울은 오비(OB)라고 생각한다. △시험에서 100점 맞아 온 딸에게 조금 지나면 90점을 깰 수 있다고 격려한다. △관광 가서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봐도 헤저드가 생각난다. △놀이터 모래밭에서도 발자국을 지우고 간다. △아스팔트 파인 부분이 디보트로 보인다. △마누라와 마트에 가서 카트 끌고 가는 마누라에게 묻는다. 언니 몇 홀 남았지? △칫솔질하다가 흔들흔들하면서 강도를 확인한다. △직원들과 식사할 때 가장 멀리 앉은 사람이 숟가락을 들어야 나도 숟가락을 든다. △영어 ‘OK’의 반대말은 당연히 ‘마크!’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 생각의 수준은 자신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즉, 하나의 간절한 소망은 다른 생각을 잊게 만든다. 자신이 가진 단 하나의 간절한 소망은 이뤄지겠지만 생각이 속도로 이어지고 이내 굳어버린다. 굳어버린 생각은 습관이 되고 이 습관이 자신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굳어버린 생각의 흐름이 인생의 행과 불행을 결정짓는다는 것. 바로 골프의 스윙 스피드에서 드러나는 철학이다.

    느리게 올라가서 느리게 내려와야

    느림의 미학은 생각의 속도를 느리게 해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통상 여유라고 이름 붙은 생각의 흐름도는 몸을 느리게 움직임으로써 조절할 수 있다. 왜 우리네 조상이 느릿느릿 선비 걸음을 했겠는가. 불이 나도 뛰지 않는 양반 정신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 몸을 움직이되 천천히 오래 걷는 것은 저강도 운동이라 해서 지방을 태운다. 땀 흘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몸 운동은 고강도 운동이라 해서 탄수화물을 태운다. 느리게 오래 움직이는 몸은 생각의 속도를 느리게 해 신경망을 튼튼하게 만든다. 신경망이 튼튼해지면 몸의 즉각 반응이 느려져 화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준다. 자신의 여유가 남에게 전이되는 공명진동이 일어나 만사가 쉽게 해결된다. 이러니 어찌 느림의 미학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으랴.

    친구에게 길게 설명한 다음, 골프를 느리게 하는 방법을 강의했다. 여자들의 경기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 ‘천천히’의 묘미를 알게 된다. LPGA 프로들의 스윙 속도를 보라. 느리게 올라가서 느리게 내려온다. 골프나 인생이나 보면서 배우는 것이다. 열심히 보면 그 그림이 뇌에 저장돼 따라하게 된다. 골프는 채가 쳐주는 것이지, 내 근육이 공을 때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채 운반자일 뿐이다. 채를 천천히 운반하면 채 자신이 여유를 갖게 돼 정확한 임팩트를 갖는다. 운반자의 의도가 그대로 전달돼 아름다운 샷이 완성되는 것이다. 인생이든 골프든 느리게 움직여라. 생각에 여유가 생겨 만사형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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