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7

2013.05.13

위기의 박지성, 리그 이적? 국내 복귀?

QPR 잔류 확률 제로…아시아 마케팅 효과 커 유럽 구단 영입 눈독

  • 윤태석 스포츠동아 스포츠2부 기자 sportic@donga.com

    입력2013-05-13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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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32·퀸즈 파크 레인저스·QPR)은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어느 클럽에서 마무리하게 될까. 유럽 프로축구에서 뛰는 선수가 팀을 옮길 수 있는 이적시장이 7월 열린다. 유럽 무대를 누비는 이청용(볼턴), 박주영(셀타 데 비고), 손흥민(함부르크),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도 이 시기 새 유니폼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역시 박지성의 행보다. 박지성은 QPR와 계약기간이 1년 남았지만 내년 시즌 팀에 남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중동·중국 거액 연봉 러브콜 거부감

    QPR는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부 리그)에서 챔피언십(2부 리그)으로 강등됐다. 챔피언십으로 떨어지면 광고나 관중 수입이 급격히 줄어든다. 재정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구단 재정을 줄이는 첫 번째 방법은 몸값 높은 선수를 팔아치우는 것이다. 페르난데스 QPR 구단주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여러 차례 “선수들 연봉이 60% 이상 삭감될 것”이라며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다. 박지성은 연봉이 80억 원(추정치)으로 팀 내 최고 레벨이다. 자연스레 이적 명단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은 해리 레드냅 QPR 감독과 궁합도 안 맞는다. 선수가 팀에 잘 적응하려면 실력은 기본이고 언어, 식습관,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령탑을 만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 직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진출한 뒤 무릎 수술을 받고 좀처럼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술 후에도 컨디션을 찾지 못해 급기야 홈 팬들이 박지성에게 야유를 보내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축구선수로서 최악의 수모였다. 당시 에인트호번 사령탑이던 휘스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을 원정에만 출전시키는 배려를 했다. 이를 악문 박지성은 얼마 후 진가를 드러냈고 홈 팬의 야유는 열렬한 환희로 바뀌었다.

    그러나 레드냅은 좀처럼 박지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사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뛰던 박지성을 지난해 시즌 QPR로 영입한 것은 마크 휴스 전 감독이다. 휴스는 직접 한국을 방문해 박지성을 만났고, 이런 정성이 박지성을 움직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성적 부진으로 휴스가 경질되고 레드냅이 부임하면서 박지성의 입지는 좁아졌다. 레드냅은 1983년 지도자 입문 후 웨스트햄, 포츠머스, 사우스햄프턴, 토트넘 등 영국 클럽만 맡아온, 영국 내에서도 아주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인물이다. 레드냅을 잘 아는 에이전트는 “그가 예전부터 힘 좋고 신장 큰 유럽 선수를 선호해왔다”고 말했다.



    QPR는 내년에도 레드냅과 함께 간다. 페르난데스 구단주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레드냅에게 힘을 실어주는 발언을 하고 있다. 레드냅이 팀을 지휘할 수 있는 명분을 쌓아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성이 QPR에 남는다 한들 중용될 리 없다. 결론은 하나다. 박지성이 떠나는 것이다.

    박지성이 어느 팀으로 갈지 지금은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서서히 물밑에서 새 행선지를 모색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박지성의 ‘과거’를 보면 ‘미래’를 대략 예측할 수 있다. 박지성이 세계 최고 클럽 맨유에서 뛴 7년 세월을 뒤로하고 지난해 여름, 하위 팀인 QPR로 옮긴 가장 큰 이유는 경기에 뛰기 위해서였다. 당시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박지성을 붙잡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맨유에는 쟁쟁한 스타가 너무 많아 박지성의 주전 보장이 쉽지 않았다. 평소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선수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박지성은 맨유를 떠나는 모험을 택했다.

    이번에도 박지성은 자신이 뛸 수 있는 팀,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팀을 선택할 개연성이 크다. 클럽 역사, 명문 여부, 연봉 등은 부수적 조건이 될 것이다. 또 하나, 박지성은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지성 아버지 박성종 씨는 아들이 QPR로 이적할 때 “앞으로 2~3년 더 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지성의 선수생활은 이제 길어야 2년 남짓 남았다. 박지성은 자신의 선수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클럽을 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박지성이 중동이나 중국으로 눈을 돌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박지성은 아시아 출신 현역 스타 가운데 최고다. 중동, 중국 클럽은 거액의 연봉을 미끼로 박지성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박지성이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는 10년 동안 유럽 무대에서 치열하게 생존해온 자신의 커리어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돈을 따라가지는 않겠다는 신념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도 마찬가지다. 홍명보나 이영표처럼 MLS에서 선수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을 박지성도 고려해볼 만하다. 하지만 MLS는 박지성이 하고 싶은 공부 쪽과 거리가 있다. 현재 석사학위 소지자인 박지성은 은퇴 후 시간을 내서 국내에서 박사 과정을 제대로 밟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기 지나 K리그 복귀 “NO”

    박지성의 새 행선지는 대략 3가지로 압축된다. 영국 내 이적과 영국 외 다른 유럽리그 이적, 그리고 K리그로 오는 것이다.

    영국 내 이적은 박지성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영국에서 오래 생활했기에 따로 적응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영국 프로축구 클럽들의 역학관계를 생각해보면 쉽지 않다. 영국 구단들은 같은 리그 내 이적에 대해 거부감이 크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QPR로 옮길 때도 그랬다. 사실 지난해 여름 박지성이 유럽의 다른 리그 이적을 추진할 때 맨유는 이적료를 까다롭게 책정하지 않았다. 맨유에서 세운 공을 생각해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QPR가 거론되자 맨유는 일정 금액의 이적료는 받아야겠다는 쪽으로 태도를 싹 바꿨다. 또한 박지성이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국 내 이적은 녹록지 않다.

    현실적으로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은 독일이나 스페인 등 유럽 내 다른 리그로의 이적이다. 박지성은 QPR로 옮길 때 이적료 일부를 받을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그러나 이적료 문제로 맨유와 QPR가 줄다리기를 해 협상이 난항을 겪자 과감하게 자기 몫을 포기했다. 이적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QPR는 이에 대해 크게 고마워하고 있다. 박지성이 유럽 다른 리그 이적을 추진하면 QPR도 적극 협조한다는 분위기다. 전성기가 지난 박지성을 선뜻 영입할 만한 구단이 있겠느냐는 시선도 있지만, 유럽 이적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유럽 구단들은 아시아 마케팅 전문가를 두고 실력과 마케팅 효과를 겸비한 아시아 선수를 찾고 있다. 박지성의 상품성은 여전히 최고다.

    국내 팬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는 박지성이 K리그로 오는 것이다. 설기현(인천)과 차두리(서울)도 선수생활을 K리그에서 마무리하는 길을 택했다. 만일 박지성이 수원 삼성이나 FC 서울 등 수도권 빅클럽으로 온다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것이다. 박지성이 유럽 내에서 새 클럽을 찾지 못한다면 마지막 행보로 국내 복귀를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에 대한 박지성의 대답은 “노(NO)”다. 최고 기량이 아닌 상황에서 국내 팬 앞에 서는 게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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