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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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꽃 + 초록 잎 = 황금빛 봄 물결

피나물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3-05-13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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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랑 꽃 + 초록 잎 = 황금빛 봄 물결
    “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도 발길 닿은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후략)”

    김용택 선생님의 시 한 구절입니다. 꽃을 보고 봄바람이 단단히 든 제 마음과 똑같네요. 누구나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이즈음 숲 속에서 봄꽃 향연을 벌이는 꽃은 아무래도 피나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숲길을 걷다가도 갑작스레 주변이 환해진 듯한 느낌이 들어 보면 샛노란 피나물 군락이 끝없이 이어지네요. 이 밝고 맑은 꽃 잔치가 한 주일도 못 넘기니, 보기만 해도 아깝습니다.

    피나물은 양귀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중부 이북 산지에서 주로 자라지요.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에도 지천입니다.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피나물 무리 중 하나는 바로 국립수목원 에코로드를 걷다 만난 피나물들입니다. 키가 한 뼘에서 어른 무릎 정도 높이까지 자라는데, 다복한 포기를 만드는 데다 꽃과 잎사귀가 모두 큼직하니 시원스러워서 보기에도 좋습니다.

    봄이면 원줄기 끝 잎겨드랑이에서 한 개에서 세 개 정도 길게 꽃자루가 나오고, 그 끝에 진하디 진한 노란색 꽃이 하나씩 달립니다. 햇살을 받으면 마치 빛나듯 고운 빛의 꽃잎 네 장이 균형 있게 모여 꽃 한 송이를 이룹니다. 여러 줄기가 모여 한 포기를 만드는 데다 군락을 이뤄서 자라니, 한창 핀 피나물 무리는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듯 아름답지요. 진한 초록색 잎은 5~7갈래로 불규칙하게 갈라지는 우상복엽으로, 진한 노란색 꽃잎과의 조화가 인상적입니다.



    이 즐거운 꽃에게 왜 하필 피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말 그대로 ‘피’와 관련해 붙은 이름으로, 양귀비과 식물이 그러하듯 피나물도 줄기를 자르면 붉은색 유액이 나옵니다. 참고로, 봄꽃 중에서 꽃잎이 네 장으로 같은 양귀비과에 속하는 애기똥풀은 유액이 아기 똥처럼 노란색이랍니다. 피나물은 일부 지방에선 노랑매미꽃, 봄매미꽃이라고도 부릅니다. 한자로는 하청화(荷靑花)라 하고, 영어로는 버널 셀란딘(Vernal Celandine)이라고 하지요.

    이름 끝에 나물이란 단어가 붙은 식물은 대개 나물로 요리해 먹을 수 있습니다. 피나물 역시 이른 봄 어린순을 잘라 나물로 먹긴 하지만 식물 자체에 독성이 있으므로 어린순만 따야 하며, 데쳐서 한참 우려낸 다음 조리해야 독성이 사라지고 쓴맛도 없앨 수 있음을 꼭 기억하세요.

    한방에선 하청화근(荷靑花根)이라고 해서 뿌리를 약재로 이용합니다. 진통, 거풍, 활혈, 소종 같은 효능이 있어 관절염, 신경통, 피로, 타박상, 습진, 종기 등에 두루 처방한답니다.

    정원에 심기엔 꽃 피는 기간이 짧은 피나물의 아쉬움을 달래줄 만한 꽃이 있습니다. 피나물과 아주 비슷한 매미꽃이지요. 전체적으로 꽃이나 포기는 피나물보다 작지만 봄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은 한쪽에서 열매가 익어 가는데도 여름 내내, 심지어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계속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환하게 핀 피나물처럼 하루하루 눈부신 봄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랑 꽃 + 초록 잎 = 황금빛 봄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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