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7

2013.05.13

‘60세 정년’ 세대 간 밥그릇 싸움 없다

OECD, 조기퇴직 전략 효과 없어 폐기… 아버지도 좋고 자식도 좋고

  • 김준영 한국고용정보원 인력수급전망센터장 ibangin@keis.or.kr

    입력2013-05-13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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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세 정년’ 세대 간 밥그릇 싸움 없다

    3월 20일 ‘2013 중장년과 함께하는 부산광역권 일자리 박람회’가 열린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가 장년층 구직자로 붐볐다.

    근로자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 개정안’(일명 60세 정년 연장법)이 4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60세 정년 연장법은 현재 권고사항인 60세 정년을 법적으로 의무화한 것이다. 이 법은 300명 이상 사업장을 비롯한 지방공단과 지방공사에는 2016년부터, 300명 미만 사업장에는 2017년부터 적용된다.

    우리나라는 인구고령화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고령 인력 활용이 국가 성장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더욱이 약 700만 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자)의 상당수가 별다른 노후생활 대책 없이 노동시장에서 퇴장하면서 노인 빈곤이 크게 우려되는 실정이다. 따라서 인구고령화에 대응하고 고령가구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60세 정년 의무화 도입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조치라 할 수 있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2011)’에 의하면 2016년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시점인 2016년은 향후 예상되는 노동력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60세 정년 의무제를 실시하기에 적절한 시기로 보인다. 또한 정년 연장으로 근로자들이 과거보다 오랫동안 일하면, 정부가 추가 세수를 확보해 재정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60세 정년 의무화의 긍정적인 영향에도 동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여러 불안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정년 연장은 고령자에게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대신 기업의 신규인력 채용을 위축해 청년층의 취업난과 실업을 더욱 증가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세대 간 일자리 경합 가능성에 대해 일부 언론은 이를 ‘부자간 일자리 전쟁’이라는 자극적인 말로 표현한다.

    노동력 고령화는 청년층 고용 증가 촉진

    그러나 청년층 고용과 고령층 고용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들은 대체로 청년층 고용과 고령층 고용 간 부(-)의 대체관계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두 연령 집단의 고용은 보완관계에 가깝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즉, 고령자 고용 증가가 청년층 고용 감소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며, 고령자 고용 감소가 청년층 고용 증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이 연구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 사이에 대체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9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에 걸쳐 유럽연합(EU) 여러 국가에서 실시된 조기퇴직제의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유럽국가들은 치솟는 청년층 실업문제 해결책으로 조기퇴직제를 실시했다. 당시 조기퇴직제 실시 배경에는 고령 근로자의 조기퇴직이 ‘청년층 고용 증가 및 실업 감소’로 이어지리라는 믿음, 즉 두 연령층의 고용 사이에 대체관계가 존재한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믿음과는 달리 유럽국가 대부분이 조기퇴직제를 실시했음에도 청년층의 고용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조기퇴직제 실시로 공적연금제도의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되는 부작용이 나타났고, 결국 여러 EU 국가에서 1990년대 후반기 이후 조기퇴직제가 사실상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2005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조기퇴직을 통한 청년층 고용 개선 전략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으며, 이후 각국은 다시 정년을 연장하는 추세다.

    일본 사례를 보더라도 청년층 고용과 고령층 고용 사이에 대체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유럽국가와 달리 일본은 조기퇴직제를 도입한 적이 없고, 오히려 1970년대 초반 이후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높여왔다는 점에서 60세 정년 연장제 실시를 앞둔 우리나라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일본은 1973년 55세 정년 의무제를 시행하고, 98년 60세 정년 의무제를 도입하는 등 단계적으로 정년을 높였지만, 정년 연장이 청년층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고령층의 고용 증가(감소)는 대체로 청년층의 고용 증가(감소)를 동반하며, 노동력의 고령화는 청년층 고용 증가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청년층 고용과 고령층 고용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들의 결론도 위에서 소개한 외국 연구들 결론과 유사하다. 즉, 연구 대부분은 일관되게 우리나라에서 청년층 고용과 고령층 고용의 관계는 대체관계보다 보완관계에 가깝고, 고령층 고용 증가는 청년층 고용 감소(혹은 실업의 증가)를 초래하기보다 오히려 청년층 고용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국내외 연구들의 결론에 근거하면 60세 정년 의무제의 실시가 청년층 취업난과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론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기존 연구들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고령층 고용 증가는 청년층 고용 증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은 가능성, 즉 고령층 고용 증가가 청년층 고용 감소가 아닌 고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60세 정년’ 세대 간 밥그릇 싸움 없다

    4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 취업박람회에 몰린 청년 구직자들.

    기능 숙련 계승·조직 활력 등 시너지 효과

    기업은 생산조직의 활력 유지, 근로자 세대 간 기능과 숙련의 계승, 보유한 숙련의 성격이 다른 청년층과 고령층이 함께 업무를 수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 등을 고려해 가능한 한 기업 근로자를 연령 집단별로 고르게 구성하기를 원할 것이다. 이 경우 고령 근로자의 증가는 청년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희소해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고용주는 청년층 근로자의 채용을 늘리려는 유인을 갖게 될 것이다.

    한편, 60세 정년 의무제 실시와 함께 풀어야 할 많은 과제가 있으나 지면관계상 여기서는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60세 정년 의무제 실시와 더불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증가 부담을 노사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 실시에 따라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증가한다면, 기업은 신규인력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명예퇴직 같은 수단을 이용해 정년 도달 전인 중·고령 인력의 고용을 조정하려는 유인을 갖게 될 공산이 크다.

    실제 민간 대기업에 종사하는 많은 근로자가 60세 정년 의무제 실시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현 일자리에서 60세 정년까지 계속 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60세 정년 의무제 실시가 오히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해 중·고령 근로자의 고용안정성을 하락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해 기업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조치를 병행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60세 정년 의무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근로자 집단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60세 정년 의무제의 수혜자는 정년 의무제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공무원 포함)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 근로자지만, 이들의 규모는 우리나라 취업자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년 의무제가 있어도 사실상 유명무실한 중소기업 근로자, 비정규직 근로자, 자영업자 등은 우리나라 취업자의 80% 이상을 차지하지만 이들이 60세 정년 의무제의 수혜를 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60세 정년 의무제의 혜택이 더욱 많은 근로자에게 확대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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