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2013.04.15

달러 불안…당장 ‘금’을 사라

“나 살자” 미국 통화 팽창 지속…국제 금융시장도 안전 자산 선호

  • 조명진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안보자문역 myeongchin.cho@gmail.com

    입력2013-04-15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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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폴슨. 그가 입을 열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는 헤지펀드 운영의 귀재다. 2009년과 2010년 그가 금을 사들이기 시작했을 때도 투자자의 눈길은 그의 행보에 쏠렸다. “투자자로서 나는 달러로 된 자산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염려스럽다. 이제는 금이야말로 달러를 대신할 가장 적합한 화폐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파격적인 말을 남긴 그는 현재 세계 최대 금펀드인 SPDR골드트러스트에서도 가장 큰손을 자랑하는 투자자로, 보유한 금펀드 가치만 해도 29억 달러에 달한다.

    그의 공격적인 금투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12년에는 SPDR골드트러스트를 2180만 주 구매하며 보유량을 늘렸고, 금 채광회사 주식도 사 모았다. 현재 210억 달러 규모에 해당하는 그의 헤지펀드 가운데 금이나 그것과 관련한 자산의 비중은 44%다. 전설적인 헤지펀드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 또한 금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2012년 초 그는 SPDR골드트러스트를 8만5450주 사들이면서 지분을 2배로 늘렸다. 이들은 자기 고객에게 금이야말로 가장 선호하는 장기투자처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각국이 마구 찍어대는 화폐나 치솟는 인플레이션, 커지는 유로존 리스크에 대비하는 보호막을 금이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이 계속 불안정하자 최근 국내에서도 골드바를 실물로 구매하는 투자자가 늘었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온 바 있지만,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글로벌 시장에서 금의 중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주요 국가 화폐가치가 일제히 평가절하하면서 전 세계 중앙은행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금을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이미 세계는 1930년대식 통화전쟁에 접어들었고, 금은 도처에 깔린 리스크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최후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금값이 고공행진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사실 화폐 발행권을 거머쥔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야말로 가장 주목할 만한 변수다. 최대 자금력을 지닌 기관들이 지난해부터 25년 만에 처음으로 금 보유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12년 한 해 동안 세계 각 중앙은행의 금 매입량은 총 536t으로 2011년에 비해 17% 증가했다. 물론 이들도 인플레이션이나 달러 구매력에 대해 염려하기는 마찬가지다. 손쉬운 통화정책에 기대어 경기를 부양하려는 미국 행보가 이어지자 자금을 안전하게 지킬 다른 대안으로 금에 주목하는 셈이다. 더욱이 금값이 지난 12년간 꾸준히 상승해왔다는 점도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그 덕에 미국의 아메리칸 이글 금 주화는 1월에만 15만 온스 분량이 팔려나갔다.

    “금본위제로 돌아가자”



    하지만 월가 큰손들이나 각국 중앙은행의 공격적 금 매입 추세와는 반대로 금 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금값이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달러가치가 계속 하락할 것이라고 믿는 중국인 투자자들 때문”이라고 말하는 ‘블랙 차이나’의 저자 류쥔뤄가 대표적이다. 지금도 금값은 미국이 결정하고, 중국 투자자들은 단지 그에 끌려갈 뿐이라는 얘기다. 온스당 1600달러를 넘어선 금값이 향후 3000달러, 심지어 5000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일부 이코노미스트의 장밋빛 전망은 무리하게 금 매입에 나선 중국 투자자들을 파산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는 경고다.

    이해관계자들 넘어서기

    달러 불안…당장 ‘금’을 사라

    두바이 최대 금 시장인 골드 수크.

    사실 일반 투자자뿐 아니라 중국 정부 처지에서도 금값 전망은 절체절명의 과제다.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1980년 2억 달러에서 2013년 1월 현재 3조3000억 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달러가치 하락이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베이징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보유 중인 달러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일이고, 현재로서는 금이 최우선 대상이다.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매년 380t 규모의 금에 홍콩에서 500t, 호주에서 130t, 두바이를 비롯한 국제 금 시장에서 900t 등을 더 수입해 연간 총 1910t의 금을 꼬박꼬박 쌓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의 이러한 공격적인 금 매입에는 위안화를 국제 결제통화로 격상하겠다는 장기적인 욕심도 깔렸다. 각 기업이나 국가가 위안화를 결제통화로 사용하려면 위안화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신뢰도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금 보유량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중국인민은행은 2016년까지 미국의 금 보유량을 능가하는 총 1만t 규모를 보유한다는 최종 목표를 세워둔 것으로 전해진다. 매년 1500~2000t을 사들여야 하는 엄청난 양이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공격적 행보가 금값 상승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금값이 오르리라는 믿음이 수요를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다시 금값이 올라가는 순환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달러화에 대한 불안감이 점차 높아지면서 아예 금본위제로 돌아가자는 견해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지난해 9월 미국 대통령선거(대선)가 한창일 때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론 폴 하원의원이 제시한 공약이 그 시작이었다.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공화당 차원에서 금본위제로 회귀하는 방안을 검토할 위원회가 구성됨에 따라, 1971년 닉슨 행정부가 금본위제를 포기한 이후 처음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워싱턴 정가에서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금이야말로 미래 국제금융 시스템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몇몇 전문가에 의해 힘을 받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커런시워’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다. 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뛰어난 안정성을 지닌 화폐라고 주장하는 그는 “각국 중앙은행이 금본위제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마법처럼 돈을 만들어내는 특권’을 놓치기 싫어서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노동자 계급이 평생 동안 힘들게 모은 저축의 가치를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현재 금융체제의 불안정성을 타개할 합리적 대안이 금본위제로의 회귀라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 칼럼니스트 루안총샤오 역시 저서 ‘금의 전쟁’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가 금 보유를 늘리고 금본위제를 시행한다면 인플레이션의 어두운 그림자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견해가 현실화하려면 만만찮은 걸림돌을 넘어서야 한다. 먼저 공급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세계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화폐도 함께 늘어나야 하지만, 연간 1% 정도만 늘어나는 금 공급량으로는 3%에 육박하는 화폐 증가 필요량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구증가율이 0.5% 이하로 떨어지는 2039년 이후에나 금본위제가 가능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두 번째 걸림돌은 앞서 살펴본 각국 중앙은행과 일반 은행들의 이해관계다. 1913년 설립된 이래 미국은 물론 전 세계 통화시장을 좌지우지해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대표적이다. 금에 연동해 통화량을 결정하는 금본위제를 도입하면 이들의 정책결정 운신 폭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고, 따라서 시장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권력도 함께 축소될 게 빤한 까닭이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1933년까지 화폐공급 정책에서 오류를 범해 대공황을 악화시키는 등 다양한 실책을 빚은 바 있다. 현재 미국이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통화정책이 다시 한 번 실패로 판명된다면 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약해질 공산이 크다. 글로벌 투자 전략가인 마틴 허치슨은 지난해 9월 언론 기고를 통해 이해관계 집단의 금본위제 반대를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극단적 인플레이션처럼 달러가 붕괴하는 경우뿐일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세계경제의 불안이 지속되고 미국의 통화 팽창이 지속되는 동안 금의 인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점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과 새로운 기축통화에 대한 욕망 또한 국제 금융시장에서 금 위상을 한층 높여줄 것이다. 지난해 12월 자료에 따르면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올해 1월부터 11월에 대한 금 옵션 행사가격은 온스당 1750~2700달러로 예상된 바 있다. 3월 말 현재 온스당 1590달러 수준인 금값이 앞으로 추가로 상승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미래는 알 수 없다지만, 돈 있는 사람이 금을 사들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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