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2013.04.15

총무과 김 대리는 ‘잡호핑族’

커리어 관리 2~3년에 한 번씩 이직…‘철새’보다 개인 역량으로 평가

  • 최나은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nasilver@lgeri.com

    입력2013-04-15 0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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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과 김 대리는 ‘잡호핑族’
    취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직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직장인이 적지 않은 듯하다. 특히 최근에는 커리어 개발 등을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준비해 이직하는 잡호핑(Job-Hopping)족이 늘고 있다. 잡호핑족이란 통상 2~3년 단위로 직장을 옮기는 사람을 뜻한다. 그중에는 무작정 이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량 개발, 급여 인상, 경력 업그레이드 등을 목적으로 계획적으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전체적인 방향성과 커리어 플랜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조직에 대한 불만이나 부적응 등의 이유로 자주 이직하는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에서는 2013년 2~3월 직장인 205명을 대상으로 잡호핑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많은 직장인이 잡호핑이 상당수 존재하며 과거보다 증가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택의 자유’ 중시하는 세대 유입

    먼저 “귀하가 속한 조직에는 잡호핑하는 동료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48%가 ‘상당수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설문조사 1’ 참조). 특히 단기간에 직장을 이동하는 잡호핑은 과거에 비해 더 증가하는 추세로 인식되고 있다. “과거 대비 요즘 들어 잡호핑하는 직장인이 증가 또는 감소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 61%가 ‘증가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 ‘감소하고 있다’는 답은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설문조사 2’ 참조).

    과거에는 이직을 자주 하는 사람을 흔히 ‘부적응자’ 또는 ‘철새’ 같은 부정적 용어로 낙인찍었지만, 요즘 직장인의 인식은 많이 변한 듯하다. “잡호핑하는 동료들에 대한 인상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조직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한다’거나 ‘끈기가 부족해 보인다’는 부정적 이미지보다 ‘지속적으로 역량을 개발’하고 ‘최신 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인식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설문조사 3’ 참조). 더욱이 주변에서 잡호핑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직한 사례를 봤다는 응답도 61%로 높게 나타났다(‘설문조사 4’ 참조).



    잡호핑이 증가하는 이유로 먼저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고용 불안정성에 대한 개인의 불안감이 심화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직장인은 더는 장기 고용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그에 대한 불안감이 심해졌다. 이 같은 환경에서 타의로 이직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개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총무과 김 대리는 ‘잡호핑族’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중시하는 세대의 유입도 잡호핑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세대 연구의 구루(Guru)인 돈 탭스콧은 저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에서 넷(Net)세대로 통칭되는 신세대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중시한다고 특징지었다. 그들은 한 직장에서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근무하기보다 자신이 올린 성과와 시장 가치에 따라 보상받는 것을 선호하고, 자신에게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거나 더 도전적인 기회가 많은 일을 찾아 이동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업종 및 직무를 초월한 인재 영입 경쟁 심화, 이직이 용이한 조직문화 환경 조성 등도 잡호핑의 증가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프리랜서 고용 형태 점점 확산

    총무과 김 대리는 ‘잡호핑族’
    기업이 잡호핑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잦은 인력 유실로 비용 부담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사 뒤 금방 퇴직하는 사람이 증가할 경우 업무 공백으로 인한 손실, 이미 투입한 교육비의 손해, 재채용비 투입 등 손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분위기 동화에 따른 모방 이직도 증가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이 확산되면 조직 내 분위기를 해치고 구성원 사이에 불안감이 조성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재를 놓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잡호핑 현상에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 계획적인 잡호핑은 미리 설계해놓은 커리어를 고려해 조직 및 직무를 선택해 이동하고, 근무기간도 전체 커리어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정해놓는다. 기업이 이들을 ‘철새’라 여기고 무심히 지나친다면, 인재를 경쟁사에 쉽게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처하려면 기업은 첫째, 조직 내 직무선택의 다양성 구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잡호핑족은 다양한 경력을 통해 역량 범위를 넓히고자 할 뿐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그들이 가진 역량을 활용하려면 ‘잡로테이션(Job Rotation) 제도’의 활성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 내부 직업시장(Job Market)을 최대한 활성화함으로써 기업은 직원의 역량을 발굴하는 것은 물론, 인재 리텐션(retention)에도 기여할 수 있다.

    둘째, ‘5년 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잡호핑족은 미래 커리어의 방향성과 발전가능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재 몸담은 조직이 자신의 미래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이러한 니즈에 부응하는 한 방법으로 ‘5년 후 청사진 제시하기’를 고려해볼 수 있다. 리더가 구성원과의 면담을 통해 커리어 방향을 함께 설계하고 교육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5년 후 발전해 있을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셋째, 퇴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인력 관리 회사 셀렉트마인즈의 셈 서토글루 CEO와 안네 버코비치 부사장은 2002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글을 통해 퇴직자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퇴직한 인재는 재고용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인재를 소개해줄 수도 있으며, 그 기업의 홍보담당자, 마케터, 로비스트가 돼줄 수도 있으므로 네트워크를 구축해 퇴직자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미래에는 프로젝트 단위로 전문가 또는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고용 형태가 점점 확산될 것이라고 한다. 이 경우, 잡호핑처럼 여러 조직을 자주 이동하는 트렌드가 더 확산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잡호핑족을 ‘부적응자’ ‘철새’라고 낙인찍고 무시하기보다 경제·사회적, 세대적 변화가 만들어낸 산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개인은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기업은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적 뒷받침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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