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3

2013.04.15

러시안 블루

  • 정철훈

    입력2013-04-12 17: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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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안 블루
    고양이가 새벽부터 반복적으로 울어댄다

    야옹야옹야옹

    지상을 뜨고 싶은 모음들의 강

    반복적으로 울어야만

    그리움의 끝에 가 닿을 수 있다는 명제가



    고양이 울음에서 성립한다

    어느 날 한식구가 된 진회색 러시안 블루

    처음엔 러시아 이름 미하일로비치의 애칭인 미샤였다가

    미 자를 떼내고 샤샤였다가 다시 샤뿡으로 불리는 건

    순전히 녀석의 울음 덕분이다

    샤뿡샤뿡샤뿡

    허공에 떠서 내려오지 않는 울음들 발음들

    고양이 울음소리가 이 새벽을

    물에 뜨는 모음의 강으로 만들고 있다

    내게도 저토록 반복적으로 울어야 했던 그리움의 시절이 있었다

    오래전 진눈깨비 쌓이던 모스끄바 어느 후미진 뒷골목

    그리움이 무서워 사랑을 피한다. 고양이처럼 다가오는 사랑을, 그 반복적인 울음소리가 너무나 무서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겁도 없이 사랑에게 다가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깊은 수렁인지도 모르고…. 기어이 다가가다 깊은 늪에 빠져 죽기도 한다. 이젠 고양이 러시안 블루를 기르면서 사랑의 수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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