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2013.03.18

800년 만의 기적 고려 수묵화 ‘독화로사도’ 발굴

‘동국이상국집’ 쓴 이규보가 ‘詩’로 위대한 그림 칭송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3-03-18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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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0년 만의 기적 고려 수묵화 ‘독화로사도’ 발굴

    그림1 고려시대 수묵화 ‘독화로사도’. 그림2 ‘독화로사도’ 뒤에 메모된 ‘동국대 초대 총장 20만(원)’. 그림3 ‘독화로사도’ 중 바닷가 마을 풍경.

    ‘주간동아’ 878호에서 중국 미술사의 기적으로, 1950년 겨울 양런카이(楊仁愷·1915~2008) 선생이 북송시대 장택단의 작품 ‘청명상하도’를 발굴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필자는 랴오닝성박물관 명예관장인 양런카이 선생 문하에서 1994년부터 미술품 감정에 관한 전문 훈련을 받았다. 지금까지 스승 가르침을 지키면서 ‘스승의 기적’이 제자인 필자에게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늘 갖고 있었다.

    2010년 3월 필자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우연히 조선시대 유하노인의 작품을 봤다. 그 순간 모든 게 멈춘 듯했다. 꿈에 그리던 고려시대(918~1392) 수묵화를 본 것이다(그림1). 이 작품은 그동안 미술시장에서 퇴경(退耕) 권상로(權相老·1879~1965) 동국대 초대 총장의 그림으로 거래됐다(그림2). 그러나 다시 판매되는 과정에서 족자 표구 상태가 오래돼 조선시대 작품으로 봤고, 왼쪽 하단에 유하노인 글씨가 있어 그의 작품이라고 여겼다.

    백로 한 마리가 홀로 그려진 그림

    불화(佛畵)를 제외한, 고려나 조선시대 초기 그림으로 전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국적(國籍)에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작품이라고 단정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것이다. ‘그림1’이 우리나라 그림이라는 사실을 어떤 근거로 증명할 것인가.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닷가 마을 풍경이다(그림3).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묘사한 고려 민가와 똑같다.

    “백성은 열두어 집씩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고… 백성의 집은 지형과 높낮이가 벌집이나 개미굴 모양이었다. 띠를 잘라 지붕을 엮어 겨우 비바람을 가리는데, 그 크기는 서까래 두 개를 넘지 못했다.”



    ‘그림3’ 속 바닷가 초가삼간 12채는 ‘그림1’이 중국이나 일본 그림이 아닌, 우리나라 그림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그림1’이 고려시대 그림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근거로 증명할 것인가. 고려시대 불화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비단이나 종이에 그린 고려시대 그림은 단 한 점도 없다. ‘그림1’과 직접적으로 비교 검증할 그림이 없다는 뜻이다. 필자는 고려 문인들 글에서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신기하게도 비밀의 열쇠는 고려 대문호 이규보(1168~1241)에게 있었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그의 시 ‘온상인소축독화로사도’는 바로 ‘그림1’을 노래한 것이다.

    “그대는 못 봤는가, 이백이 지은 시에서 마음의 한가로움을 이야기한 것을/ 오다가다 모래톱가에 홀로 서 있네/ 누구의 그림 솜씨가 이토록 신통한가/ 그림 그린 묘한 뜻 이백의 마음과 방불하구나/ 나는 처음에 화공의 의취를 깨닫지 못해/ 턱을 괴고 벽에 기대 혼자서 생각했네/ 이미 강호(江湖)의 기절한 경치를 그렸으면/ 어째서 어부와 사공이 왕래하며 유유히 노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 이미 백로의 뜻을 이룬 모습을 그렸으면/ 어째서 노는 물고기와 기는 게가 분주하게 출몰하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 가만히 생각하고 묵묵히 추리해 비로소 알아냈으니/ 생각으로는 이르지 못할 점이 여기에 숨겨져 있는 줄을/ 저 백로 사람을 봤다면/ 모래톱 머리에서 날개 치며 화닥닥 일어나 놀라 날아갈 것이며/ 저 백로 물고기를 엿봤을 때라면/ 갈대밭 사이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 한가롭기는 어려우리/ 어찌 백로의 한가로운 모습으로 해금/ 도리어 참새처럼 깜짝깜짝 놀라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뜻을 아는 이가 적기에/ 내가 노래를 지어 비로소 널리 알리려 하네.”

    이규보는 승려 온상인이 소장한 ‘백로 한 마리가 홀로 그려진 그림’인 ‘독화로사도’를 봤다. 옛날 그림이라 아는 이가 없었기에 그는 혼자 한참을 생각해 화가의 창작의도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는 ‘독화로사도’가 당나라 이백(李白·710~762) 시 ‘백로(白鷺)’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시 첫째, 둘째 구절에 시 ‘백로’ 중 “心閑(마음의 한가로움)”과 “獨立沙洲傍(물가 모래톱가에 홀로 서 있네)”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가을 맑은 물가에 백로가 내려오네/ 마치 흰 서리 날리듯 외로이 내려오네/ 마음이 한가로운 듯 얼마 동안 가지 않고/ 물가 모래톱가에 홀로 서 있네(白鷺下秋水 孤飛如墜霜. 心閑且未去 獨立沙洲傍).”

    이규보 시 ‘온상인소축독화로사도’는 ‘그림1’이 고려시대 그림일 뿐 아니라, 당시로서도 오래돼 알기 힘든 그림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흥미롭게도 그의 시 제목이나 내용처럼 ‘그림1’은 산수화가 아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쇠백로이고, ‘강호의 기절한 경치’인 바닷가 섬마을은 정작 배경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그림 구도에 있다.

    800년 만의 기적 고려 수묵화 ‘독화로사도’ 발굴

    그림4 8세기 그림 ‘기상주악도’. 그림5 ‘독화로사도’의 구도 분석.

    선유도의 망주봉과 그 주변

    ‘그림1’의 구도는 일본 쇼소인(正倉院)이 소장한, 8세기 비파 위 가죽에 그린 ‘기상주악도(騎象奏樂圖)’(그림4)와 같다. 이 구도는 공간이 3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 공간은 백로가 서 있는 모래톱가이다. 두 번째 공간은 바닷가 섬에 있는 두 봉우리이고, 세 번째 공간은 바다 가운데 두 봉우리다. 세 공간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 백로가 주인공인 하나의 이야기이다(그림5).

    고려시대에는 풍수지리설과 절경의 자연경관을 그린 산수화가 유행했다. 비록 배경이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공간 또한 고려 문인에게 의미 있는 경치였음에 틀림없다. 필자는 황해도 예성항(벽란도)과 전북 군산시 옥도면 군산도(고군산군도 가운데 선유도) 경치에 주목했다. 필자가 답사한 결과, 두 번째 공간은 선유도 망주봉과 그 주변 경치를 그린 것이다.

    두 번째 공간에서 망주봉 위에 그린 정자는 군산정과 관계가 있다. 서긍은 ‘고려도경’에서 망주봉과 군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군산정은 바닷가에 있고 두 봉우리에 의지했는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어 절벽을 이루고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관문 밖에는 관아 십여 칸이 있고, 서쪽 가까운 산 위에는 오룡묘와 자복사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이 있고 그 전후좌우로 민가가 열 두어 채 있다.”

    마지막 공간은 바다 가운데 두 봉우리와 그 밑에 작은 암초들로 이뤄져 있다. 1074년 이후 송나라나 고려 사람이 협계산(소흑산도)-군산도(선유도)-마도(안면도)-자연도(영종도)-예성항(벽란도)을 잇는 뱃길로 올 때 두 봉우리가 나타나면 고려에 도착한 것으로 여겼다. ‘고려도경’은 두 봉우리를 쌍계산이라 했고, 지금의 소흑산도 독실산으로 추정된다.

    이규보가 시로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명화는 그로부터 800년이 지난 오늘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고려시대 순수 회화작품이 한 점도 없는 상황에서 고려 문인화가가 그린 수묵화 ‘독화로사도’(그림1)를 발굴한 것이다.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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