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9

2013.03.18

신나는 기타 선율 죽어가는 교육 춤추게 했다

미국의 초등교사 데이비드 위시

  • 고영 소셜컨설팅그룹 대표 purist0@empas.com

    입력2013-03-18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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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나는 기타 선율 죽어가는 교육 춤추게 했다

    리틀 키즈 록 수업에 참석한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모습(왼쪽)과 후원 프로그램에 참여한 미국 유명 연예인들.

    미국 영화배우이자 가수 잭 블랙이 주연한 ‘스쿨 오브 록(School of Rock)’이란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뚱뚱하고 촌스러운 외모 때문에 록밴드에서 쫓겨난 주인공은 생활비가 떨어지고 집세까지 밀리자 친구 이름을 사칭해 한 사립 초등학교 대리 음악교사로 취직한다. 수업 첫날 그는 학생들에게 어떤 악기를 다룰 줄 아는지부터 묻고는 바로 학생 밴드를 만든다. 딱딱한 음악수업은 사라지고 교실 너머로 기타, 피아노, 첼로, 키보드, 드럼 소리가 울려퍼진다. 주인공은 가짜 선생이라는 사실이 들통 나는 바람에 한차례 곤욕을 치르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과 함께 밴드 경연대회에 나가 못 이룬 로커 꿈을 대신 이룬다.

    영화는 대박 났고 평단 극찬도 받았지만 정작 미국 교육 현실은 정반대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교육재정이 줄면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수학 성적 올리기 경쟁이 시작됐다. 공립학교에서 가장 먼저 음악수업을 없앴고, 음악교사들은 학교를 떠나기 시작했다. 미국 전체 초중고교 가운데 60% 가까운 학교에서 음악수업이 사라졌다.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라도 피아노를 배울 수 있지만, 먹고살기 빠듯한 가정의 아이들은 음악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빼앗겨버렸다. 교육재정 적자가 심각해지자 사람들은 음악수업이 사라지는 학교 교육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교육정책을 비난하며 앞으로 일어날 재난에 대해 예언을 쏟아냈다. 그 비난과 냉소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있었다.

    음악교실서 숨겨진 재능 폭발

    오늘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 주 레드우드 시티 한 공립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데이비드 위시다. 매사추세츠 주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사회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사실 평범한 교사에 불과했다. 낮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카페에서 재즈기타를 치며 자신의 취미를 이어갔다는 정도가 특이할까. 당시 캘리포니아 주는 50%에 가까운 초중고교에서 음악수업이 폐지된 상태였고, 음악교사 27%가 일자리를 잃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아이들에게 음악교육을 시킬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위시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아이들에게 음악이나 미술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 다음 세대와의 문화적 계약을 파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술을 통해 함께 배우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가르치지 못한다면 미국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위시는 자신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먼저 지인을 찾아다니며 기타를 구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르치던 1, 2학년 아이 20명에게 기타를 나눠주고 그만의 방식으로 즐거운 ‘음악교실’을 열었다. 이름 하여 ‘리틀 키즈 록(Little Kids Rock)’. 음악교실 반응은 뜨거웠다. 아이들의 숨겨진 음악적 재능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교실에 참여한 첫 아이들 가운데 하나였던 세르지오는 기타 코드를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은 공룡(Little Dinosaur)’이란 곡을 만들어 아이들 앞에서 연주했다. 그 독특한 곡조에 놀란 위시는 직접 세르지오가 만든 곡을 녹음한 뒤 CD로 제작해 자선활동에 적극적인 유명 그룹 가수들에게 보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가수이자 작곡가인 보니 레이트가 즉각 회답을 해왔다. “고사리 손으로 만들었다는 이 음악에 놀랐다. 기타 선율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는 감사의 말이었다.

    신나는 기타 선율 죽어가는 교육 춤추게 했다

    리틀 키즈 록 설립자인 데이비드 위시(왼쪽)와 첫 후원자였던 가수 보니 레이트.

    이후 레이트의 소개로 수많은 팝계 거성이 리틀 키즈 록 후견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폴 사이먼, 산타나, 비비 킹, 제시 매카트니, 릭 스프링필드 등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이의 도움이 줄줄이 이어졌다. 원로 연주자 제임스 버튼은 루이지애나 주에 리틀 키즈 록 지부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유명인의 관심만큼이나 늘어난 것은 그동안 무관심하던 교사들의 지원이었다.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일상에 음악이 흘러 들어오자 교사들도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실감했던 것이다.

    음악이 아이들 삶에 친구가 되고, 언제나 함께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던 위시는 점심시간은 물론, 수업 전 이른 아침에도 짬을 내 아이들과 만났다. 점점 많아지는 아이들을 위해 위시는 학교를 떠나 음악교실 사업에 전념하기로 마음먹는다. 2002년 7월 리틀 키즈 록을 비영리단체로 정식 등록하고 해마다 음악교실 수를 2배씩 늘렸다. 2005년에는 유망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드래퍼리처드 재단으로부터 3년간 매해 10만 달러씩 지원받기도 했다.

    아이들 꿈과 창의력 자극

    위시의 무료 음악교실이 이처럼 빠르게 성장한 데는 그만의 독특한 수업방식이 큰 힘이 됐다. 무엇보다 어린이용 바이올린 교본 개발자로 유명한 일본 음악교육가 스즈키 신이치의 교육철학이 그 밑바탕이 됐다. 일단 아이들 귀에 익숙한 유행가를 수업 교재로 삼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지도방법만 좋으면 능력은 얼마든지 후천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스즈키는 청음, 즉 듣기 훈련을 강조하는 독특한 음악교육 방법을 창안한 바 있다. 음악도 언어를 익히듯 귀가 뚫리는 게 먼저고, 듣기와 악기 연습을 충분히 한 후 악보를 읽는 게 순서라는 것이다.

    위시는 스즈키 방식을 거의 그대로 수업에 적용했다. 먼저 아이들에게 기타를 나눠주고 기본 코드를 알려준 뒤 신나게 치게 한다.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묻고는 음악을 크게 틀어주고 그 곡을 기타로 연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이들이 직접 작곡과 즉흥연주를 하게 하면서 듣기, 읽기, 쓰기 3박자가 동시에 맞아떨어지게 한 것이다. 계속적인 대화를 통해 표현하고 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아이들은 창조적 즐거움을 느꼈고, 청소년의 경우, 그 나이 때쯤 빠지기 쉬운 일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의지력도 커졌다.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과 함께 남을 배려하는 소양도 갖추게 됐다. 음악교실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학교생활이 즐거워지고 집중력이 생기자 성적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15년 넘게 활동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위시가 회고한 말이다.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정규교사 수천 명이 10만 명이 넘는 아이들과 방과 후 다양한 음악을 기타로 배운다. 위시는 교사끼리 구체적인 상황을 공유하도록 고객정보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연주 실력은 어느 정도 향상됐는지, 작곡이나 즉흥연주 실력은 어떤지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전체 공립학교 학생 가운데 절반이 넘는 아이가 음악교실에 참석하며, 수업시간에 기타를 무료로 제공받고, 희망자에 한해 무상으로 선물받기도 한다. 학교에서 음악에 대한 꿈이 점차 일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위시의 다음과 같은 다짐이 다부지게 들리는 이유는 그가 이미 미국 곳곳에서 기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조금씩 바꿔간다면 아이들은 더욱 성장할 것이다. 변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시야를 넓히지 못하는 어른들이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아이들의 꿈과 창의력을 자극할 음악교육이라고 믿는다. 나는 앞으로도 아이들의 콧노래와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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