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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 인생

‘천의 얼굴’엔 다 이유가 있다

골프장에 숨은 욕망

‘천의 얼굴’엔 다 이유가 있다

‘천의 얼굴’엔 다 이유가 있다

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새로 개장하는 골프장을 홍보하는 경우 누가 설계했다는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잭 니클라우스가 했다느니, 캐리 웨브가 했다느니 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를 등장시킨다. 과연 그들이 만들었다고 더 멋있고, 자연경관을 더 많이 살려 폼이 날까.

골프 발상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지방이라고 익히 알려졌다. 목동들이 우리식 자치기를 하다 ‘구멍 넣기’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만들어낸 얘기가 아닌가 싶다. 이리 해보고 저리 해보다 진화한 것이지, 오로지 구멍 넣기만 목적으로 하던 놀이였을까. 어쨌든 거기서 출발해 영국으로, 미국으로, 일본으로 넘어온 다음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어디까지나 기록이 아닌 구전으로 전해지는 얘기다.

엄밀히 말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기록은 스코틀랜드 제임스 2세 국왕이 영국과 전쟁을 벌일 당시 골프를 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이 전부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골프 금지령을 자주 내렸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중국도 자기네가 원조라 하고, 우리나라도 격구라는 이름의 골프 비슷한 놀이가 있었다며 슬그머니 원조 타령에 발을 집어넣고 있다.

골프장 구조와 설계 이면을 알아야 골프 진수를 알 수 있다. 에든버러 지방 해안가에 자리한 골프장은 자연 그대로의 잔디에 그냥 정리만 해놓았다. 항상 습도가 유지되고 잔디 상태도 일정해 골프 원조 지역답게 바람, 비, 모래 등 자연 그대로 골프장을 운용한다. 즉, 구멍을 만들어놓고 적당히 관리만 하면 되는 곳이 여기다. 그래서 골프 성지라 불린다. 브리티시 오픈이 열리는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코스를 보면 엄청난 크기의 항아리 벙커가 특징인데, 최경주 선수가 세 번 만에 벙커를 벗어나는 묘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일본 선수가 네 번 만에 탈출했다고 해서 어느 홀 벙커를 ‘나카지마 벙커’라고 이름 붙였겠는가. 이런 자연 상태의 해안가 골프장을 골프 링크스라고 한다.

링크와 파크 그리고 군대코스



내륙지방에 있는 골프장은 파크랜드라고 부른다. 골프 인구는 늘고 자연 상태 골프장은 적으니, 내륙지방으로 옮겨 즐기자고 해서 만든 것이다. 15세기 시작된 골프장 건설은 중장비가 있어 깎고 미는 것이 아니었다. 삽과 곡괭이로만 건설했으니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공원처럼 조성해야 다니는 맛이 난다고, 산악지방에서조차 골프장을 공원같이 만들었다. 그래도 산악, 하천 등 자연을 최대한 살려 만들었으니, 골프에 매료된 당시 유럽 귀족의 운치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시종을 데리고 나와 공과 채를 운반하게 만든 풍토가 오늘날 캐디문화로 이어졌다.

따라서 골프장은 큰 틀에서 해안에 있느냐, 내륙에 있느냐를 따져 링크코스와 파크코스로 구분한다. 재미있게도 우리나라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군대코스가 바로 그것이다. 장소 불문하고 군대, 특히 비행장과 조종사가 주둔하는 곳 옆에 건설한 것이 군대 골프장이다. 최초의 군대코스는 서울공항이라고도 부르는 공군성남기지였다. 6·25전쟁 때 미군 수송물자를 야적할 곳이 필요해 활주로 옆 넓은 공터를 잔디로 덮은 것이 골프장이 됐다.

군인들이 무슨 골프냐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의외로 조종사에게는 골프가 최상의 운동이다. 테니스나 축구 같은 과격한 운동은 부상 위험이 있어 조종사에게는 치명적이다. 더구나 조종사는 늘 출격 태세를 갖추고 영내에 대기해야 한다. 따라서 군대코스는 비상시 물자 저장소이면서, 평상시에는 조종사 대기 장소다. 이렇듯 일석삼조 효과가 있어 군대 골프장이 건설된 것이다. 공군성남기지를 원조로 육군과 해군 골프장까지 생겼다. 현재 31개 군대 골프장이 있다. 나 같은 사람도 골프를 접한 것이 우연이 아님을 말하는 한반도의 역사적 필연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내륙지방 골프장에는 설계자의 의도가 반드시 숨어 있다. 자연 그대로의 링크가 아닌, 파크 형태 골프장은 세 가지 유형이 기본이다.

첫째, 벌칙형이다. 한 번 실수하면 한 타를 까먹으라는 의도인데, 벙커나 깊은 러프, 솥뚜껑형 그린이 그것이다. 솥뚜껑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린 형태가 솥뚜껑처럼 생겨서 그렇게 부른다. 장소와 그린이 모두 좁아 온 그린을 해도 스리 퍼트가 되도록 설계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전략형이다. 세컨드 샷이나 서드 샷을 어느 지점으로 보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핀이 꽂힌 자리는 벙커 바로 뒤다. 또는 홀을 직접 공략하지 못하도록 까다로운 자리에 홀컵을 위치시킨다. 이는 골퍼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티샷 공을 어느 지점에 갖다 놓아야 온 그린이 쉬울까 전략을 짜라는 뜻이다. 드라이버가 아닌 3번 우드나 아이언 티샷을 고민해보라는 설계자의 의도다.

셋째, 모험형이다. 쉬운 것같이 해놓고 곳곳에 함정을 판 코스다. 300야드 미만의 짧은 코스를 만들어놓고 좌우나 옆에 깊은 러프, 벙커를 함께 만든다. 원온 욕심을 부리게 유도하는데, 까딱 실수하면 다른 코스보다 스코어가 더 안 나온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호승심을 부추기는 코스다.

위 세 가지 유형 외에 말은 못 하지만 깊은 속뜻을 가진, 여체를 상상하며 정복 개념으로 설계한 것도 있다. 소위 말하는 색도를 즐기라고 슬그머니 숨겨놓은 것이다. 그린 2개가 왜 필요한가. 한쪽만 쓰면 망가지기 때문에? 그러면 티샷 지점도 두 곳을 만들어야지 왜 한 곳인가.

답은 간단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부드러운 가슴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린과 그린 사이를 느껴본 적 있는가. 계곡 품에 안기는 듯해 포근함이 전해진다. 태아 시절 안온함이 느껴진다. 언덕과 잔디가 절묘하게 배합된 구릉지대를 걸으면서 따뜻함과 정복자의 쾌감을 느껴본 적 있는가. 남성이 가지는 유전자적 씨 뿌림의 은유다. 고생하지 않고도 정복하는 쾌감의 내면화다.

그린 2개가 필요한 이유

모든 페어웨이는 부드러운 곡선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맨땅 위를 곡선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잔디로 덮인 지면을 꾹꾹 누르면서 곡선으로 밟아가는 것이다. 모성애와 성감을 결합한 인간 본성의 내면이다.

벙커 위치를 잘 살펴보라. 아무 곳이나 파놓지 않았다. 목적지의 최종점, 마지막 정복지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해놓은 것이다. 반면 그린 근처에는 물 고인 해저드가 적다. 물은 곧 탄생 지점으로, 몸을 담그는 곳이다. 깊이 빠져드는 상상이 무의식으로 다가가는 곳에 해저드가 자리한다. 이것이 거짓말 같다면 꿈을 한번 생각해보라. 물에 빠지거나 헤엄치는 꿈을 꿨다면 당신은 정력이 넘치거나 성욕 불만자다. 물은 그런 의미를 지닌다.

골프장은 이처럼 무의식의 자연 합일과 인간 욕망을 숨은 뜻으로 갖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편으로만 다가서지 마라. 자신을 돌아보고 자연을 살펴보며 존재를 알아가는 의식의 세계로 접근하라. 만들어진 골프장에 적응하기보다 그 이면의 주인이 되는 자각 의식을 깨우친 사람이 진정한 골프 고수다.



주간동아 2013.03.11 878호 (p62~63)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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