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8

2013.03.11

“보람은 무슨, 우물 바닥 긁는데…”

사회복지사 업무 산더미에 죽을 맛…민원인에 상처 받아 마음병도 깊어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입력2013-03-11 0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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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닷새는 야근, 퇴근은 빨라야 저녁 10시다. 업무에 시달리는 건 주말에도 마찬가지. 한 달에 쉴 수 있는 날은 고작 2~3일인데, 그것도 복지급여 정산이 끝난 월말경 주말이나 공휴일이 전부다. 자영업자나 대기업 말단사원 이야기가 아니다. ‘복지국가’ 출발선에 선 대한민국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은 제대로 시동도 걸기 전 이미 연료가 바닥난 상태다.

    2월 26일 주민센터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32세 예비신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무하기 힘들다.” 그의 유서는 새 정부 출범에 앞서 복지국가에 대한 희망으로 들떠 있던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더 무서운 것은 그의 비극을 ‘개인사’로 치부하기엔 우리나라 사회복지사 일상이 너무 고달프다는 동료 사회복지사의 증언이 잇따른다는 점이다. “나도 그런 마음이 들 때가 있다”는 그들의 속내, 단지 과도한 업무량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는 공무원 사회 ‘깔때기’?

    퇴근시간 무렵 서울시내 모 구청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김효영(가명), 양미경(가명), 남경희(가명) 사회복지사를 만났다.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들에게 퇴근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김씨와 남씨는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아 시간이 자유롭지만, 어린 아들과 얼굴 마주할 시간조차 없는 양씨는 마음이 조마조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도 공무원이에요. 제가 처음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남편은 잠시 일이 바쁜 거겠지 생각하고 이해해주더라고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이젠 주말에도 집에 있을 때가 거의 없을 정도로 바빠지니 남편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더라고요. 육아도 거의 남편 몫이고…. 부부싸움까지 잦아졌어요.”



    이번 사회복지사 투신사건에 대해 양씨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과로로 건강이 악화하거나 유산 등 안타까운 일을 겪는 경우가 이미 사회복지사 사이에서 공공연하다는 것이다. 세 사람 모두 곪고 곪은 문제가 극단적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인력만 충원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했죠. 인력 충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적도 있고요. 그런데 지금 인력 충원이 진행되는데도 피부로 느껴지는 업무량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인력 부족만의 문제가 아닌 거죠.”

    20여 년을 사회복지사로 일했다는 남씨는 사회복지사를 ‘깔때기’에 비유했다. 뭐든 우격다짐으로 쏟아놓으면 다 소화해내야 하는 게 사회복지사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복지제도를 본격 도입한 것은 10여 년 전. 이전에도 다양한 제도가 있긴 했지만 그나마 ‘복지제도’다운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실현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어난 업무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사회복지사가 폭탄을 맞은 것은 지난해 행복이음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다.

    “행복이음 시스템 자체는 정말 합리적이고 좋은 제도예요. 복지 관련 창구를 일원화해 혼선을 막을 수 있고, 정착만 잘된다면 복잡한 업무를 간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시스템을 현재 엉뚱하게 활용한다는 게 문제예요. 모든 업무를 사회복지국으로 떠넘기려고 만든 제도가 아닌데, 임대주택 대상자 선정부터 보육비 지급, 무료급식 신청까지 기존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교육과학기술부 등 다른 부서에서 하던 관련 업무까지 모두 사회복지국에서 처리하게 된 거예요. 앞으로 또 어떤 업무가 통째로 넘어올지 몰라요. 현재 이렇게 집중된 사업 종류만 298가지예요. 주민센터 한 곳당 사회복지사가 적게는 1명, 많아봤자 4명 정도인데, 이들이 관내 저소득가정과 장애인을 관리하고 수많은 민원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복지사업 현장업무도 진행해야 해요.”

    이로 인해 생긴 가장 큰 부작용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사 업무 특질이 훼손돼 업무 질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낮 동안 장애인증 발급, 서류 처리, 그리고 쏟아지는 전화민원과 방문민원 같은 단순 업무를 처리하느라 사회복지사만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업무를 진행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방문업무 같은 중요한 일은 주말이나 공휴일로 미뤄둘 수밖에 없고, 주민과 친밀하게 관계를 유지하며 느꼈던 사회복지사로서의 보람과 책임감은 옛이야기가 돼버렸다는 것이 남씨 주장이다.

    “물론 인력 확충이 많이 이뤄졌어요. 그런데 과거 인력이 부족하던 때는 오히려 다른 부서와 협업이나 업무 분담이 잘되는 편이어서 부담이 적었는데, 요즘은 어느 부서에서도 사회복지국 업무를 선뜻 도와주지 않아요. 오히려 다른 부서 업무였던 것까지 사회복지국을 통해 결과물만 받아가는 시스템이 돼버려 업무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거죠.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보람은 무슨, 우물 바닥 긁는데…”

    주간동아와 인터뷰하는 현직 사회복지사 3명.

    남씨는 검증되지 않은 복지제도 남발도 현장업무를 진행하는 사회복지사를 옥죄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법과 제도는 충분한 검토 및 검증을 거친 후 시행돼야 하는데, 최근 ‘복지’가 좋은 정치 선전수단이 되면서 너도나도 말만 번지르르한 정책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새로 도입한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 툭하면 수정안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로는 쉽지만 그 제도를 실제 시행해야 하는 처지에선 좀 더 질 높은 복지업무를 실현하게 됐다기보다 오히려 이리저리 치이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업무량

    사회 전반에 팽배한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문제일까. 사회복지사를 대하는 주민 태도도 이들에겐 큰 상처다. 구청 내 복지정책과 통합조사팀에서 근무한다는 김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이 상실감이라고 토로했다. 복지급여 신청자를 심사하고 급여액을 책정하는 일이 주된 업무이다 보니 급여 신청자로부터 뜻하지 않은 뭇매를 맞을 때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과거에 비해 복지제도가 많이 나아졌다지만 대상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생각보다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사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처음 주민센터를 방문할 때는 다들 정부 지원이 큰 힘이 되리란 기대를 안고 오세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국가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고, 그분들 기대에 못 미치게 마련이니까….”

    아직 20대인 그가 감당하기에 벅찬 일은 또 있다.

    “인력이 부족해 조를 이뤄 방문업무를 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상황이 되면 관내 공익근무요원과 동행하기도 하지만, 늘 그럴 수는 없으니까 혼자 가정방문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알코올 중독자나 출소자가 저를 위협하거나 성추행하기도 하더라고요. 몇 번 그런 일을 당하니 세상 모든 사람이 무섭고 겁이 나요.”

    학창 시절 사회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을 평생 업으로 삼고자 선택한 전공이지만, 그는 종종 후회될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극단적인 일을 자주 당하다 보니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게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선 안 되는 걸 잘 알면서도 혼자 방문업무를 할 때면 늘 상대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실제 복지급여 수급 대상자가 동네에서 말썽이나 사고를 일으키면 으레 주민은 사회복지사를 불러 해결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힘만으로는 설득과 제어가 되지 않아 난감할 때가 많다. 게다가 사회복지사 90%가량이 여성이다. 그렇다고 사회복지사 성비율 조절이 생각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관내에서도 사회복지국은 기피 대상 일순위인 데다 사회복지학 전공자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복지급여 수급 대상자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주민은 쉽게 사회복지사들을 비난하지만, 그로 인해 사회복지사가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사람이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사회복지사 일인데, 이런 마음 상태로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어주기란 참 쉽지 않더라고요. 다들 녹을 먹는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니냐, 사회복지사는 다른 공무원보다 더 착하고 더 희생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우리도 사람이고 생활인이다 보니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척척 해낼 수는 없더라고요.”

    일상 여유조차 부담스러워

    “보람은 무슨, 우물 바닥 긁는데…”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한 독거노인을 방문한 사회복지사들(위)과 지난해 말 열린 서울시 한 구청의 사회복지사 워크숍 장면.

    집 앞 눈을 치워달라, 가스 불을 켜놓고 온 것 같으니 가서 꺼달라, 창문을 열어놓고 온 것 같으니 가서 확인해달라, 옆집 개가 시끄러우니 가서 대신 싸워달라 등 하루에 걸려오는 민원전화 수십, 수백 통 중에는 말도 안 되는 요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요구 대부분에는 공무원이니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의 고충을 이해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들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이유다.

    보람찬 순간은 없었는지 묻자 김씨가 슬그머니 웃는다.

    “형편이 어려워 힘들어하던 분이 재기에 성공해 그동안 고마웠다며 찾아왔을 때요.”

    옆에서 남씨가 거든다.

    “10여 년 전만 해도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집에서 담근 된장이며 누룽지 같은 걸 싸들고 오는 분이 종종 있었어요. 공무원과 주민 관계라기보다 이웃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일이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죠. 소소한 행복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다른 곳에선 인자한 분도 주민센터나 구청에만 오면 큰소리치고 막말하고 그래요. 공공기관에서 큰소리치고 뭔가를 얻어가는 게 자기 권리인 것처럼 돼버린 사회분위기 탓이 아닐까 싶어요. 그럴 때면 차라리 월급이 적고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민간센터 같은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씨는 요즘 자신의 마음 상태를 말라버린 우물 바닥을 닥닥 긁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말라버렸다’는 표현을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사용했다.

    가족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돼버린 그들에게는 누군가와 차 한 잔 마시며 나누는 일상 여유조차 부담스러운 일이 된 듯했다. 인터뷰가 길어지자 세 사람 모두 업무가 밀렸는지 슬그머니 초조한 기색을 보여 인터뷰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들의 힘겨운 일상은 누구 한 사람만의 잘못도, 미흡한 제도만의 문제도 아닌 듯했다. 분명한 것은 미래 복지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은 ‘마음을 나누는 일’에 지쳐버린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자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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