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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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유학 뜯어말린다?

誘學, 遊學, 油學 부정적 이미지…중국어 실력이 성공 필요충분조건

  • 노은 재중국 작가 grace12@hanmail.net

    입력2013-02-25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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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유학 뜯어말린다?

    중국 베이징시 오도구의 한국 상가거리.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읽어보셨죠? 중국에 유학 온 한국 학생이 마치 그런 무인도에 사는 사람 같습니다. 적응을 못 해서이기도 하고, 외로워서이기도 하죠.”

    유학생 300명을 지도하는 상하이한인연합교회 대학부 최권익 목사의 얘기다. 필자가 “그 정도로 비관적이냐”고 되묻자 정색하며, “미국 유학이 성공적이라면 중국 유학은 실패”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 학생과 상담해보면 한국에 설 자리가 없어 자의 반 타의 반 등 떼밀려서 온 아이가 대부분이고, 그중엔 부모가 아예 포기한 아이도 적지 않다는 것. 다른 유학원 관계자나 교민사회 청소년교육 담당자들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종종 일어나는 한국 유학생의 폭력사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한국 유학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장난기 섞인 중국인의 비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꾐에 빠져온 유학(誘學), 멋모르고 흘러온 유학(流學),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유학(油學), 자포자기로 노는 유학(遊學)…. 한국인들도 일리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윤형건 자오퉁대 교수(산업디자인 전공)는 중국인 교수 사이에서 한국 학생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다고 털어놨다. 한국 학생이 예의는 바르지만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결석이 많은 데다 학점도 못 받으니 좋아할 교수가 없다는 것. 윤 교수는 “내 강의를 듣는 한국 학생은 극소수지만 도와주고 싶어도 도움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다. 심지어 숙제도 제 시간에 제출하지 못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자오퉁대 한 유학생은 “전체 유학생 가운데 20% 안팎만 정상적으로 졸업한다”면서 “5~`6년 만에 졸업하는 학생도 있지만 이 경우 대부분 졸업증이 아니라 수료증을 받는다”고 말했다. 푸단대에서 한국학개론을 강의했던 박창근 교수(조선족, 한국학 전공)는 “한국 유학생은 필기도 못하는 수준이면서 현실 정치에는 민감해 한국 뉴스와 드라마에만 빠져 있다”며 “통계를 제시하면서 한강 기적에 대해 강의하는데 한국 학생들이 내 연구 내용을 부정하면서 ‘오마이뉴스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더라”고 전했다.

    중국 전역에 6만2000여 명

    중국 내 한국 유학생 수는 상하이에만 5000여 명, 대학이 가장 많은 베이징에는 3만여 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전역에 6만2000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에 있는 한국 유학생 수보다 많다. 중국에 이렇게 많은 한국 유학생이 있지만 학습 태도에 대한 평가가 좋은 곳은 드물다. 오전에만 출석하고 오후에는 놀러 다니며, 밤에는 술집에서 시간을 보낼 뿐 아니라, 더러는 경비를 아낀다는 핑계로 혼숙도 서슴지 않는다. 밤이면 학교 인근 술집이 불야성을 이룬다. 자오퉁대 유학생회장을 지낸 박성광 씨는 “술로 시작해 술로 망하는 유학생을 자주 봤다”며 “유학생 3명만 모이면 술자리를 만든다는 얘기가 있으며, 일부 학생은 남녀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를 쳐 유학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것을 종종 목격했다”고 전했다.

    중국에 와서야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은 중국어를 배우다 졸업하는 셈이 된다. 급한 마음에 중국인 가정교사를 구해 지도를 받기도 한다. 실제로 ‘푸단대 커뮤니티’ 같은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면 중국어 가정교사를 구하는 한국 학생 글이 끊이지 않는다. 올해부터 푸단대가 한국 학생 선발 규모를 70%나 줄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대학생은 ‘중국 유학 성공 5계명’을 이렇게 제시했다. △선생님 말씀을 존중하고 무조건 지켜라 △외국인이라고 자만하지 말라 △중국 문화를 존중하라 △중국어를 못해도 학업은 포기하지 말라 △중국 학생과 친하게 지내라.

    중국 본과에서 수업받기가 쉽지 않으니 한국 학생 대부분은 외국인 학생이 수강하는 대외한어과나 국제영어과, 혹은 중영학과를 신청한다. 그러나 이 또한 영어 실력이 부족하면 따라가기가 만만치 않다. 자오퉁대 한국유학생회장 오민승 씨는 “전체 유학생 가운데 절반이 한국 학생인데, 1/3은 열심히 하고 1/3은 보통이며 나머지 1/3은 1년 내 퇴학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한국 유학생이 모두 문제라는 얘기는 아니다. 일부 학생은 본과 강의도 성공적으로 수강한다. 대부분 중국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거나 중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중국어 실력을 쌓은 학생이다. 이런 학생들은 불철주야 공부에만 매달린다. 북경서울학원장을 지낸 윤현선 씨는 “4년 전만 해도 베이징에 오는 유학생 90%가 부모 이혼 때문이거나 한국 학교에서 사고 치고 온 도피성 유학이었고 중국 학교들이 이들을 거의 받아들였지만, 최근엔 중국 학교들이 국제부를 신설하는 등 학사 관리를 엄격히 한다”고 전했다.

    중국 유학 뜯어말린다?

    중국 베이징시의 한 대학 구내식당에서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한국 유학생들.

    1/3은 열공 1/3은 보통 1/3은 퇴학

    베이징 중국 학교에서 한국유학생부를 맡은 김재원 교사는 “지난해부터 우수한 학생, 특히 외국에서 1~2년 생활한 학생들이 중국으로 오고 있다”면서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유명 대학에 입학하려면 4대 1에서 6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푸단대, 저장대 정도를 명문으로 꼽는다. 인민대학의 경우 지난해 4월 말 한국 학생 800명이 응시했으나 188명만 합격했다. 이렇듯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중국 대학에 들어가려는 한국 유학생은 재수, 삼수가 보통이라고 한다. 시험과목은 중국어, 영어, 수학 세 과목이다.

    중국에 있는 한국 학부모는 대부분 외국 거주 기간을 활용한 특례입학 전형으로 자녀가 한국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선호한다. 베이징 한국학교의 경우 서울대 포함 51개 대학에 229명, 상하이 한국학교의 경우 연세대와 고려대를 포함해 48개 대학에 105명이 진학했다. 상하이 SAS국제학교는 2년 전 미국 아이비리그에 30여 명을 입학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학부모들은 영어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국제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상하이에 있는 국제학교는 한국 학생들이 먹여살린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한국 학생 비율이 20%를 육박한다. 입학절차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학비는 1년에 3500만 원 안팎이다. 두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내면 부대비용까지 연 1억 원가량 드는 셈이다. 주재원들은 회사에서 학비 전액 혹은 절반을 지원받을 수 있다지만, 일반 자영업자들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국제학교 입학을 목적으로 중국행을 택하는 이도 적지 않다. 여기저기서 기러기 가족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학부모는 영어 실력을 키워볼 목적으로 자녀를 국제학교에 보낸다지만, 실상 한국어 실력만 약해지고 중도에 귀국이라도 하면 한국 학교 교육과정을 따라잡기 어려워 이중고를 겪는다. 대한항공 중국지사 한 관계자는 “아들이 베이징에서 국제학교를 마치고 한국 대학에 지원했지만 떨어져 재수하는데, 중국 관련 전공을 하고 싶어도 중국어 실력이 안 돼서 지금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운다”고 말했다.

    중국 유학 뜯어말린다?

    중국 자오퉁대학에서 열린 한 공연 장면.

    중국 현지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해 대학생활을 무난히 했더라도 졸업 후가 문제다. 중국 명문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이들도 좋은 직장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다. 중국 대졸자 취업 현황을 정확히 추산하긴 어렵지만, 대학들은 대체로 유학생 취업률을 10%로 보고, 교민사회에서는 그보다 훨씬 낮은 5%로 잡는다.

    이렇듯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대체로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중국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국 유학생은 중국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국 사정에 밝지 못하고 중국 내 인적 네트워크도 없으면서 급여 기대치는 높다는 게 기업들의 평가다. 이직이 잦은 점도 기업들이 한국 유학생을 꺼리는 이유다. 그래서 조선족이나 한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중국인을 선호한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보니 베이징에서는 베이징대 한국학생회를 중심으로 여러 대학이 연합해 취업정보를 나누는가 하면, 상하이에서는 한상회(한인회)와 무역협회 등이 취업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영어 실력 갖춰야 취업에 유리

    중국에 들어와 있는 미국과 유럽 기업도 한국인 졸업생보다 중국인을 선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영어 실력이 월등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차피 중국 대학 졸업자 가운데 채용해야 하는 외국 기업 처지에선 영어 실력이 뛰어난 지원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인들도 중국어를 잘하고 영어까지 잘하면 취업에 쉽게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상하이에서 취업영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쳐온 H어학원의 그레이스 김은 “영어 잘하고 중국어까지 잘하는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유리하다”면서 “영어 말하기를 제대로 가르쳐 외국 기업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상하이엔 전 세계 유명 기업이 거의 다 진출해 있으니 젊은이들에겐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H어학원 출신 유학생이 상하이에 있는 독일계 제약회사 바이엘, 홍콩마카오 항공사, 바이킹 투자금융 등 여러 외국 기업에 취업했다. 홍콩마카오 항공사에 승무원으로 입사한 오미영 씨는 저장대 영문과 졸업을 앞둔 여름방학 때 한 달 동안 매일 영어 말하기를 집중 훈련했다고 한다. 윤현선 전 북경서울학원장은 “취업현장에선 영어 실력을 포함한 인문학적 교양을 쌓은 사람이 우대받는다”고 말했다.

    한국 유학생이 학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려면 첫째도, 둘째도 중국어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산 너머 산이라고, 어렵게 학업을 마치고도 더 큰 산인 취업이 버티고 있으니 요즘은 영어 실력만이라도 완벽하게 다듬어 외국 기업에 도전해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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