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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물리학자 김범준의 이색 연구Ⅰ혈액형과 성격

혈액형에 확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고?

혈액형에 확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고?

김범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고 스웨덴 우메아대, 아주대 물리학과 교수를 거쳐 성균관대에 재직 중인 정통 물리학자다. 과학자 눈으로 세상 문제를 풀어내기를 좋아하는 그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우리가 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연구결과를 ‘주간동아’에 소개할 계획이다.

서점에서 서가를 둘러보면 눈에 잘 띄는 위치에 상당히 많은 종류의 혈액형 관련 서적이 자리한 것을 볼 수 있다. ‘O형 여자가 A형 O형 B형 그리고 AB형 남자에게 끌릴 때’ ‘A형 자기설명서’ 등이 그것이다. 한때 ‘B형 남자’ 담론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혈액형이 B형인 남자는 특정한 성격 유형을 지녀 사회생활이나 남녀관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속설을 반영한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까지 개봉했다. 요즘엔 고객의 혈액형 정보를 이용해 특화된 마케팅을 펼치겠다는 회사가 있고, 신입사원의 부서배치에 혈액형을 이용하는 회사도 있다고 들었다. 한 사람의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가설은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에게 이제 상식이 된 듯하다.

그렇다면 정말 그럴까. 한 인간이 갖는 다양한 생물학적 정보 가운데 아주 단순한 부분인 혈액형이라는 정보가 정말 개인의 ‘성격’이라는 다면적 면모를 설명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내와 웃으며 시작한 이에 대한 논의는 금세 열띤 논쟁이 됐다. 내 사랑하는 아내가(심지어 물리학자의 아내가!)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충격을 받은 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과학적,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일이 과학자로서 해야 할 책무라고 느꼈다. 사실 과학자 사회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이야기라 별 관심이 없겠지만.

혈액형에 확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고?
혈액형에 확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고?
먼저 결혼한 남녀의 혈액형에 특정 패턴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간단한 설문지를 배포하고 온라인에 입력창을 만들어 자료를 모았다. 이를 통해 얻은 결과가 ‘표1’이다. 전체 377쌍 부부 가운데 남편, 아내 모두 A형인 부부는 40쌍, 둘 다 AB형인 부부는 단 두 쌍뿐이다.

결혼한 남녀 혈액형의 특정 패턴

혈액형에 확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고?

영화 ‘B형 남자친구’ 포스터.

그렇다면 AB형 남녀는 서로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우리나라 혈액형 분포에서 AB형은 약 11%에 지나지 않는다. 10명 중 1명 정도만 AB형이기 때문에 부부 모두가 AB형인 경우는 확률적으로 약 0.1x0.1=0.01이 돼 100쌍 중 한 쌍이다.

‘표1’ 괄호 안 숫자는 377쌍 부부가 혈액형에 상관없이 배우자를 고를 경우 맺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부부 수다. 남자 A형 비율은 113/377, 여자 A형 비율은 124/377이므로, 부부가 모두 A형인 부부는 (113/377) ×(124/377)×377로 37.2%가 된다. 실제 결과가 40쌍이니, 배우자 혈액형이 결혼을 결정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처럼 표 각 칸에서 괄호 안 숫자와 괄호 밖 숫자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면 혈액형과 결혼 사이에 큰 연관관계가 없다는 뜻이 된다.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성격을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남편과 아내의 혈액형 사이에 특별한 관련성이 없다는 것은 혈액형과 성격 역시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한다. 그럴 때 상대방 혈액형이 보이겠는가.

이 조사를 마친 뒤 어느 날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성격 유형을 판별하는 심리검사 결과와 혈액형의 관계를 살펴보면 좀 더 직접적으로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연구를 위해 한 대학의 심리상담센터에서 무료로 시행하는 MBTI(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심리검사지 문항에 혈액형 항목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모인 익명 대학생 851명의 심리검사자료에 필자 것까지 포함해 총 852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결론은 성격과 혈액형은 관계가 없다(통계학적으로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둘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귀무가설(歸無假說)을 기각할 수 없다’)였다.

먼저 MBTI에 대해 살펴보자. 이 심리검사는 사람 성격을 외향성(Extraversion)/ 내향성(Introversion), 감각형(Sensing)/ 직관형(iNtuition), 사고형(Thinking)/ 감정형(Feeling), 판단형(Judging)/ 인식형(Perceiving) 등 4개 기준으로 구별한다. 사람이 이 4개의 짝에서 각각 어떤 성향이 더 강한지를 판단해 ESTJ 혹은 INFP처럼 4개 이니셜로 알려준다. 이에 따르면 사람은 16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참고로 필자는 이 심리검사 결과 INTJ 유형으로 판명됐다. 이러한 심리검사 결과가 혈액형에 따라 달라지는지에 대해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이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I/ E), 사고형인지 감정형인지(T/ F), 판단형인지 인식형(J/ P)인지 여부는 혈액형과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B형 남자의 경우 유독 ‘감각형/ 직관형(S/ N)’ 가운데 ‘직관형(N)’이 현저히 많았다는 사실이다. 통계학적으로는 유의미한 수준이었다.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과학적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첫째, B형 남자의 경우 혈액형과 성격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 다른 모든 혈액형은 그렇지 않다. 둘째, 혈액형은 성격과 상관관계가 없다. 단, B형 남자의 경우 B형 남자 담론의 영향을 받아 심리검사 결과에 편향성이 나타났다.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납득할 만한가. 언뜻 생각해도 첫 번째 결론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B형 남자가 무엇이 그리 특별해 그들만 혈액형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겠는가. 두 번째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심리학에서는 이미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검사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고 여긴다.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고 한다.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B형 남자들이 B형 남자 담론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B형 남자는 이러이러하다’는 사회적 낙인이 내면화해 심리검사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니 말이다.

과학자 사회에서는 ‘publish or perish(논문을 출판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소멸하거나)’라는 말을 널리 쓴다. 논문은 학계에서 과학자의 거의 유일한 존재 형태이며, 따라서 논문을 쓰지 않는 과학자는 스스로 존재하기를 그만둔 사람이다. 연구하면 논문을 써야 한다.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마치고 이를 논문 형태로 마무리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던 기억이 난다.

이 고민에서 시작해 추가 연구를 하게 됐다. 혈액형 분포를 이용해 세계 각 나라 사이의 관계를 측정하는 연구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혈액형 A, B, AB, O형 비율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각 34%, 27%, 11%, 28%다. 이 비율이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와 거리가 먼 것으로 상정한다. 분포 비율이 비슷한 나라는 거리가 가까운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하면 세계 모든 인종집단 사이의 혈액형 거리를 정의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각 나라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파악할 수도 있다. 그 내용을 보기 쉽게 그린 것이 ‘그림1’이다. 루마니아, 체코 같은 동유럽국가는 오른쪽 윗부분, 서유럽국가는 왼쪽에 있으며, 우리나라는 아래 왼쪽 중국(베이징) 가까이에 있다.

혈액형에 확 끌려서 사랑에 빠진다고?
혈액형으로 사람 구별은 차별

마찬가지 방법을 우리나라의 혈액형 분포에 적용한 것이 ‘그림2’다. 제주도와 강원도가 다른 지역과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 두 지역의 혈액형 분포가 다른 지역과 아주 많이 다른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지역 사이의 관계보다 조금 약할 뿐이다.

과거 유럽 전역을 광기에 빠뜨린 나치즘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한 형태인 ‘우생학’이라는 당시 ‘과학’에 크게 의존했다.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생물학적 결정론이 부단히 부정돼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 신문에 실리는 ‘별자리로 본 오늘의 운세’ 정도의 흥밋거리 수준을 넘어 정말 많은 사람의 근거 없는 ‘상식’이 된다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너는 유대인이니까 죽어도 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사람과 “너는 B형 남자니까 내 딸과 결혼할 수 없다” 혹은 “너는 B형 남자니까 우리 회사에 취직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기업 25%는 입사지원서에 혈액형 항목을 갖고 있고(대체 왜 혈액형 정보가 필요할까. 응급 시 수혈을 위한 것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또 특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아예 지원할 수 없다고 명시한 기업도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안다. 혈액형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구별이 아니라 차별이다. 사라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태자면,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 그리고 혈액형 분포를 통한 세계 각 나라의 연결망 분석에 대한 이 연구는 결국 논문으로 출판됐다. 연구주제를 정하는 데 아내의 기여가 상당히 컸으므로 논문 마지막 감사의 글에서 아내를 언급했다. 지금까지는 이 논문이 필자가 낸 논문 가운데 아내 이름을 활자화한 단 하나의 논문이다. 출판된 논문을 본 아내가 한마디했다.

“에고, A형이니까 이런 연구나 하지.”

Acknowledgments

B.J.K. acknowledges Yuni Son for providing the

intial motivation of the work.

입력 2013-02-18 10:54:00

  •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beomjun@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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