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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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풍속도첩 중 ‘서당’ 김홍도 그림이 맞다

화첩은 후대가 만들었어도 필획에 숨은 필력은 확실

  • 이동천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 특빙연구원

    입력2013-01-14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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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 풍속도첩 중 ‘서당’ 김홍도 그림이 맞다
    2000년 중국 랴오닝성 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다. 필자의 스승인 양런카이(楊仁愷·1915~2008) 명예관장이 ‘최고 감정가(人民鑑賞家)’ 칭호를 받은 것을 기념한 특별전이었다. 전시 작품 대부분은 선생이 감정 공부를 위해 박물관 소장품을 똑같이 모사한 것이었다.

    연구할 서화작품을 당시 창작 상황과 가깝게 그려보는 것은 감정 학습의 기본이다. 감정가 스스로 붓글씨나 그림을 흉내 낼 정도는 돼야 다른 사람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가능하면 도장도 새길 줄 알고, 작품 표구 방식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서화 감정이 과학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창작의 실천과 재구성을 통한 검증 방식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사학계의 신선한 시도

    최근 우리 미술사학계에서는 신선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술사가인 강관식 한성대 교수는 2012년 10월 26일자 아침 뉴스와 신문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보물 제527호 김홍도(1745~?)의 ‘단원 풍속도첩’ 25점이 모두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는 예로 ‘서당’(그림1)을 고쳐서 그린 ‘그림2’를 발표했다.

    마침 그날은 필자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작품감정론Ⅱ’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필자는 2008년 ‘진상-미술품 진위 감정의 비밀’이란 책에서 ‘단원 풍속도첩’ 25점 중 ‘서당’ ‘서화감상’ ‘무동’ ‘씨름’ ‘활쏘기’ ‘대장간’은 진짜고, 나머지 19점은 두 명 이상의 위조자가 그린 가짜라고 주장했다.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필자와 견해를 달리한 강 교수의 주장 및 관련 보도에 대해 학생들의 질문이 잇따랐다.



    강 교수의 논문 발표 요지문과 2012년 10월 26일자 ‘국민일보’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당’에서 왼쪽에 있는 앞사람 팔과 뒷사람 다리를 하나로 합체해 잘못 그렸다. 둘째, ‘무동’ ‘씨름’에서 왼손과 오른손을 바꿔 그렸다. 셋째, 그림 13점에 찍힌 ‘김홍도인(金弘道印)’은 나중에 찍은 불확실한 도장이다. 넷째, ‘단원 풍속도첩’은 김홍도의 풍속화를 배운 도화서 궁중화원들이 그렸다. 다섯째, ‘단원 풍속도첩’ 순서가 어지럽게 됐다. 여섯째, ‘단원 풍속도첩’은 원래 26점이었다.

    첫째, 강 교수가 ‘서당’에서 앞사람 팔과 뒷사람 다리를 하나로 합체해 잘못 그렸다는 주장과 이를 그린 ‘그림2’를 살펴보자. 강 교수는 ‘그림3’이 앞사람 팔과 합쳐 오른발이 없는 사람으로 그려졌다고 했다.

    강 교수가 그린 ‘그림2’처럼 사람이 두 무릎을 다 세웠을 때 나오는 자세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두 손을 앞으로 하고 상체를 앞으로 숙인 것이고, 하나는 무게중심이 뒤로 이동한 경우다. 여기서 ‘그림3’은 상체를 앞으로 숙인 자세다. 그렇다면 ‘그림4’처럼 두 손이 앞으로 나왔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 이유는 ‘그림3’이 강 교수가 그린 ‘그림2’처럼 두 무릎을 세운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원 풍속도첩 중 ‘서당’ 김홍도 그림이 맞다

    그림3 논란이 된 무릎 세운 학동의 모습. 그림4 1910년 찍은 길가에 앉아 장기 두는 조선 사람들. 그림5 1890년 찍은 조선의 서당 아이들(왼쪽부터).

    ‘그림3’은 왼발 무릎을 세우고 오른발은 접어서 엉덩이 밑에 깔고 앉은 자세다(그림5). ‘그림3’에서 앞사람에 가려 몸통과 떨어진 신체 부위는 하얀 바지의 허벅지와 종아리 부분이다. 이 자세는 ‘서당’에서 훈장에게 혼이 나서 눈물을 흘리는 학동의 앉은 자세와 같다. 결과적으로 강 교수 주장과 그가 그린 ‘그림2’는 잘못된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그림3’의 자세를 검증해보기 바란다.

    강 교수의 주장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3’ 아래쪽에 그린 ‘그림6’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다. 강 교수는 ‘그림6’이 “왼팔 어깨가 골절되어 튀어나온 것처럼 기형적으로 그려졌다”고 했으나, 이는 김홍도 그림의 특징이다. ‘서당’에서 훈장 어깨, ‘활쏘기’에서 활을 손보는 사람의 어깨, 김홍도가 1778년 그린 ‘행려풍속도병’ 중 ‘취중송사’에서 태수 어깨 등이 모두 ‘그림6’처럼 과장되게 그려졌다(그림7).

    둘째, ‘무동’ ‘씨름’에서처럼 손을 잘못 그렸다고 해서 가짜는 아니다. 이는 거침없이 빠르게 그려 나가는 김홍도의 실수이며 시대적 한계다. 그가 그린 ‘행려풍속도병’의 ‘파안흥취’ 속 여인의 왼쪽 팔에서도 이와 비슷한 실수가 보인다(그림8). 팔을 인체에 맞지 않게 부러진 듯이 그린 것이다. ‘행려풍속도병’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8폭 모두 김홍도의 그림과 글씨이며, 8폭 위에 쓴 강세황의 글씨도 진짜다.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제외한 나머지는 김홍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김홍도가 처음부터 25점이나 26점으로 된 화첩을 그린 게 아니다. 김홍도 작품을 수집했던 컬렉터들이 김홍도의 그림을 수집하다 보니 그만큼 모인 것이다. 김홍도가 정조를 위해 그린 그림도 70점을 5권 화첩으로 나눠 꾸몄다. 하물며 민간에서 25점이나 26점을 화첩 한 권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그림 순서 또한 후대 여러 컬렉터가 임의로 정한 것에 불과하다. 컬렉터 중에는 위조자도 있어서, 위조한 도장 하나로 진짜와 가짜를 가리지 않고 무질서하게 도장을 찍어 혼란을 일으켰다.

    단원 풍속도첩 중 ‘서당’ 김홍도 그림이 맞다

    그림6 논란이 된 어깨가 과장된 학동의 모습. 그림7 김홍도가 과장되게 그린 어깨 모습들. 그림8 ‘파안흥취’에서 왼쪽 팔이 부러지게 그려진 여인(왼쪽부터).

    민간에서 25~26점 모으기 어려워

    강 교수는 ‘단원 풍속도첩’이 김홍도의 풍속화를 배운 도화서 궁중화원들이 그린 그림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어떤 작품이 가짜인지 모르고 한 말이다. ‘자리짜기’ ‘장터 가는 길’ ‘타작’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품의 네 변 테두리 필선 안쪽에 다른 종이에 그린 그림을 붙여 놓았다. 기존의 테두리 필선을 재활용한 것이다. 진짜 작품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초정밀 전자저울로 무게를 재듯, 감정가는 진위를 감정하는 저울에 작품 필획을 올려놓고 측정해야 한다. 일꾼을 뽑을 때 사람 골격과 기운부터 살피듯, 감정가는 필획에 숨은 필력부터 가늠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김홍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서당’ ‘서화감상’ ‘무동’ ‘씨름’ ‘활쏘기’ ‘대장간’의 필획은 그가 1778년에 그린 ‘행려풍속도병’과 필력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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