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1

2013.01.14

진정한 먹을거리를 키우는 농장

‘미친 농부의 순전한 기쁨’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3-01-14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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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먹을거리를 키우는 농장

    조엘 샐러틴 지음/ 유영훈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520쪽/ 1만5000원

    “현대 식품산업 전반은 가축에게 맞힐 항생제와 농작물에 뿌릴 농약에 의해 지탱된다. 이 두 가지 발명품 덕분에 인간은 비자연적인 방법으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다품종 소량 재배가 아니라 단품종 대량 재배, 복잡한 생태계가 아니라 단순한 먹이구조, 고유종이 아니라 외래종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유명한 농축산물 전문가의 목소리가 아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폴리페이스 농장을 운영하는 저자의 농축산물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다. 저자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며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농장을 꾸려간다.

    매일 가축들을 새로운 방목지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농장 아침은 시작된다. 신선한 풀이 널린 이 새로운 방목지를 저자는 ‘샐러드 바’라고 부른다. 기름진 땅 위에 푸르게 돋은 풀들을 소들이 한 번 뜯고 지나가면 닭들을 그곳으로 옮긴다. 닭들은 소가 뜯은 풀의 밑동을 마저 뜯고 소똥 속 구더기를 찾아 먹는다. 그러면서 소똥은 파헤쳐지고 땅속으로 고르게 배어들어 땅을 기름지게 하는 양분이 된다. 또한 가축들에게 뜯긴 풀들이 다시 억센 풀로 자라나게 들판을 돌본다. 땅과 태양이 만들어낸 풀은 소와 닭, 돼지의 먹이가 되고 똥이 되고 흙이 되고 다시 풀이 된다.

    “현대인들은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잘 먹지 않는다. 가공식품이 신선식품을 압도해버렸다. 첨가물 범벅의 대용 식품이 슈퍼마켓의 판매대를 점령했다. 식당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자꾸 조리를 하고 조미료를 친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농부가 올바른 식품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있는 그대로 먹으면 맛이 없는 식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을 포함해 많은 현대인이 ‘식사’가 아닌 ‘취식’을 한다고 지적한다. 올바른 음식을 화목한 분위기에서 잘 먹는 식사는 사라지고, 필요한 에너지를 얻거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한 끼를 때우는 ‘취식’만 있을 뿐이다. 저자가 이렇게 큰소리칠 수 있는 이유는 양질의 먹을거리를 생산, 공급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폴리페이스 농장에서 생산한 고기와 채소는 농장에서 4시간 이내 지역에서만 판매한다. 농장으로부터 4시간 거리를 식품 맛과 영양을 유지하는 최대 거리로 한정한 것이다.



    가축을 좁은 울타리에 가둬 키우면서 생긴 것이 바로 전염병이다. 아무리 예방주사를 놓고 밤낮없이 관리해도 전염병이 한 번 돌면 주변 가축까지 한꺼번에 몰살당한다. 방목을 통한 친환경으로 가축을 키우는 폴리페이스 농장에선 지난 50여 년간 불과 세 번 가축 전염병을 겪었다. 게다가 피해도 크지 않았다. 생체환경 개선, 즉 햇볕과 휴식을 통한 청결 유지와 최소 60cm 이상의 깔짚으로 면역력을 높여 전염병을 물리친 것이다.

    가축에게 주사를 놓지 않고 화학비료와 농약, 제초제를 거부하며 유전자조작 종자를 비판하는 저자의 별명은 ‘미친 농부’다. 농업도 비즈니스가 돼버린 상황에서 자연의 힘을 믿고 가축 본성을 존중하면서 농장을 운영하니 제정신(?)이 아닌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오래전 조상이 해왔던 방식을 유지하는 폴리페이스 농장은 놀랍게도 흑자다. 팀원 농부와 수습생 농부들이 일을 배우고 보람을 느끼면서 농장 주인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다. 다국적 농축산물 없이는 식탁을 차리기 어려운 지금, 땅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풍광을 살리며 대대손손 지속가능한 방식을 고집하는 이 농부와 주변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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