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0

2013.01.07

난 초능력 생기면 이렇게 쓴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 구희언 여성동아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3-01-07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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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초능력 생기면 이렇게 쓴다
    어느 날 나한테 벽을 뚫고 어디든 자유롭게 지나다닐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이 같은 유쾌한 상상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문으로 드나들 듯 벽을 넘나드는 능력을 얻은 주인공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사는 평범한 독신남 듀티율. 갑작스럽게 생긴 초능력을 그는 어디에 쓸까.

    이 뮤지컬은 프랑스 국민작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 소설 ‘벽을 드나드는 남자(Le passe-muraille)’를 디디에르 반 코웰레르가 각색하고 영화음악가 미셀 르그랑이 곡을 붙여 완성했다. 에메의 원작은 짧지만, 2시간 분량의 뮤지컬로 만들면서 대사를 최소화하고 넘버만으로 극을 이끄는 송 스루(Song-Through) 방식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그 덕에 원작에서는 단 몇 줄로 묘사되던 직장 동료, 신문팔이, 거리 여인 등 조연 캐릭터가 생기를 얻었다. 주인공이 벽을 뚫고 지나다니는 장면은 무대와 조명, 스태프의 손, 소품 등을 이용해 재치 있게 표현했다.

    1940년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언덕에 사는 우체국 공무원 듀티율은 우표 수집과 장미 물주기가 취미인 소박한 독신남이다. 평소처럼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그는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벽을 뚫고 지나다니는 능력을 얻는다. 미쳐서 헛것을 봤다고 생각한 그는 황급히 정신과 의사 듀블을 찾아가지만, 듀블은 그에게 벽을 뚫고 지나다니는 것이 힘들어지면 먹으라며 태연히 약을 건넨다. 그는 벽을 뚫고 물건을 훔쳐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뚜네뚜네’라는 가명으로 유명해진다. 갖고 싶은 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그가 가질 수 없던 건 같은 거리에 사는 아름답지만 불행한 부인 이사벨이다. 듀티율은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더 유명해지려고 노력한다.

    난 초능력 생기면 이렇게 쓴다
    초능력이 생긴 듀티율이 괴도로 활동하며 쓰는 가명 ‘뚜네뚜네’는 사실 원작에는 없는 말이다. 원작에서는 늑대인간을 뜻하는 프랑스어 ‘루가루(loup-garou)’에서 ‘loup’를 떼고 ‘garou’를 반복해 ‘가루가루’라는 가명을 썼다. 2006년 한국 초연에서는 원작에 따라 ‘가루가루’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프랑스인 이름 같은 뉘앙스를 살리면서도 ‘벽을 뚫고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는 어감을 살려 ‘뚜네뚜네’로 바꿨다.

    성실한 공무원 듀티율 역에는 가수 겸 배우 임창정과 SBS TV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주가를 높인 배우 이종혁을 캐스팅했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앙상블 없이 배우 `12명이 일인다역을 소화한다는 점이다. 듀티율에게 약을 처방해주는 의사 듀블 역의 임형준과 고창석은 각각 경찰과 변호인 역도 맡아 극에서 감초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 아름다운 여인 이사벨 역은 뮤지컬 ‘파리의 연인’ ‘헤어스프레이’에서 주연한 오소연이 맡았다.



    로맨틱 코미디가 대부분 그렇듯 우여곡절 끝에 듀티율과 이사벨은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부분에서 끝나지 않는다. 듀티율의 사랑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일지 슬픈 결말일지는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하시라. 2월 6일까지,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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