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70

2013.01.07

칼치

  • 이세기

    입력2013-01-07 09:1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칼치
    아버지의 이름은 칼치였습니다

    고향에서는 가장 키가 컸던

    안강망 고깃배를 타던 뱃사람

    사람들은 아버지를 칼치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어부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는 공장노동자가 되길 바랐습니다

    마포자루를 깎는 제재소에

    취직을 하라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얘야, 공장에 자리를 마련했단다

    배는 안 된다며,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여

    지금도 나는 기억합니다

    황해바다를 떠돌다 들어온 아버지의 몸에는

    비린내보다도 더 짙은

    광기가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술을 먹습니다

    아버지는 살림살이를 때려부수고

    술이 깨면 순한 양이 되어 항구로 갑니다

    그믐사리를 보러 배를 타고 바다로 갑니다

    그때 집의 바람벽에는

    가화만사성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에는 물때가

    아버지의 손에는 언제나 그물코를

    꿰는 댓바늘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물코를 꿰는 아버지의 두툼한 손에는

    칼바람을 쥐어본 자의

    굳은살이 못 박혀 있었습니다

    내가 집을 나와 공장생활을 할 때

    아버지는 눈이 어두워 배를 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항구에서 그물코를 꿰는

    일당쟁이가 되었습니다

    나의 공장생활은 목재공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공장으로 투신한 나의 삶

    사상을 위해 나는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현장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노동자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봅니다

    나의 흰 손을 봅니다

    아버지는 내게 배는 타서는 안 되고

    공장노동자가 되어 밥벌이를

    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여

    폭풍우와 같이 사나운 바람의 날들과

    어둡고 침침한 집과

    공장의 슬레이트 지붕에서

    새어나오는 한줄기 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비린내 나는 몸으로 나를 안아주던

    아버지의 품을 나는 잊고 살아왔습니다

    가끔씩 나는 생각합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여

    나도 일찍 배를 타고

    뱃사람이 되었더라면

    연평도와 남지나해와 동지나해를 오가는

    뱃사람이 되어

    눈뜬 물고기를 보고

    황해를 항해하는 꿈을 꾸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여

    고향은 이제 황폐하고

    나에겐 탈 배가 없습니다

    부둣가는 무너지고

    배들은 뻘밭에서 폐선이 되고 있습니다

    어장에 물고기는 없어지고

    남북의 대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밤은 아직 캄캄하고

    선연한 총구를 마주한 눈빛은

    어두운 밤바다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잡히지 않는 물고기와

    날로 폐허가 되어가는 고향마을과

    배 한 척 없는 부둣가와

    쓸쓸하게 나는 갈매기만

    고향의 어루뿌리 어루바다를 날 뿐

    늙으신 어머니 곁에서 늙어가는

    당신의 아들은

    웅크리고 앉아 시를 씁니다

    내 손은 그때 내가 처음으로

    얘야, 공장에 자리를 마련했단다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던 그날처럼

    떨리고 긴장하며

    오늘, 내 시는 아버지와 아들을 기억합니다

    시인이 된 아들은 아버지를 쓰면서 칼치 요리를 우리에게 내놓는다. 조림, 구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싱싱한 아버지의 칼바람으로 요리한 기억의 칼치. 세상 바다에서 솟구쳐 올라 땅에 떨어져 그대로 죽어버린 칼치들이여, 내 인생의 밥상에 올라온 시와 하늘과 별과 아버지. 아버지여,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 원재훈 시인



    詩 한마당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