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4

2012.11.26

재소자 마음 연 록밴드 ‘블루잉크’

서울 남부교도소 공연…“교화 아닌 즐기자”에 환호와 앙코르 쏟아져

  • 구미화 객원기자 selfish999@naver.com

    입력2012-11-26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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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소자 마음 연 록밴드 ‘블루잉크’
    11월 19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천왕동 서울남부교도소. 500명을 수용하는 대강당이 재소자들로 가득 찼다. ‘록밴드 블루잉크 자선교화공연’이라는 현수막이 이채로웠다. 블루잉크는 동아일보 출판국 기자들이 주축을 이룬 록밴드다. 2년 전 결성 당시엔 모두 기자였으나 올여름 인디계 실력자들을 영입해 프로에 버금가는 기량을 갖췄다.

    이번 공연은 홍대 앞 클럽 공연과 동아일보 사내 행사 등 주로 지인들 앞에서 실력을 뽐냈던 블루잉크가 처음 추진한 대규모 이벤트다. 아마추어밴드, 그것도 저항정신에 뿌리를 둔 록밴드 공연이라 법무부는 고심 끝에 승인했다고 한다.

    개그맨 출신 뮤지컬기획사 대표 백재현 씨의 ‘재능기부’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엠넷(Mnet) ‘슈퍼스타 K’를 통해 데뷔한 카이스트 출신 가수 김소정과 걸그룹 디유닛이 게스트로 참여했다. 김소정은 발랄한 댄스곡 ‘블랩(BLAP)’과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테마곡 ‘그대가 왔죠’를 불렀다. 사회자가 김안식 교도소장에게 “재소자들을 위해 기립박수를 해주시면 김소정 씨가 한 곡 더 부르겠다”고 제안하자 김 소장이 흔쾌히 일어서 박수를 쳤다. 재소자들도 박수를 더했고, 김소정은 왁스의 ‘오빠’를 열창하며 무대 아래로 내려와 객석을 휘저었다.

    마침내 블루잉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컬을 맡은 조성식(주간동아 차장), 강부경(디자인팀 기자), 기타리스트 도니 킴(본명 김동은), 베이시스트 조영철(사진팀 기자), 드러머 전재현, 키보디스트 피예준이 무대에 섰다. 블루잉크 리더이자 보컬리스트인 조성식 기자는 재소자들에게 “위문공연이나 교화공연이란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며 “오늘 하루 친구가 돼서 함께 즐겨보자”고 말했다.

    첫 곡은 도니 킴이 작곡한 ‘Shining in the sky’. 이어 조 기자는 재소자들에게 “모두 눈을 감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들어달라”고 말한 뒤 들국화의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두 번째 곡으로 불렀다. 재소자 상당수가 그의 말대로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세 번째 곡 백지영의 ‘대시’를 록 버전으로 편곡해 부를 때는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훨씬 커졌다.



    12월엔 청주여자교도소 찾아

    그렇게 블루잉크의 1부 공연이 끝나자 3인조 걸그룹 디유닛이 무대에 올랐다. 디유닛은 신곡 ‘Luv me’를 역동적인 댄스와 함께 선보였다. 일부 재소자들은 첫 곡이 끝나자 여느 걸그룹 ‘삼촌팬’처럼 “디유닛 아임미싱유” 구호를 외쳤다. 디유닛은 이내 ‘I’m missing you’를 불러 화답했다.

    2부 공연은 강부경 기자가 임재범의 ‘비상’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 조 기자가 헤비메탈그룹 유럽(Europe)의 ‘The final countdown’을 부르자 익숙한 멜로디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렇게 준비된 공연이 마무리됐다. 재소자들의 아쉬움을 간파한 사회자가 바람을 넣자 여기저기서 “앙코르”가 터져 나왔다. 블루잉크는 들국화의 ‘사노라면’을 부르면서 재소자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많은 재소자가 한목소리로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내일은 해가 뜬다”를 외치는데, 노랫말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울림을 줬다.

    공연이 끝난 후 교도소 관계자들은 “이제까지 재소자들이 이렇게 환호한 공연은 없었다”며 “아주 성공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자들이 연습할 시간이 있느냐”며 “기대 이상이었다”고 평했다. 블루잉크는 이번 공연을 위해 7월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에 모여 2시간씩 연습해왔다. 12월엔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재소자합창단과 합동공연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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