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3

2012.11.19

모두가 손해 ‘보조금 요지경’

이통 3사, 휴대전화 단말기 일괄 구매 후 과열 마케팅 계속

  • 권건호 전자신문 통신방송산업부 기자 wingh1@etnews.com

    입력2012-11-19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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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손해 ‘보조금 요지경’
    중소기업 임원 박모 씨는 삼성전자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3가 출시된 직후인 7월 말, 80만 원에 단말기를 구매했다. 최신 제품을 써보려는 마음에 적잖은 금액이지만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8월 말, 같은 회사 팀장 이모 씨는 40만 원에 갤럭시S3를 샀다. 몇 달 만에 반값이 된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한 팀원이 17만 원에 갤럭시S3를 샀다고 자랑했다. 최신 단말기를 싸게 구매했다는 동료의 얘기를 듣고 또 다른 팀원이 며칠 뒤 휴대전화 매장을 찾았다. 그런데 똑같은 갤럭시S3가 70만 원대라는 설명에 발길을 돌려 나왔다.

    휴대전화 가격이 요동치고 있다. 동일한 단말기를 언제 어디서 구매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제조사가 제품을 출시할 때 책정하는 출고가는 정해져 있지만, 소비자 구매가는 알 수 없다. 이동통신사가 마케팅 수단으로 제공하는 ‘보조금’ 때문이다. 소비자는 언제 휴대전화를 사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천차만별 가격의 희한한 유통 구조

    9월 초 ‘갤럭시S3 17만 원’ 판매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대표적인 사례로 갤럭시S3가 언급됐지만, 경쟁사인 LG전자나 팬택도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공짜나 다름없는 제품도 있었다. 출고가 100만 원에 육박하는 최신 단말기를 17만 원, 심지어 공짜로도 살 수 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앞다퉈 구매했다. 실제로 9월 첫 주 번호이동 건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과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휴대전화 유통구조 때문이다. 우리나라 휴대전화 유통구조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이동통신사가 제조사로부터 제품을 일괄 구매한 뒤 소비자에게 되파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이동통신사는 마케팅 수단의 하나로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한다. 단말기를 교체하려는 고객에게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자사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로서는 보조금 제도가 일종의 비용 부담일 수 있으나 약정가입자를 유치하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거둘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문제는 이동통신 3사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가입자 유치를 위해 때때로 보조금을 과도하게 지급하는 데 있다. 갤럭시S3의 17만 원 사태가 단적인 예다. 롱텀에벌루션(LTE)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동통신 3사가 앞다퉈 보조금을 높였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경쟁사가 보조금을 높이면 가입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우리도 덩달아 올릴 수밖에 없다”며 “결과적으로 수익이 마이너스인 것은 알지만 3사 간 경쟁 체제에서는 대안이 없다”고 토로했다.

    사고 팔고 ‘폰테크’도 빈발

    모두가 손해 ‘보조금 요지경’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 매장에서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고르고 있다.

    이러다 보니 출고가 99만4500원인 갤럭시S3의 경우, 오전에 구매한 사람과 오후에 구매한 사람의 구매가가 20만 원 이상 차이 나는 극단적 사례도 있다. 사태가 악화되자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나섰다. 방통위는 ‘단말기 보조금 가이드라인’으로 최대 27만 원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동통신사들이 이 가이드라인을 훌쩍 넘어선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방통위가 시장 조사에 착수했다. 이미 이동통신 3사 모두 두 번씩 보조금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이번에 다시 보조금 위반으로 제재를 받으면 영업정지 등 강력한 조치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조사가 시작되자 시장은 급격히 냉각됐다. 갤럭시S3 가격이 70만∼80만 원대로 올라가자 소비자는 다시 보조금이 높아지기만을 기다릴 뿐 선뜻 구매에 나서지 않는다.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 같던 9월 한 달간 번호이동 건수도 120만 건으로 전월 대비 오히려 감소했다. 이 같은 추세는 10월에도 이어져 번호이동 건수가 68만여 건으로 9월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10년 1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저치다.

    과도한 보조금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와 이동통신사 모두에게 손해다. 보조금이 가장 높을 때 단말기를 구매한 극히 일부 소비자만 수혜를 누리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대표적인 피해는 ‘차별’이다. 같은 단말기를 누구는 비싸게 사고, 누구는 싸게 사는 것은 불합리하다. 방통위 보조금 가이드라인도 ‘차별적 보조금 지급’을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규정하고, 금지한다. 나아가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에게도 손해다. 이동통신사가 보조금으로 사용할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거나, 요금 인하를 위해 쓴다면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보조금은 결국 이동통신사에게도 피해를 준다. 보조금 경쟁이 치열했던 지난 3분기, 이동통신 3사의 실적은 일제히 하락했다. 비(非)통신 분야에서는 실적이 좋았지만 통신, 특히 무선 수익이 급감했다. 마케팅비 과다 사용이 수익 저하로 직결된 것이다. SK텔레콤의 경우 3분기 마케팅비로 1조350억 원을 사용,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보조금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보조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방통위가 보조금 조사에 착수한 이후 시장이 급격히 냉각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지금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아이폰5가 출시되면 다시 보조금 경쟁이 시작될 테니 그때를 기다리자”라는 얘기가 오간다.

    최근에는 이른바 ‘폰테크’로 불리는 보조금 악용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폰테크는 휴대전화를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보조금을 이용해 싸게 휴대전화를 구매한 뒤, 일정 기간 후 위약금을 내고 이동통신사 가입을 해지한다. 이후 단말기를 중고로 되팔아 차액을 챙기는 방식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단말기를 동시에 최대 10대 이상 구매하고, 이를 되팔았다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보조금 문제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자 정부 차원의 새로운 보조금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이 보조금 문제를 한목소리로 질타했다. 전문가들은 보조금 규정을 위반할 경우 처벌을 강화하고, 실시간으로 전산정지 등의 규제를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금처럼 지키지 않을 보조금 가이드라인 말고, 실효성을 갖춘 보조금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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