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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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예절 선생님은 88세 할머니

차는 장수 묘약

  • 김대성 한국차인연합회 고문·차 칼럼니스트

    입력2012-11-19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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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茶예절 선생님은 88세 할머니

    김무경 할머니(오른쪽)와 제자들.

    경기 안성시 보개면 북가현리 611번지 2차선 도로 가에 집 한 채가 외로이 서 있다. 시선이 하정다회(霞亭茶會)라는 입간판에 머문다. 차인으로서 그냥 스쳐갈 수 없는 집이다. 외딴 곳에 찻집이 아니라 ‘다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차교육을 하거나 차 모임을 갖는 곳이라는 뜻일 게다. 차를 멈추고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활짝 핀 차꽃이 객을 맞이해 깜짝 놀랐다. 차나무는 추운 지역에서는 살지 못한다. 따뜻한 남쪽에서 잘 자라는 나무라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게 보통인데, 여기서는 노지에서도 잘 자란다.

    주인은 올해 88세인 김무경(金霧敬) 할머니다. 홀로 뜰을 가꾸면서 일주일에 하루도 빠짐없이 차 예절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학생들을 가르친다. 27년 전 서울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차나무를 심고 올해로 20년째 차예절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김무경 할머니는 필자와 면식이 있었다. 27년 전 아들 혼례 때 차꽃으로 부케를 만들어 며느리에게 들게 했던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 특별한 사례를 글(‘주간동아’ 860호 참조)로 쓴 필자와의 인연은 참으로 기이하게 이렇게 닿았다.

    차를 마시면 장수한다는 문헌은 많이 접해봤고, 차에 장수를 보장하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기도 했다. 우리 차의 고전 ‘동다송’을 지었던 초의선사(1786~1866)는 81세까지 살았다. 차를 벗 삼아 살아온 사람 대부분이 장수를 누렸다. 초의선사 글에는 “마른 나무에 싹이 돋듯 늙은이를 젊게 하는 신통한 효험이 빨라, 팔십 노인의 얼굴이 복숭아빛이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 현대과학은 찻잎에 많이 함유된 타닌 성분의 항노화 작용이 비타민E보다 20배, 비타민C보다 10배 강해 노화 억제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러나 김무경 할머니처럼 88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차인은 흔치 않다. 차는 그냥 수명만 늘이지 않고, 나이가 들어서도 머리를 맑혀 자신의 지식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까지 키워주는 효능을 지녔음을 발견한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이날도 수업을 받으려고 중년 부인 6명이 와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양희란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승용차로 30~40분 걸리는 이곳까지 7년째 찾아오는 것은 차 공부를 하는 목적 외에 선생님 자체가 우리의 훌륭한 멘토이기 때문이다. 귀가 약간 어두운 것 외에는 텃밭을 가꿔 손수 식사를 짓고, 수강생의 간식까지 준비하신다. 입고 계신 한복도 손수 지으셨다. 밤 시간에는 사군자까지 가르치는 능력도 지니셨다. 슬하에 아드님 두 분이 있는데도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다며 홀로 사시는데, 이런 분께 차를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하다.”

    계산 빠른 요즘 시대에 몇 년째 빠짐없이 일주일에 한 번 노인에게 배움을 청하러 오는 수강생들도 대단하지만 차에 대한 할머니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차인들은 차(茶)라는 글자를 풀이하면서 풀 초변에 십(十) 자가 2개 있어 20이라고 해석한다. 또 그 아래의 사람 인(人) 자를 팔(八)로 보고 그 팔 자 아래에 있는 십(十) 자를 합쳐 팔십(八十)으로 쳤다. 그래서 20과 80을 보태면 100세, 또 십 자 아래에 팔 자를 합하면 108세다. 차를 오래 마시면 108세까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차수(茶壽)라 부르기도 한다. 김 할머니도 지금 같은 컨디션이라면 차수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이 겨울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장수를 꿈꿔보는 것도 행복한 상상이 될 수 있다.



    차향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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