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8

2012.10.15

레임덕은 없다

31회 대한연방

  • 입력2012-10-15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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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를 보면 약자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강한 자에게 굴복하거나 멸망당하거나 둘 중 하나만 있을 뿐이다. 타협과 협상은 서로의 실력이 비등할 경우로 한정된다. 강자가 숙이고 타협하겠는가? 역사는 냉혹하다. 그렇게 역사는 강자에서 강자로 계승돼왔다.

    이제 2010년이 저물어간다. 이명박 집권 3년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5년 임기 중 5분의 3이 지났고 이제 2년이 남았다. 임기 5년의 역대 한국 대통령 모두가 임기 4년차부터 레임덕 현상을 겪었다.

    그러나 2012년에 치르는 18대 대선에서 당선하는 대통령은 4년 중임의 영향으로 3년차 레임덕을 맞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이 청와대로 세우리당과 민주당 지도부를 초청한 것은 2010년 12월 10일이다. 연말이 다가오는 데다 지난 11월 말 ‘연평도 대승’ 사건도 있었던 터라 사회 분위기는 들뜬 상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민주당은 조금 위축됐다. 강자 앞에서의 법칙이 자연스럽게 적용됐다. 전장의 군인보다 정치인이 강약의 판별에 더 예민한 법이다. 지금 이명박은 절대강자다. 여론이 지지도 93%를 보여주고 있으니 타협이나 협상은 불필요하다. 만찬에 초대한 명분은 ‘화해’였으나 모호한 단어였다. 그래서 민주당 최고위원 박영선이 청와대로 오는 버스 안에서 말했다.

    “무슨 화해래요? 우리가 언제 싸우기라도 했나? 괜히 생색내는 데 우리가 구색 맞춰주는 거 아닌가요?”



    야무지게 말 잘하기로 소문난 박영선이다. 모두 제 속과 딱 맞는 말이어서 속이 시원한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저녁식사가 끝나고 티타임이 됐을 때 이명박이 말했다.

    “갑자기 화해에 대한 모임이라고 해서 의아하셨겠지만….”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새삼스럽지만 남북화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모두 긴장한 낯빛이다. 남북화해는 맞다. 연평도 승리는 연평도를 포격했던 인민군 제4군단 소속 무도 방어대를 전멸시킨 것은 물론, 해주의 제4군단 사령부까지 붕괴시켰다. 그러고는 그 즉시 양국의 교전이 중지됐으니 비밀 합의가 있었다는 소문이 퍼진 상황이다. 그런데 이명박이 또 어떤 이슈를 터뜨릴 것인가.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고려시에 이어 신의주특구까지 남북 간 공동개발을 합의하면 남북화해는 가속화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다음 단계를 준비할 시기가 됐습니다.”

    오늘 만찬에는 이회창 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도 참석했다. 박영선은 이명박이 이 자리를 빌려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작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명박이 노련해졌다. 그것은 자신감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번 남북연합을 발전시켜 이제는 제도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대한연방을 제의했고 김정일 위원장도 찬성했습니다. 대한연방에 대해 설명을 드리죠.”

    그때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 일어섰다. 그 순간 벽 한쪽에 화면이 비치면서 ‘대한연방’ 타이틀이 떴다. 유명환이 레이저로 화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대한연방은 영어로 코리아연방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한국과 북한은 지금처럼 독립국 체제로 운영하지만 외교와 국방은 연방대통령과 3자 합의를 해야 합니다. 연방대통령제가 이번 대한연방의 핵심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숨을 죽였고 유명환의 말이 이어졌다.

    “또한 대한연방은 남북한 동수의 연방의원으로 구성돼 연방대통령을 보좌하고 연방제를 감독할 수 있는 구속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잠깐만.”

    브리핑 화면이 넘어가기 전 민주당 최고의원 강봉균이 물었다.

    “연방대통령은 어떻게 선출합니까?”

    그러자 대답은 이명박이 했다.

    “양국 통치자의 추천으로 선출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양국이 투표를 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DJ가 10여 년 전 만든 민주당의 전신(前身)도 새정치국민회의였다. 오죽했으면 새정치국민회의였겠는가? 어쨌든 여야는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번 17대에 이르러 여야는 모처럼 심기일전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구태를 완전히 벗은 게 아니다. 이명박 개인의 인기에 묻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공천 장사, 이권 개입, 청탁, 뇌물수수 등 온갖 비리가 음지에서 성행했으며 국민은 정치인이 가장 부패했다고 지적했다.

    # “이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악습입니다. 아주 고질이에요.”

    KBS 보도국 차장 박동민이 열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박동민은 보도국장실에 들어와 있었는데 오늘의 화제가 바로 정치인의 자질이다. 박동민이 말을 이었다.

    “아시죠? 사색당쟁, 동인, 서인. 히데요시를 만나고 온 두 놈이 제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는 사실 말입니다.”

    두 손을 휘저으며 말하는 박동민의 입가에 흰 거품이 끼었다. 게거품이다.

    “남인, 북인, 노론, 소론. 그 개새끼들이 나라 망하는 건 놔두고 당파싸움만 하다 결국 이완용 같은 놈들이 돼서 나라를 팔아먹고 끝냈지요.”

    그러고는 박동민이 몸서리치는 시늉을 한다.

    “지겨워요.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놈들은 싹 집으로 보내고 새 얼굴이 나타나야 한단 말입니다.”

    “교육이 문제야.”

    혼잣소리처럼 말한 보도국장 임명수가 힐끗 박동민을 보았다.

    “조선 역사는 일제강점기 일본 역사학자들이 다 조작해서 가르쳤다. 사색당쟁, 부패, 왕의 무능. 조선은 그래서 망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지. 거기에다….”

    입맛을 다신 임명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해방 후에는 건국을 부정하고 건국대통령과 경제를 부흥시킨 지도자를 비난한 것은 물론, 기업가를 왜곡한 교과서도 판을 쳤다. 그러니 정부,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퍼져 있는 거다.”

    “무슨 말씀이신지….”

    머리를 기울인 박동민이 임명수를 보았다.

    “그게 다 일본 놈, 교과서 만든 놈들 때문이란 말입니까?”

    “그 영향이 크단 말이다.”

    심호흡을 한 임명수가 사나운 기세로 말을 잇는다.

    “이놈들이 물들인 기운을 빼내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임명수는 자신이 2년쯤 전만 해도 ‘이놈들’ 무리에 끼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 “그렇군.”

    민주당 의원 고경철이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어제 청와대 만찬에서 이명박이 공개한 대한연방에 대한 ‘남북 통치자 합의’는 오늘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대한연방은 이미 ‘3국 동맹’을 맺고 일본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아낼 때부터 국민 대부분이 예상은 했다. 그러나 연방대통령 합의는 처음 거론된 것이다. 신문을 탁자에 놓은 고경철이 앞에 앉은 동료 의원 박문식을 보았다. 둘은 초선이었고 어제 청와대에 가지 못했다.

    “이명박이 연방대통령을 노리는 거야. 이제 알았어.”

    “아니, 그게….”

    변호사 출신 박문식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북 통치자 합의로 추대한다고 하지 않았어? 이명박이 자신을 추대한단 말이야? 그건 말이 안 되지 않아?”

    “말이 돼.”

    정색한 고경철이 말을 잇는다.

    “김정일이 믿는 사람은 이명박뿐이야. 김정은을 맡겨놓은 것 보라고.”

    “….”

    “더구나 김정일은 오래 못 산다는 소문이 났어.”

    “그렇다면….”

    “북한에 김정은을 앉혀놓고 한국 대통령까지 이명박이 휘어잡는 거야. 그럼 남북한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지. 남북한 통치자는 미국 주지사 정도로 생각하면 돼.”

    이제 박문식은 눈만 껌벅였다. 앞뒤가 딱 맞는 말이어서 이의를 제기할 꼬투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뭐라고?”

    놀란 서상국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오후 7시 반, 고려시청 남북 간 대로인 ‘이승만로’에 위치한 사무실 안이다. 고려시 청사는 동서남북으로 뻗은 두 개 대로 복판에 위치하는데 동서 간 대로는 ‘김일성로’다. 서상국이 앞에 선 이애주를 보았다.

    “아니, 그럼 오 사장이 경찰청 유치장에 갇혀 있단 말이야?”

    “예, 직원도 오늘 오후에야 확인했다고 해요.”

    서상국이 잠깐 외출한 사이 오종택의 부하직원이 찾아왔던 것이다. 어깨를 늘어뜨린 이애주가 말을 이었다.

    “직원도 사흘 동안 연락이 안 되기에 서울 가신 줄로만 알았대요.”

    “그, 그 자식이 결국….”

    서상국은 말을 잇지 못했다. 김일성로에 위치한 편의점 앞에서 오종택을 만나 1000달러를 준 것이 바로 사흘 전이었다. 돈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돌아서던 오종택의 모습이 떠올라 서상국은 숨을 들이켰다.

    “오 사장이 뭣 때문에 잡힌 거야?”

    대충 짐작은 갔지만 서상국이 묻자 이애주가 외면한 채 대답했다.

    “뇌물 제공 혐의래요. 뇌물을 먹은 시청 담당 직원 두 명도 함께 체포됐대요. 그리고 주택 소유자 둘도 함께요.”

    “….”

    “총살당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뭐?”

    놀란 서상국이 소리쳤지만 여전히 이애주는 외면한 채 말했다.

    “시범 케이스랬어요. 시청에서는 그렇게 소문이 다 났다고.”

    “그럴 수가 있나?”

    했지만 서상국의 말끝이 떨렸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일벌백계다. 그리고 이곳 고려시는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미치지 않는 지역이다. 한국이 사형을 오랫동안 실시하지 않았다고 고려시가 따를 리는 없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서상국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터졌다.

    # 갖은 술수를 써오던 노회한 정치인보다 초짜이고 단순한 고경철류의 예측이 맞는 경우가 있다. 정치 9단이란 작자들이 돌고 돌아 원점으로 온 결과와 같은 것이다. 정치 8단은 다 돌지 못해 예측이 틀렸고. 2010년 12월 17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대한민국 17대 대통령 이명박이 임시 대한연방 대통령으로 선임됐다고 발표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임시’ 명칭을 붙인 것은 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18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 이명박 대한연방 대통령의 ‘임시’ 딱지가 떨어진다는 말이었다.

    “저 봐.”

    하고 고경철이 떠들었지만 앞에는 운전기사 배명수뿐이다. 점심시간이어서 모두 밖에 나갔기 때문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흥분한 고경철이 배명수를 노려보았다. 시선을 받은 배명수가 외면하자 고경철은 부아통이 치밀었다.

    “너는 사진 찍을 일이 없어서 심심하겠다. 안 그러냐?”

    머리를 든 배명수에게 고경철이 말을 잇는다.

    “나한테 돈뭉치 들고 오는 놈들이 없으니까 말이다. 있어야 네가 사진도 찍고 나한테 돈 안 주면 폭로하겠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말이 길어서 하는 도중에 입도 아팠고 의욕도 떨어졌지만 끝까지 했다. 그러자 배명수가 다시 외면했으므로 고경택은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너는 평생을 가도 그럴 일이 없을 것 같다는 표시로 보였기 때문이다. 절망이다. 정치인에게 무능하다는 평가는 사형선고나 같다.

    # “골치 아프게 됐습니다.”

    시진핑이 말하자 후진타오 얼굴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계속해서 선수를 치는데 곧 헛수를 둘 때가 있겠지.”

    “신의주도 한국이 차지했으니 계획을 수정해야지 않겠습니까?”

    둘은 다탁을 사이에 두고 낮게 말했다. 베이징 이화원 근처 안가(安家)는 첫째로 조용하고 아늑하다. 안가는 무엇보다 번거롭지 않아야 한다. 이곳은 종사원과 경호원뿐으로 부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때 후진타오가 말했다.

    “두 놈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대륙 끝에 혹처럼 붙은 반도야. 일본이 있는 한 미국의 등에 업혀갈 수는 없다고.”

    시진핑의 시선을 받은 후진타오가 말을 잇는다.

    “이명박이 대한연방 대통령이 된다 해도 중국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어. 지리적으로나 민족 정서 측면에서나 조선은 우리 영토야.”

    “조선이 대한연방으로 통일되면 미국은 1950년 직전의 애치슨라인처럼 일본과 필리핀을 잇는 선으로 중국을 막겠지요?”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지.”

    쓴웃음을 지은 후진타오가 지그시 시진핑을 보았다.

    “일본은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야. 하지만 우리는 달라.”

    이제는 정색한 후진타오가 말을 잇는다.

    “조선은 고구려 이후로 단 한 번도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 일본에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이름까지 바꾸고 살았는데도 친일파를 다 청산하지 못한 민족이지.”

    “….”

    “이명박이는 반짝 나타난 변종일 뿐이야. 동북공정을 단단히 실시하면서 가랑비에 옷이 젖는 걸 모르듯이 조선반도를 먹어가면 돼.”

    레임덕은 없다
    #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도닐런은 대학교수 출신이다. 하버드에서 20년간 국제정치를 가르치다 국무장관 고문으로 5년간 일한 후 안보보좌관이 됐으니 정치력을 검증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5년 동안 청문회에 20여 차례 출석했지만 한 번도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자, 지금 도닐런이 이명박과 나란히 앉았다. 배석자는 주한 미국대사 스티븐스와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이다. 한국 측 안보수석 김성환도 말석에 앉았다. 인사를 마친 둘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돈다. 아직도 한미동맹은 굳건하다.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은 대한민국 존립의 은인이다. 6·25 전쟁 때 미국은 병사 5만여 명을 희생시키면서 대한민국의 존속을 도왔다. 애치슨라인이 있었는데도 트루먼이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가만 놔뒀으면 통일이 됐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금 입을 벌려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굶어죽었거나 총살당했을 테니까. 아니, 못 먹고 굶주려서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윽고 도닐런이 말했다.

    “대통령님, 김 위원장과 핵 이야기는 해보셨습니까?”

    통역 말을 들은 이명박이 머리를 내저었다.

    “핵이요? 아니, 전혀 못 들었는데요?”

    “그럼 북한 핵은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이제 둘의 통역이 분주해졌다. 이명박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6자회담에 맡겨야죠. 그것은 원칙대로 처리할 것입니다.”

    “북한은 6자회담에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자꾸 일정을 미루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머리를 끄덕인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회담에 성실하게 임하라고 통보할 예정입니다.”

    “한반도의 핵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분명한 소신입니다.”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이명박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지만 배석자들의 얼굴은 굳어졌다. 통역이 ‘한반도’를 말하기 전부터 굳어져 있었다고 해야 옳다. 모두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그 이야기도 김 위원장에게 전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도닐런 씨.”

    도닐런이 떠나고 집무실로 들어서는 이명박의 뒤를 조순형, 유명환, 김성환이 따랐다. 소파에 둘러앉았을 때 이명박이 불쑥 말했다.

    “그게 얼마짜리인데.”

    모두 묻는 것 같은 시선을 보냈고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굶는 국민을 옆에 두고도 체제를 지키기 위해 기를 써서 투자한 핵 아닙니까?”

    그렇긴 하다. 이명박이 정색했다.

    “김 위원장이 나한테 넘겨줄 유산은 핵뿐이라고 했어요. 그게 어떤 물건이라고 폐기합니까?”

    # 경찰국장 최도현이 들어서자 정동영은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오늘은 결정해야만 한다. 그때 앞에 선 최도현이 제 귀싸대기를 때리는 것처럼 경례를 올려붙이더니 똑바로 정동영을 보았다.

    “장관 각하, 내일 오전 10시에 곽경수와 김종근, 장명환, 한윤기는 총살할 예정입니다.”

    모두 북한계로 두 명은 건물 명의를 쥔 현지인, 나머지 두 명은 담당 직원이다. 최도현이 묻는다.

    “장관 각하, 오종택은 고려시 특별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허가해주시기 바랍니다.”

    특별법원 재판은 단판으로 끝난다. 재심, 항고 따위가 없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첫 사형선고가 내려진 시범 사례다. 남북한은 물론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다. 그때 정동영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장관 직권으로 형집행 연기를 명령하겠소. 그렇게 알고 있도록.”

    최도현이 눈을 치켜떴다. 놀람과 분노가 절반씩 섞인 것 같다. 그 시선을 똑바로 받은 정동영이 빙그레 웃었다.

    “이건 장관의 권한이요. 알고 계시나?”

    “예, 알고 있습니다.”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한 최도현에게 정동영이 부드럽게 말했다.

    “이걸 한국에서는 시스템이라고 해요. 손발이 맞는다고도 하지. 호랑이 장관에 자비로운 경찰국장이 있는 고려시는 금방 망할 거요. 호랑이 국장에 생색내는 장관이 있어야 제대로 돌아가는 시 행정이 되지.”

    최도현이 눈을 깜빡이는 것을 보면 말뜻을 생각하는 것 같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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