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6

2012.09.24

말 안 되는 꼬투리로 ‘뒤통수 치기’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9-24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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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가수 싸이(PSY)의 ‘Right Now’에 대한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철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말 그대로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는 가운데 싸이의 또 다른 노래 ‘Right Now’가 유해매체로 판정받아 후속 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청원이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Right Now’ 한 곡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몇 년간 대중문화 헤게모니를 음악이 잡은 상황에서 벌어진 가장 어이없는 일이 바로 ‘심의’다. 그동안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주관하는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는 적잖은 논란을 불러왔다. 가수 10cm의 ‘아메리카노’가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은 건 “예쁜 여자와 담배 피고 차 마실 때”라는 가사가 담배 남용을 부추긴다는 이유에서다. 비슷한 시기 2PM의 ‘Hands Up’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노래가 됐는데 “술 한 잔을 다 같이 들이킬게”라는 가사 때문이다. 이 밖에 ‘맥주’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보드카 레인의 ‘심야식당’과 김조한의 ‘취중진담’이 유해매체로 지정됐다. 군사독재시대 유물인 심의가 사실상 부활한 것이다.

    과거 사전심의는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표현을 규제하는 첫 번째 적이었다. 한국 가요가 유독 사랑 타령으로 일관하는 것도 사회적 발언을 포함한 노래 대부분에 금지곡 판정을 내린 심의제도 탓이 크다. 사전심의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건재하다 1996년에야 결국 폐지됐다. 그러기까지는 심의를 거부한 채 ‘불법 음반’을 제작한 정태춘, ‘시대유감’에 대해 가사 수정 조치가 내려지자 아예 가사를 빼버리고 연주곡만 실었던 서태지 등의 저항이 적잖이 작용했다. ‘닥쳐’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 같은 노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사전심의가 사라진 뒤의 일이다.

    그렇다고 심의 자체가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관이 주도하는 심의가 사라진 대신 방송국이 심의에 나섰다. 그러나 방송 심의는 뮤지션이 거부할 수 있다. 물론 노래를 홍보하는 데 다소 불리할 수는 있지만, 그 대신 뮤지션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인터넷이 활성화하면서 청취 채널이 확대돼 방송 금지 딱지의 힘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다.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은 방송 금지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후심의라는 점에서 그렇다. 즉, 노래를 발표하고 버젓이 활동을 잘하던 가수에게 난데없이 비수가 날아든 격이다. 심의 주체가 대중음악 주관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여성가족부인 것도 이상하다. 회사 경리업무를 인사부에서 관장하는 격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청소년 유해매체 판정을 받으면 ‘19금(禁)’ 딱지가 붙어 방송, 공연, 판매 등 모든 활동에 규제를 받는다는 점이다. 방송 심의에서 문제가 생기면 방송 활동만 제약받는 데 반해, 한 음반에 담긴 노래 10곡 중 1곡만 유해매체로 판정받아도 나머지 9곡까지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가 되는 것이다.



    다 좋다. 청소년을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의도는 인정하겠다. 그런데 가사에 술이나 담배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노래가 유해하다면,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장면이 수시로 나오는 영화가 15세 관람가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청자 연령 제한이 없는 9시 뉴스에서 살인과 강간 사고를 다루는 것은 청소년에게 유해하지 않은가. ‘우라질 년’ ‘난장 맞을 년’ 같은 욕설이 난무하는 소설 ‘운수 좋은 날’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건 무섭지 않은가. 시시때때로 만취한 채 귀가하는 아버지는 유해 그 자체 아닌가.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는 양립할 수 없는 가치다. 굳이 심의가 필요하다면 부딪히는 두 가치의 중용을 찾아야 옳다. 그럼에도 그런 고민 없이 연일 문화 유해성을 단어로만 판단하는 희극이 벌어지고 있다. 19세라는 획일적인 기준 아래 유아와 고등학생을 동급으로 취급한다. 여성가족부의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를 근본부터 재고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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