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6

2012.09.24

풍경

  • 입력2012-09-24 08: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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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이름 없는 언덕에 기대어 한 세월 살았네

    한 해에 절반쯤은 황량한 풍경과 살았네

    꽃은 왔다가 순식간에 가버리고

    특별할 게 없는 날이 오래 곁에 있었네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풍경을 견딜 수 있었을까

    특별하지 않은 세월을 특별히 사랑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많은 들꽃 중에 한 송이 꽃일 뿐인

    너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풍경’, 도종환

    이제 서쪽 하늘을 보면 가을이 오는 모습이 확연하다. 놀에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너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이라는 말을 걸어놓는다. 말에도 무게가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뭇잎이 물들고 지는 것도 나무가 들고 있기엔 뭔가 무거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뭘까. 어떤 이에게는 사랑이고, 어떤 이에게는 생활이리라. 이 시에서는 그런 절실함이 무겁게 다가온다. 올봄에 헤어진 연인이여, 이 가을에 그리운 이의 이름을 가까운 곳에 보이는 풍경에 걸어보라. ─ 원재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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