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3

2012.09.03

성범죄 아들 옹호 ‘母性의 변심’

가해자 어머니들 오히려 피해자 공격 ‘이중적 행동’

  • 이윤진 객원기자 nestra@naver.com

    입력2012-09-03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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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범죄 아들 옹호 ‘母性의 변심’
    8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모 씨와 배씨의 어머니 서모 씨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하고 서씨를 법정구속했다. 배씨는 이미 성추행 혐의로 구속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의 확정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어서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1년을 더 복역해야 한다.

    배씨는 이른바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 3명 가운데 1명이다. 그는 지난해 5월 경기 가평으로 MT를 갔다가 민박집에서 동기 2명과 함께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피해 여학생의 옷을 벗기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고소당했다. 고소 후 배씨와 어머니 서씨는 3명의 변호인단을 구성하는 등 무죄 입증을 위해 발 빠르게 대응했지만 입증이 여의치 않자 의대 동아리방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학생 21명에게 ‘피해자가 평소 이기적이고 학교생활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인격장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고, 가해 학생들이 그나마 피해자가 학교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학우들 사이에선 이번에 불거진 강제추행 사건 역시 피해자의 인격장애적 성향 때문에 부풀려진 것 아니냐는 견해가 우세하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나눠주고 서명날인까지 받았다.

    피해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는 점을 입증해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한 사실확인서였지만, 결과는 서씨 모자가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사실확인서의 내용이 교내와 인터넷 등을 통해 ‘마치 사실인 양’ 전파되면서 피해자가 대인기피증과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점점 피해가 커지자 검찰은 1심 선고 직후인 지난해 12월 이들 모자의 상식을 벗어난 행위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추가기소하는 강수를 뒀다.

    협박에 폭언 2차 피해 비일비재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들은 피해자에게 의사 생활이 쉽지 않게 되는 등 강제추행보다 더 큰 치명적인 2차 피해를 입혔다”고 지적하면서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강조하며 명예훼손죄로는 드물게 징역 1년의 법정구속을 선고했다.



    한편 피해 여학생은 지난해 12월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나는 이 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내가 평생 가져갈 고통과 배씨 등이 퍼뜨린 나에 대한 험담, 뒷소문을 생각하면 1년6개월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재판부도 “현재 피해자는 정상적인 수련의 과정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국내에서 의사 생활을 하기 힘들게 됐다”고 판결 이유를 밝혀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타격이 쉽게 치유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이번 판결이 배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다른 가해자 2명에 비해 징역 1년이 늘어난 점도 그렇지만, 피해자에 대한 막가파식 모함으로 배씨의 도덕성과 상식까지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아들 장래를 위해 벌인 어머니 서씨의 구명운동은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안겼다.

    그런데 서씨 행동은 다른 성범죄들을 살펴보면 그리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성추행, 성폭력 등 각종 성범죄에 대해 가해자 어머니가 가해자 편에 서서 피해자를 협박하고 폭언을 해 피해자에게 심리적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등 2차 피해가 비일비재하다.

    2004년 발생한 ‘밀양 여중생 성폭력 사건’의 경우도 그렇다. 경남 밀양시에 사는 여중생 자매가 고교생 44명에게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한 사실이 드러나 전 국민이 경악했던 이 사건에서 정작 피해를 입은 쪽은 피해자 자매와 그 가족이다. 성폭력 장면을 휴대전화 카메라와 캠코더로 촬영해 일부를 인터넷에 올리고, 성기구까지 사용한 극악한 성범죄에 대해 가해자 어머니들은 피해자를 찾아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해 피해자로 하여금 자살미수라는 극단적 시도를 하게끔 몰아갔다.

    심지어 한 가해자 어머니는 TV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왜 피해자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합니까? 우리가 지금 피해 입은 건 생각 안 합니까? 딸자식을 잘 키워야지. 그러니까 잘 키워서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지. 여자애들이 와서 꼬리치는데 거기에 안 넘어가는 남자애가 어디 있나요?”라고 큰소리치면서 “조금 잠잠해지고 나면 우리도 가만 안 있을 겁니다”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2009년 발생한 ‘부천 여고생 성폭행 방화 살인 사건’의 피해자 부모 역시 딸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가해자 어머니의 폭언이라는 가슴 저미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건 주범인 쌍둥이 형제의 어머니는 법정에서 “여자애가 먼저 배에 올라타 유도했다고 하더라”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다 보니 술을 마시다 생길 수도 있는 일”이라며 가해자에게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아들 보호” 특유의 모성 관념 여전

    언론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성범죄 사건에서도 가해자 어머니는 피해자를 압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직장상사에게 성폭행당해 그를 고소한 A씨는 불구속으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해자가 “이 여자가 먼저 접근했다” “남자관계가 복잡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직장 내에서 웃음거리가 됐다. 한 술 더 떠 가해자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와 “앞길이 구만리인 내 아들 인생을 망칠 거냐”고 협박하는 등 모자로부터 이중 공격을 받아 직장생활과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고초를 겪었고, 결국 합의해줄 수밖에 없었다.

    만취상태로 지하철을 탔다가 여관으로 끌려가 성폭행당한 B씨는 범인을 고소한 후 가해자 어머니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용서를 종용하는 바람에 고소를 취하했다.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가해자 어머니는 “한 번만 봐달라고 경찰에 부탁했더니 경찰이 당신 번호를 알려줬다”고 답했고, 이 말을 들은 B씨는 나중에 해코지당할 게 두려워 고소를 취하했던 것.

    성범죄에서 가해자와 가해자 주변인에 의해 이뤄지는 2차 피해 중에서도 가해자 어머니에 의한 사례는 특별하다. 이는 가해자 어머니가 성범죄 대상이 되는 ‘여성’과 가해자 편인 ‘어머니’라는 이질적인 정체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아마 가해자 어머니도 그동안 성범죄 관련 보도를 접하면서 분명히 어머니 처지에서 공감하고 분노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막상 자기 아들의 이야기가 되면 잣대가 바뀌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중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이들 어머니는 분명히 ‘여성’이라는 공동체적 의식과 그에 따른 도덕성을 갖추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가족’, 그중에서도 ‘모자관계’에 큰 비중을 둔다”며 “그래서 사건 가해자인 아들에 대한 위기의식이 발현돼 엇나간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엄마는 아이를 무조건 보호하고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우리나라 특유의 ‘모성애’ 관념, 특히 아들과 제대로 ‘분리’되지 않는 모자관계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씨를 법정구속한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아들의 구명을 위해 저지른 것으로 정서적, 감정적으로 납득하고 동정할 여지는 있지만 딸 가진 부모 처지를 한번 생각해보라.”

    자식 앞에 닥친 일에 억장이 무너지는 건 피해자와 가해자 처지를 떠나 부모라면 매한가지일 터. 하지만 재판부의 말을 곰곰이 되씹으면 진정으로 아들을 위하는 일이 무엇인지 답이 나온다. 위협에 의한 고소 취하보다 자식의 죄를 먼저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의 마음을 보듬어 진정으로 아들을 용서할 수 있게 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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