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3

2012.09.03

연못의 처녀, 한약재로도 좋아라

노랑어리연꽃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ymlee99@forest.go.kr

    입력2012-09-03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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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의 처녀, 한약재로도 좋아라
    평생을 풀이나 나무를 찾아 산과 들을 누비는 저 같은 식물학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이 땅 이곳저곳에서 피고 지고 있을, 이런저런 꽃 생각으로 마음이 절로 간절해지곤 합니다. 막상 여름이라는 계절을 보내려 하니 물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 꽃구경을 놓쳐버린 것이 가장 아쉽네요.

    우리는 흔히 잔잔한 물 위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 하면 제일 먼저 수련이나 연꽃을 떠올리지요. ‘물의 요정’이란 별명으로 숱한 노래와 그림에 등장하는 수련이나,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탐스럽고 고결한 연꽃은 모두 참으로 곱습니다. 게다가 꽃에 담긴 이야기나 쓰임새도 무궁한 좋은 식물들이지요. 하지만 이 두 식물은 모두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랍니다.

    자생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련이나 연꽃의 화려함에는 조금 못 미쳐도,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고운 우리의 수생식물이 여럿 있으니까요. 물가에서 자라는 진분홍빛 털부처꽃이나 보랏빛 물옥잠 꽃도 참 예쁘고, 꽃잎을 빼놓고는 잎이며 줄기며 꽃받침이며 온통 가시가 무성해 신비롭고 개성 넘치는 가시연꽃도 있답니다.

    우리의 눈길을 기다리는 멋진 자생식물 중에서도 노랑어리연꽃의 아름다움은 특별합니다. 주로 중부 이남 지역의 물에서 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수염 같은 뿌리가 물속 땅에 자리 잡고, 가늘고 긴 줄기의 마디에 잎이 1~3장 달리며, 잎자루가 길어서 물 위로 떠오르지요. 지름이 5~10cm 되는 방패형 잎은 윤기로 반질거리고, 꽃은 여름에 핍니다. 초여름에 시작해 여름이 가도록 오래오래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꽃 지름은 3~4cm 되는데, 무성하고도 고요한 여름 연못에 잔잔한 꽃송이들이 이어지듯 펼쳐져 피어 있는 모습은 그 어떤 풍경보다도 장관이랍니다.

    노랑어리연꽃의 꽃잎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욱 멋져요. 노란색 꽃잎 가장자리에 마치 레이스처럼 가느다란 털이 달려 있답니다. 꽃이 노란색이 아닌 흰빛이고, 크기가 조금 작은 꽃들을 보셨다면 그건 그냥 어리연꽃이랍니다.



    노랑어리연꽃은 먼저 한방에서 이용합니다. 생약명은 행채( 菜)라고 하며 잎, 줄기, 뿌리를 모두 쓰지요. 간과 방광에 이롭고 해열, 이뇨, 해독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임질, 열과 한기를 조절하는 여러 증상에 처방하지요. 부스럼이나 종기의 경우 생잎을 찧어 상처 난 부위에 붙인다고 하네요.

    최근에는 물이 있는 공간이 도시에서도 매우 중요한 생태학적 공간으로 여겨지면서 노랑어리연꽃 같은 우리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널따란 연못에 수련 대신 심어 키우면 훨씬 은은한 멋을 느낄 수 있고, 또 돌확 또는 옹기 같은 곳에 심어 실내나 정원 한쪽 공간에 놓고 보는 것도 유행이지요.

    연못의 처녀, 한약재로도 좋아라
    눈여겨 찾아보면 주변의 작고 오래된 저수지 같은 곳에서 자라는 노랑어리연꽃이나 어리연꽃을 만날 수 있는데, 그렇게 만나는 꽃들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행복입니다. 이런 행운은 마음을 열고 찾아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먼저지요. 쉽게는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광릉) 수생식물원에 찾아오면 어김없이 있습니다.

    한번 이 꽃들을 바라보고 나면 이토록 좋은 우리 수생식물 자원을 두고 왜 그동안 외래식물만 곁에 두려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하지요. 게다가 이즈음에는 수목원에서 전국(일부는 전 세계)에 있는 귀하고 보전해야 할 수생식물을 모아 전시회도 여니 한번 들러보세요. 잔잔한 수면의 꽃들과 함께 걸으면서 가는 여름을 갈무리해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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