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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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케이팝’도 평창서 금메달 딸 수 있을까

런던올림픽 ‘음악 만세’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8-20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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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대중문화가 승리했음을 선언하는 판결문. 2012 런던올림픽 개폐막식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인쇄술 보급과 산업혁명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대중소설이 탄생한 발원지. 셜록 홈스, 제임스 본드, 그리고 해리 포터로 이어지는 대중문화 캐릭터의 고향. 비틀스에서부터 콜드플레이에 이르는 대중음악 생산국. 이 모든 것으로서의 영국을 유감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의 힘을 유감없이 펼치리라 예상했던 것은 지난 연말 개폐막식 스태프가 발표될 때부터다. ‘트레인스포팅’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만든 대니 보일 감독이 총연출을 맡고, 블러와 고릴라즈의 데이먼 알반이 아트 디렉터를 하며, 언더월드가 음악감독을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음악팬은 일제히 환호했다. 뒤이어 폴 매카트니가 개막식에 참가하고, 영국 음악 50주년이 폐막식 메인 테마가 되리라는 뉴스도 가슴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매년 록페스티벌의 출연진을 점치듯 ‘그렇다면 과연 누가 누가 나올 것인가’ 하는 예측이 난무했다. 아마 올림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뚜껑이 열렸다. 시작부터 울컥했다. 비틀스, 롤링스톤스를 시작으로 섹스 피스톨스와 더 클래시를 거쳐 오아시스와 콜드플레이의 명곡이 죽 흐르면서 영국 인민의 생활 문화사를 상징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브리티시 인베이전, 77 펑크 레볼루션, 쿨 브리타니아 시대의 음악과 영국사가 묶인 것이다. 마이크 올드필드의 ‘Tubular Bells’가 연주되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폴 매카트니의 ‘Hey Jude’를 합창하는 10만 관중.

    이 충격은 폐막식이 열리기 전에도 지속됐다. 다른 이들이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볼 때, 나는 선수 입장이나 시상식 등 행사 전반에 흐르는 음악에 놀랐다. 국가를 제외한다면 영국 인디뮤지션들의 음악이 배경음악(BGM)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망의 폐막식. 폐막식에 쓸 음악을 작곡하는 수고를 런던올림픽 운영위원회 측은 할 필요가 없었다. 영국 출신 뮤지션의 공연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저세상으로 간 존 레넌과 프레디 머큐리가 영상으로 등장해 노래하고, 에드 시런과 제시 제이 같은 신진 아티스트가 각각 핑크 플로이드, 퀸 멤버들과 함께 연주하는 광경은 그 화려했던 무대와 불꽃놀이를 능가하는 스펙터클이었다. 1962년 10월 비틀스의 첫 싱글 ‘Love Me Do’를 발표한 지 50주년을 기념하는 이 거대한 생일잔치가 전 세계가 지켜보는 올림픽의 메인 테마가 된 것이다.



    출연진만으로도 화려했는데, 라인업을 구성하는 방식 또한 치밀했다. 폐막식을 여는 세리머니에서 처음 등장한 매드니스는 1970년대 자메이카 이민자와 백인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스카를 상징하는 밴드다. 뒤이어 나온 블러의 ‘Parklife’는 영국 중산층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린 송가다. 바로 이어서 펫숍보이스가 등장해 ‘West End Girls’를 불렀다. 이 순서는 인종 간 화합, 도시와 전원, 그리고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화합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수 입장이 끝난 후 진행한 ‘심포니 오브 브리티시 뮤직’ 역시 기존 뮤지션과 노래들이 각각의 테마 아래 총 4개 악장으로 묶였다. 폐막식에서 가장 강한 메시지는 역시 성화가 소등된 후 피날레로 등장한 더 후의 무대에서 나왔다.

    한국에서는 변변찮은 대접을 받지만 더 후는 많은 상징성을 가진 밴드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로고를 유니언잭으로 사용할 만큼 ‘영국적 가치’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My Generation’은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의 세대송이었다. ‘나의 세대를 노래하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해진 영국에서 처칠에 의해 시작된 복지와 공공정책의 수혜로 다시 급성장한 영국 경제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1960년대 모드족을 위한 송가다. 윤택한 경제생활 속에서 노동계급 청년들이 아르마니, 베스파 같은 최신 트렌드를 소비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모드족이라 불린 그들은 대중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더 후가 부른 ‘My Generation’은 이 새로운 세대 자체를 상징하는 노래나 다름없다.

    물론 그 후로도 수많은 영국 밴드가 이 노래를 커버했다. 영국의 많은 전설적 뮤지션 가운데 더 후가 마지막에 등장한 것은 ‘늙은 사자’가 아닌 ‘영원한 젊음’이 되기를 바라는 영국의 희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혹은 영국은 여전히 젊은 나라라는 사실을 대중음악의 힘으로 보여주기를 바라는 소망이었거나. 엄숙과 근엄함이 아닌, 환희와 쾌락으로도 얼마든지 경이와 웅장함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이를 가능케 하는 대중문화가 바로 영국의 힘임을 런던은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금메달 수를 세기보다 ‘영국 만세!’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평생 음악을 사랑해온 사람으로서 충분히 그럴 만한 이벤트였으니까.

    이 열광의 순간이 끝나니 걱정이 밀려왔다. 평창동계올림픽 때문이다. 런던올림픽을 보면서 누군가는 개폐막식에 케이팝(K-pop) 스타들을 대거 출연시킬 궁리를 할 게 분명할 것 같아서.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짐 싸들고 가서 말리고 싶다.

    런던올림픽에 등장한 뮤지션 가운데 90% 이상이 직접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와 밴드다. 스파이스 걸스, 테이크 댓, 원 디렉션을 빼면 모두 그렇다(이들 무대가 반응도 가장 안 좋았다). 영국 음악을 예술로 만들어온 그들은 트렌드에 맞춰 음악을 만든 적이 없다. 자기 음악을 새로운 트렌드로, 나아가 미학으로 승화시켜왔다. 즉 스스로가 창작 주체였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태도는 올림픽과도 일맥상통한다. 한 선수가 메달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 가족과 코칭스태프의 헌신적인 보살핌, 효과적인 정책….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선수다. 선수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육체 말이다.

    음악 또한 그렇다. 기획사 지명도와 노하우 없이 아이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획 트렌드, 산업 성장은 이끌어낼 수 있을지언정 스포츠에서 육체 미학과 일치하는 음악적 미학은 원래 아이돌의 몫이 아니다. 무엇보다 트렌드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 건 아이돌의 숙명이다.

    과연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지금 케이팝 유행이 지속될 수 있을까. 지속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트렌드에 목숨 걸기보다 한국 대중문화의 다양성과 역사성을 고민하고 보여주는 이벤트를 바라는 이유다. ‘아이돌 천국’으로 인식되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인식은 그제야 날아갈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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