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4

2012.07.02

“사이버 범죄보다 더 무서운 건 ‘무플’이죠”

드라마 ‘유령’ 주인공 소지섭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2-07-02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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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범죄보다 더 무서운 건 ‘무플’이죠”
    외까풀에 촉촉한 눈망울, 잡티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 운동으로 만든 다부진 몸매까지. 배우 소지섭(35)은 20대 청년 같았다. 외모도 외모지만,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치한 옷차림이 단정하면서도 세련돼 보였다. SBS 드라마 ‘유령’ 시청자들이 그를 두고 “이보다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남자가 또 있을까” “과연 소간지(어떤 옷을 입어도 맵시가 난다는 뜻을 지닌 소지섭의 애칭)”라며 감탄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1인 2역에 애 딸린 유부남 첫 도전

    소지섭은 평소 편한 캐주얼 의상을 즐기지만, 현재 출연 중인 ‘유령’에서는 정장 차림을 고수한다. 그가 맡은 배역이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팀장이기 때문. 그는 2001년 드라마 ‘로펌’과 2004년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도 두뇌가 명석한 엘리트 캐릭터를 연기한 바 있다.

    “엘리트 역이라고 해서 처음엔 좋았는데, 만날 양복 입고 넥타이까지 매려니 거추장스럽고 갑갑해요. 길바닥에서 자고 막나가는 그런 배역이 편한데 지금은 말 그대로 어색한 옷을 입은 기분이죠(웃음).”

    그는 전작인 영화 ‘오직 그대만’의 촬영을 끝내고 “슬픈 감정을 장시간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며 “다음에는 편한 작품을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연기하기가 간단치 않은 작품을 골랐다. 그는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파헤치는 스릴러라는 소재의 참신성에 끌렸고, 시대에 잘 맞는 이야기라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언뜻 어렵고 딱딱한 소재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시청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쉽게 풀어가려고 제작진과 출연자 모두 노력한다”고 전했다.



    ‘유령’은 최근 몇 년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유명 연예인의 자살과 악성댓글, 디도스(DDoS) 공격, 민간인 불법사찰 등을 다룬다. 매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시청률도 상승세를 유지한다. 5월 30일 첫 회 방송분은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 가운데 가장 낮은 7.6%를 기록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상승해 지금은 12%에 육박한다.

    “이렇게 매회 반전을 거듭하는 작품은 처음이에요. 도무지 다음 내용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 새 대본을 받을 때마다 또 어떤 놀라운 반전이 튀어나올지 기대되고, 좀 무섭기도 해요. 실제로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일하는 분 말씀이 드라마 내용이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얼마든지 해킹당할 수 있고, 다른 장소에서 원격조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섬뜩했어요. 누구도 그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일부러 말 많이 하고 자주 웃어

    “사이버 범죄보다 더 무서운 건 ‘무플’이죠”
    이 드라마의 첫 번째 충격적인 반전은 그가 연기하는 주인공 김우현이 방송 2회 만에 사망한 것이다. 김우현은 경찰대에서 막역하게 지낸 동기이자 ‘하데스’라는 가명의 해커인 박기영(최다니엘 분)과 실랑이를 벌이다 폭파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한다. 이후 박기영은 화상당한 전신을 김우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성형하고 사이버수사대에 복귀한다. 김우현과 박기영, 1인 2역을 소화하는 소지섭은 “박기영이 된 후 최다니엘 씨의 연기를 100% 그대로 표현할 수 없어 두 사람 사이의 중간쯤을 연기한다”고 털어놨다.

    “초반에는 최다니엘 씨를 무조건 흉내 내려 해서인지 연기가 어색하고 리듬도 깨지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했는데, 꼭 박기영처럼 행동할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박기영은 김우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쓸 테지만 본성은 숨길 수 없으니까 어느 때는 박기영의 캐릭터가 나오겠죠. 그런 미묘한 감정을 살리려고 온전히 박기영도 아니고 김우현도 아닌 새로운 톤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살아보는 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봄직한 일. 극중에서처럼 몸을 바꿔 살아야 한다면 그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여자가 되고 싶어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남자도 괜찮지만 여자로 살아봐도 재미있겠단 생각이 순간순간 들더라고요(웃음).”

    지금까지 방송한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는 대뜸 “김우현에게 아들이 있다는 설정”이라고 답했다. 아이 딸린 유부남 역은 데뷔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유령’에서 그의 상대역인 배우 이연희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촬영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한다. 잘 웃고 농담도 잘한다고 하니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양이다. 그는 군대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수가 적고 어두운 이미지가 강했다.

    “본성은 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바뀌었어요. 근래에 작품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거든요. 촬영 현장은 주인공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인공이 말없이 인상을 구기고 있으면 분위기가 가라앉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말을 많이 하고 잘 웃고 그랬더니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아지는 거예요. 성격상 그게 쉽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 즐겁게 촬영할 수만 있다면 더 노력해야죠. 현장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건 주인공으로서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소임이니까요.”

    1995년 청바지 브랜드 스톰의 1기 전속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그동안 큰 사고를 친 적도, 구설수에 휘말린 적도 없다. 그런 그도 악성댓글로 상처받은 적이 있을까.

    “악성댓글을 보면 초연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예 보지 않아요. 댓글이 몇 개나 달렸는지 세어보긴 하는데 ‘무플’일 때 정말 속상하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무관심이라고 하잖아요(웃음).”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액션물이 몇 작품 끼어 있지만 그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드러난 작품은 대부분 멜로물이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영화 ‘오직 그대만’. 영화에서든 드라마에서든 바람기와는 거리가 먼 순정남을 연기해온 그는 실제로도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믿는다고 한다. 이상형은 매번 변하지만 언젠가 만날 짝은 “좋아하는 것도 같고, 싫어하는 것도 같은 사람”이었으면 한다고.

    하지만 배우 외에도 래퍼, 사진작가, 카페테리아 사장 등 직업이 여러 개인 그에게 당분간은 딴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지난해부터 이미연과 함께 촬영한 액션멜로영화 ‘회사원’도 올해 안에 개봉한다. 영화도 드라마처럼 사랑받기를 소망한다는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유령’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불을 끄고 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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