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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 김유림의 All That 퍼포먼스

정의의 이름으로 돈키호테 나가신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정의의 이름으로 돈키호테 나가신다

정의의 이름으로 돈키호테 나가신다
모두가 그를 비웃는다. 17세기 초,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스스로를 ‘방랑의 기사’라고 착각하는 그 노인은 빼빼 마르고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지만 두 눈만은 태양을 삼킬 듯 이글이글하다. 면도 대야를 뒤집어쓰고, 비쩍 마른 말 로시난테를 탄 그는 세상의 악을 바로잡는 무적의 기사, 라만차의 돈키호테다.

배를 잡고 웃다 보면 문득 자문하게 된다. 이 세상 누가 그를 비웃을 수 있는가. 그는 진실하고 열정적이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두려워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한때의 적이라도 상처를 보듬는 포옹력까지 있다. 그가 부르는 ‘임파서블 드림(impossible dream)’에는 그의 생각이 잘 담겼다. 이룰 수 없는 꿈, 이길 수 없는 싸움, 견딜 수 없는 슬픔임을 알지만 그는 구부러진 칼을 차고 말라비틀어진 노새를 탄 채 달려간다.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400년 동안 많은 이에게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하지만 고전 반열에 드는 책이 늘 그렇듯, 이젠 읽기보다 인용을 많이 하는 ‘두꺼운 책’이 돼버렸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낡은 책장 속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생생하게 꺼내왔다. ‘작가 세르반테스가 바로 돈키호테’라는 전제를 깔고, 더욱 실감나게 돈키호테 이야기를 전한다.

실제 세르반테스는 작품 명성과 달리 배배 꼬인 인생을 살았다. 군인으로 전투에 나가 왼손을 잃었고 해적의 습격으로 알제리에서 5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훗날 하급 관리로 일하지만 몇 차례나 비리 혐의로 고발당해 감옥에 갇힌다. 그는 감옥에서 유머 소설 ‘돈키호테’를 구상했다. 시대의 역작 ‘돈키호테’를 쓰고도 인세를 일시불로 받아 부를 누리지 못했다. 사실 공상을 통해 희망을 얻은 건 그 자신이다. 그는 극 중 대사처럼 우리 역시 누구든 돈키호테가 될 수 있으며, 돈키호테처럼만 하면 종교재판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억압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돈키호테 나가신다
돈키호테의 위대함이 빛나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다. 돈키호테의 레이디 알돈자는 “왜 죽는지가 아니라 왜 그동안 살아 있었는지”를 묻고 싶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산다. 모든 걸 포기한 채 불행해하는 그녀에게 돈키호테는 지속적으로 숭고한 사랑의 노래를 바치고, 결국 그녀를 변화시킨다. 거친 거리 여인이던 알돈자는 죽음을 맞은 돈키호테에게 오히려 희망의 노래를 일깨워준다.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값진 인생인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2005년 한국 초연 이후 다섯 번째로 관객을 찾았다. 그만큼 많은 관객이 돈키호테 모험담에 열광하는 것. 비록 후반부에 비해 지하 감옥 이야기, 돈키호테의 초기 모험을 다룬 1막은 지루한 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땐 달콤한 선율과 세련된 연출, 깔끔한 구성 등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이다. 이번 공연에서 돈키호테 역은 3명의 배우가 맡았다. 젊고 패기 넘치는 홍광호, 익숙한 황정민, 완숙한 매력의 서범석 등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배우가 연기하는 돈키호테를 골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0월 7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 문의 02-556-8556.



주간동아 2012.07.02 844호 (p73~73)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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