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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창작의 천재인가 번안의 천재인가

인기 있는 설화 모아 극적 스토리로 재구성

창작의 천재인가 번안의 천재인가

창작의 천재인가 번안의 천재인가

셰익스피어 초상화.

들장미 소녀 캔디가 남친 테리우스를 만나러 시카고로 간다. 테리우스는 스트랫퍼드 극단의 떠오르는 배우다. 극장에서는 현재 ‘리어 왕’이 상연 중이다. 오랜만에 재회한 테리우스의 얼굴에서 캔디는 뭔지 모를 어두운 그늘을 발견하는데…. 만화에 나오는 ‘스트랫퍼드’라는 극단 이름은 셰익스피어 생가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 ford-upon-Avon)에서 따온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그곳에서 1564년 출생해 1616년 사망한 실존 인물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

이곳 교회에는 셰익스피어의 출생 및 사망 기록 원본이 남아 있고 묘지도 있다. 농산물 도매, 양모업을 하던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인구 2000~3000명인 이곳의 읍장이었는데, 1577년 사업에 실패한 후 아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년 시절을 파란만장하게 만들었다. 셰익스피어는 1582년 여섯 살 연상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해 6개월 만에 장녀를 낳았고 1585년 햄네트와 주디스라는 이란성 쌍둥이의 아빠가 됐다. 1586년쯤 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런던에 진출,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으로 보이며(기록 부재로 7년간의 행적을 추적할 수 없다), 다른 작가들의 편지를 검토한 결과 1592년 무렵에는 신진 극작가로서 입지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출발은 배우였고(출연한 프로그램이 남아 있다) 1603년에는 제임스 왕의 직속단체라는 지위를 획득하며 극장건축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1608년 모친 메리의 사망 이후 낙향한 뒤 대저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평안한 만년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이자 이야기꾼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지구 전역에서 지금도 널리 읽힐 뿐 아니라 공연으로, 영화로, 텔레비전 드라마로, 심지어 만화영화로도 재활용된다. 500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꾸준한 흥행성적을 올린다는 건 그의 작품이 현대 관객과도 정서적으로 교감한다는 뚜렷한 증거다. 예를 들어보자.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어린 연우가 몽환약을 먹고 가사(假死)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모티프는 ‘로미오와 줄리엣’ 마지막 장면의 창조적 차용이다. ‘숙부에 의한 부왕(父王)의 살해와 홀로 남겨진 왕자(王子)의 고난’은 ‘햄릿’의 줄거리인데, 이것을 어린이용으로 변환한 영화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아예 “이 영화는 배경만 현대 뉴욕으로 바꾼 ‘로미오와 줄리엣’이다”라는 문장을 선전문구로 뽑았다. 시대가 바뀌면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도 함께 변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셰익스피어란 말인가.

셰익스피어가 세계적 명성을 획득한 시기는 대영제국의 팽창기와 정확히 겹치며, 영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셰익스피어 인기의 원천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해석은 극히 일부분의 진실만을 포함했을 뿐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국은 유럽에서 주요 국가가 아니었다. 우리가 한때 ‘파리’ 애마나 ‘뉴욕’제과, ‘애리조나’ 카우보이와 ‘마카오’ 신사에 열광했던 것처럼, 시골 문사이던 셰익스피어는 당대 선진국이던 르네상스의 이탈리아를 동경해 수많은 작품에서 배경으로 삼았다. 베네치아(‘베니스의 상인’ ‘오셀로’)와 베로나(‘로미오와 줄리엣’ ‘베로나의 두 신사’)가 대표적이다. 대영제국의 팽창기는 셰익스피어가 유럽 독자들과 만나기 시작한 첫 번째 시대다. 정치적 후광은 그가 만든 이야기가 영국 밖으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됐을망정 그가 누리는 인기와 영향력의 원인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는 셰익스피어가 지어낸 이야기 속에 시대와 문화권을 넘나들며 자체적으로 진화해나갈 단서들이 들어 있다고 보는 편이 좀 더 합리적이다.



셰익스피어가 지어낸 이야기는 희로애락 같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다루며, 이런 보편적 감정을 샘플링한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모델이다. 이런 정제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창작의 천재라기보다 번안의 천재였다.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를 새로 꾸며낸 사람이 아니라, 당대에 가장 인기 있고 널리 퍼진 설화를 모은 뒤 그 스토리의 가장 극적 요소들을 흡수해 새로운 질서로 재구축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복수(復讐)의 의지’를 다룬 ‘햄릿’의 공간적 배경은 덴마크 왕실인데, 이 이야기의 뼈대는 12세기의 덴마크 문필가 삭소가 펴낸 ‘덴마크사’에 고스란히 들어 있으며, 프랑스인 벨르포레가 번안해 1570년 펴낸 ‘비극설화’에 확대 재생산된 형태로 남아 있다. 셰익스피어가 ‘비극설화’를 읽은 것은 거의 확실하다. 토머스 키드의 희곡 ‘스페인의 비극’도 문제다. 이 작품을 공연할 때 셰익스피어는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햄릿’에서 가장 극적 요소인 복수, 광기, 극 중 극, 망령의 등장 등은 본디 토머스 키드의 아이디어다.

등장인물 매력적 캐릭터로 재창조

창작의 천재인가 번안의 천재인가

셰익스피어 생가.

‘로미오와 줄리엣’도 순수 창작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비극적 로맨스소설은 셰익스피어 당대에 각기 다른 영역본이 널리 돌아다닐 만큼 인기 출판물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여러 소설의 극적인 부분만을 모은 뒤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구성했다. 셰익스피어가 남긴 거의 모든 작품에 이러한 뒷이야기가 있다. 그는 역사서, 야담집, 하이틴 로맨스 소설,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 등 듣고 모을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끌어모은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이야기꾼의 성과와 성취에 어느 정도 빚을 졌다는 것이다.

오래 살아남은 인기 있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았기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직격(直擊)하는 맛을 낸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가 남의 아이디어를 무작정 가져다 쓴 것은 아니다. 주인공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해 각각의 등장인물을 생동감 넘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재창조하고, 이야기의 얼개를 다층적, 논리적으로 재구성해 극적 요소를 증폭한 것은 오롯이 그의 공로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 작품 속 이야기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의 본질은 바로 ‘혼합과 흡수’일지도 모른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모든 이야기는 여러 이야기 사이의 경쟁과 협력이라는 과정을 거쳐 진화한 결과물이며, 이러한 결정이 천재의 손을 거쳐 다시 한 번 섞이고 부딪히면서 시대와 문화권을 뛰어넘을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진 것은 아닐는지.



주간동아 2012.06.18 842호 (p48~49)

  • 장원재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 drjang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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