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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정치풍자소설

레임덕은 없다

15회 통일 준비

레임덕은 없다

“남북대화를 하기 전에 내부 기반부터 굳혀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의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회의실에는 이명박과 이회창, 국방부 장관 이상희, 외교부 장관 유명환, 통일부 장관 김하중에 비서실장 조순형과 안보수석 김성환까지 둘러앉아 어제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군사회담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안보담당 국가원로 전두환이 말을 이었다.

“아직도 친북, 종북 분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 암세포처럼 번져 있습니다. 그들이 지난 광우병 난동 사건을 주도했고 지금까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배후에서 조종해온 것입니다.”

회의실 안은 조용하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지긴 했다. 국가보안법이 제대로 시행되면서 제각기 머리를 감추고 있지만 사회 곳곳에 박혀 있는 반역세력의 뿌리는 깊다. 전두환이 둘러앉은 면면을 훑어보았다.

“김정일이 저렇듯 기세를 올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핵 때문이 아닙니다. 평균 신장이 160cm도 안 되는 난쟁이 인민군 부대 때문도 아닙니다.”



그러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남한에서 공공연히 종북활동을 하는 반역자들 때문입니다. 그들을 보면 금방 통일이 될 것 같은 환상에 빠지는 게 당연합니다. 이 지구상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역사를 봐도 이런 해괴한 경우가 없습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지만 지금도 위험합니다. 휴전상태에서 적국에 동조하는 무리가 국회에까지 침투해 있다니요. 이는 패망하기 전의 월남보다 더 위험한 상황입니다.”

전두환이 입을 다물었다. 월남에선 간첩들이 군, 정부, 학생 사이에 숨어 활동했지만 지금 한국은 대놓고 종북주의자가 나서고 있다. 이러니 김정일은 어느 곳에 폭탄 한 발만 터뜨려도 수백만 친북세력이 폭동과 게릴라전을 일으켜 호응하리라 믿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같은 사건을 반복한다. 58년 전인 1950년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김정일의 아버지 김일성이 북한 통치자였고 남한에서는 여운형, 박헌영이 이끄는 공산당이 매일 폭동을 일으켰다. 김일성은 인민군이 휴전선만 돌파하면 남한에 있는 공산당이 일제히 궐기할 것이라고 믿었다.

# 회의가 끝나고 넷이 대통령 집무실로 옮겨왔다. 이명박과 전두환, 이회창과 조순형이다. 셋이 집무실 소파에 둘러앉았을 때 뒤에서 얼쩡거리던 조순형이 말했다.

“저는 물러가 있겠습니다.”

“아니, 조 실장, 앉으세요.”

이명박이 눈으로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격 따지지 마십시다. 나는 조 실장을 비서실장보다 조언자로 여기고 있으니까.”

그러자 전두환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정색한 얼굴이다. 그가 이명박에게 말했다.

“대통령님, 참 대단하십니다.”

“아니, 뭐가요?”

“나도 대통령을 해보았지만 그렇게 탁 내려놓는 것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잘하셨지요. 그래서 충신도 많으시고.”

“아니, 이 대통령도 나중에 보셔야지요.”

“에구, 5년차에 무너지지만 않아도 다행입니다.”

“아니, 지금 누구 약 올리시는 겁니까? 대통령 이야기만 하시게?”

하고 이회창이 나섰으므로 둘은 말을 그쳤다. 쓴웃음을 짓고 난 전두환이 입을 열었다.

“어제 남북군사회담에서 한바탕 당한 북한이 곧 대응을 해올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전두환이 말하자 이명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이 남북군사회담을 제의해오자 이명박은 전두환에게 회담을 일임했던 것이다. 회담장 모습을 모조리 생생하게 녹화한 뒤 어제부터 TV로 계속 방송하고 있다. 지금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아프리카에서도 조태수가 “씨발놈, 좆만한 놈” 하는 장면이 방송된다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좆만한 놈’을 ‘페니스만한 놈’으로 직역해 시청자 항의가 빗발친다고 했다. 한국군 위상을 업그레이드한 사건이다. 조태수가 무지막지하게 퍼붓고 회담장을 나갔을 때 북측 대표단은 제대로 항의조차 못 했다. 뒷모습에 대고 “어, 어, 저 새끼” 하는 동안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회담장 안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놓은 뒤 그 모습을 촬영하고 방송에 내보낸 것은 엄연한 회담 규칙 위반이다. 더구나 개망신까지 당했으니 북한이 가만있을 리 없다. 그때 이명박이 전두환에게 물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했는데 뭡니까?”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모아졌으므로 전두환이 헛기침을 했다.

“예, 그것이.”

머리를 든 전두환이 이명박을 보았다.

“저, 상징적인 인물 하나를 대통령께 추천하려고 합니다.”

“인사 문제라면 여기 총리도 계시니까 잘 되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국정원장이 요즘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자 이회창이 묻는다.

“상징적인 인물을 추천한다고 하셨습니까?”

“예, 요즘 70대 장군을 다시 복귀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됩니다.”

전두환이 열성적으로 말했다. 벗어진 이마에서 땀방울이 배어나왔다. 이명박이 말을 받는다.

“말씀해보시지요. 국정원장에 누구를 추천하려고 하십니까?”

“예, 장세동이를….”

그 순간 이명박과 이회창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이회창은 조순형과도 시선을 마주친다. 그때 전두환이 말을 잇는다.

“장세동은 1985년부터 3년간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에서 부장을 지냈지요. 그래서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두환이 이명박과 이회창을 차례로 보았다.

“국정원의 안보, 대공 기능 강화와 더불어 북한에 대한 경고로 장세동만한 카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징적이라고 말씀하셨군요.”

이명박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이회창이 묻는다.

“그런데 장세동 씨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예, 1936년생이니까 이 총리보다 한 살 아래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어이구, 내가 너무 오래 산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놀란 표정으로 이회창이 말하자 조순형은 입맛만 다셨다. 그때 이명박이 이회창에게 물었다.

“총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찬성입니다.”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조순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적절한 인사 같습니다, 대통령님.”

그러자 이명박이 전두환에게 말했다.

“원로께서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각서만 쓰시면 됩니다.”

# 입을 꾹 다문 문재인이 창밖을 응시한 채 생각에 잠겼다. 오후 5시가 돼가고 있다. KTX가 대전을 지난 지 30분쯤 되었으니 곧 서울에 도착할 것이다. 차 안은 조용하다. 옆쪽에 앉은 김경수는 눈을 감고 머리를 의자에 붙였지만 자는 것 같지는 않다. 긴장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 말기부터 슬슬 터져 나오던 측근 비리는 이명박 정권의 대형 이슈가 이어지는 동안 잠잠해진 것 같았지만, 아니다.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도 잊고 있는 사이 암세포처럼 서서히 잠식해왔다.

2008년 3월부터다. 세종캐피탈 홍기옥 사장과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을 검찰이 차근차근 수사해온 것이다. 2008년 7월 국세청이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시작했고, 11월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사건을 본격적으로 조사했다. 11월 19일에는 세종캐피탈 김형진 회장을 체포했다가 21일 돌려보냈으며, 22일에는 홍기옥 사장을 구속했다. 24일에는 레피로스 정화삼 사장 형제를 구속하고, 노건평 씨를 출국 금지했다. 그러다가 12월 4일 노건평 씨를 구속했으며 12월 12일에는 박연차를 구속했다. 점점 좁혀오고 있었다. 암세포가 심장 노무현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 김경수가 눈을 뜨더니 물었다.

“실장님,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저희 대통령님을 직접 찾아오고 그랬지 않습니까?”

문재인의 시선을 받은 김경수가 굳은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실장님을 만나자고 했을까요? 저는 좀 꺼림칙합니다.”

머리를 돌린 문재인은 대답 대신 입맛을 다셨다. 답답한 김경수는 가슴에 맺힌 말을 기어코 꺼내고 말았다. KTX를 타고 오면서 문재인도 계속해서 그 생각을 해온 것이다. 역시 문재인의 가슴도 꺼림칙했다. 비서실장 조순형이 전화를 해온 것은 어제 오후였다. 문재인을 찾은 조순형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통령께서 문 실장을 뵙자고 하십니다. 내일 오후 7시쯤 괜찮겠습니까?”

그러더니 무엇을 타고 올 것이냐고 묻고 서울역으로 차를 보내겠다고 했다. 경황도 없었지만 조순형의 정중함에 조금 기가 질려 문재인은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묻지 못했다. 그때 주위를 둘러본 김경수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실장님, 제가 대검에서 들은 소문입니다만, 중수부에서 차용증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문재인의 시선을 받은 김경수가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었다.

“대통령님이 쓰신 차용증 말입니다.”

“….”

“15억짜리라고 합니다.”

문재인은 다시 머리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12월 하순의 흐린 날씨다. 그래서 오후 5시인데도 늦은 저녁 같다.

# “어서 오시오.”

집무실로 들어선 문재인을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맞는다.

“안녕하셨습니까?”

문재인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집무실 안에는 이회창과 법무부 장관 김경한, 그리고 비서실장 조순형까지 셋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모두 악수를 청하는 바람에 문재인은 하나씩 손을 잡았고 가슴이 점점 가라앉았다. 김경한을 본 순간 예감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문재인은 그들과 함께 원탁에 둘러앉는다. 1년 만에 들어온 대통령 집무실이다. 책상은 그대로인데 소파와 원탁이 바뀌었다. 그러고 보니 벽에 동양화 대신 세계지도가 붙어 있다. 그때 이명박이 입을 열었다.

“이거,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방 안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문재인이 심호흡을 했다.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노 전임께 직접 말씀드리는 것보다 문 실장께 전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요.”

문재인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고 어깨를 폈다. 좋다, 통보해라. 각오했다.

“예, 대통령님. 듣겠습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사건 말입니다.”

“….”

“나도 이를 악물고 지난번에 내 측근을 다 쳐냈습니다. 이번에 ‘영포라인’인가 하는 조직도 총리, 실장의 도움을 받아서 다 쳐냈지요.”

하도 어금니를 세게 물고 있던 터라 문재인은 입을 잠깐 벌렸다 닫는다. 다시 이명박이 말을 이었다.

“나를 대통령 만들려고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도 많습니다. 자기 돈을 쏟아부은 사람도 많고요. 하지만 나는 싹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래서 나하고 원수가 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

“나도 돈 먹어보았어요. 내가 먹으니까 내 부하들도 당연히 따라 먹습디다. 그것을 그냥 놔두어야 기계에 기름칠한 것처럼 조직이 잘 돌아간다고 믿었지요.”

다시 문재인이 어금니를 물었다. 그래, 뻔한 결론을 내놓아라. 사설 그만 풀고, 우리를 칠 수밖에 없는 너의 처지를 다 이해한다. 그때 이명박이 길게 숨을 뱉은 뒤 말했다.

“이건 원칙에서 벗어납니다.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나는 고려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는 이 조사를 이 시점에서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총리께도 양해를 구했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시선을 든 문재인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지만 본인은 느끼지 못한다. 머릿속도 비어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내가 중수부에 지시했습니다.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월권을 한 셈이지만 노 대통령의 권위와 명예를 손상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 순간 문재인이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닫았다. 갑자기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만 껌벅였더니 이회창이 말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대로 진행할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계세요.”

이제는 이회창의 표정도 부드럽다.

레임덕은 없다
# 2008년이 저물어가는 12월 하순, 대한민국 국민은 또 한 번 충격을 받는다. 이명박이 저지른 일 때문이다. 물론 이 충격이 감동과 흥분으로 이어진 사람도 있고, 분노와 불만을 터뜨리는 계기로 삼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로 장세동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한다는 발표 때문이다. 2008년 장세동은 73세로, 10여 년 만에 복귀한 하나회 장성들과 함께 70대 전성시대에 합류했다.

“씨발, 우리가 시방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사는 겨 뭐여?”

인테리어업자 오종택이 투덜거렸다. 오늘은 오종택의 대녀(代女)이며 서상국의 출판사 사원이 된 이애주까지 셋이 삼겹살집에 모였다. 소주잔을 든 오종택이 말을 잇는다.

“이건 70대 전성시대 아녀? 사회가 개발되고 진보혀 나가야지, 옛날 군사독재 시대로 돌아간 것 같으다.”

“이 자식은 오다가 없는 모양이구먼.”

혀를 찬 서상국이 한 모금에 소주를 삼켰다. 삼겹살집 안은 소란하다. 연기가 자욱한 사이로 종업원이 분주하게 오간다. 오종택이 머리를 돌려 이애주를 보았다.

“그래, 내 대녀는 어떻게 생각허냐?”

“지난주에 나흘간 이승만 캠프에 다녀왔어요.”

이애주가 고분고분 말하더니 할끗 서상국을 보았다.

“사장님이 보내주셔서요.”

“그거야 돈 드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쓴웃음을 지은 서상국이 말했다. 이승만 캠프는 두 달 전부터 청와대 교육과학수석 주도로 만든 ‘이승만 공부’ 프로그램이다. 전국 274개 교육장에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에 대해 가감 없이 알려주는 것이다.

이승만은 1875년 태어나 1965년 하와이에서 91세로 운명했다. 그는 1912년 식민지가 된 조선을 떠나 해외에서 33년간 무국적자로 떠돌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71세 때 조국에 돌아왔다. 5년 8개월 만에 조지워싱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정치학 박사를 획득한 노력가다. 조선제국의 사형수가 되어 옥중에서 20대에 저술한 ‘독립정신’은 1900년 초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구상해놓은 것이었다. 두 전라도 중년의 시선을 받은 이애주가 방그레 웃었다.

“이승만 박사도 71세 때 귀국해 74세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더라고요, 뭐.”

“음, 그런가?”

오종택은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서상국이 지그시 이애주를 보았다.

“독재자 아녀? 남북 분단의 원흉이고.”

“아니에요.”

정색한 이애주가 머리를 내저었다.

“저도 사장님처럼 그렇게 배웠어요. 그런데….”

“그런데 뭐?”

“이승만 박사의 장단점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뿌리가 뭐야?”

오종택이 다시 묻자 이애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대한민국이요. 대한민국은 이승만 박사가 건국한 것이고, 이승만은 건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이요.”

“네미.”

했지만 오종택은 꼬투리를 잡을 지식이 부족했고 서상국은 웃기만 한다. 그래서 오종택이 분김에 전두환에게 화풀이를 했다.

“씨발, 장세동이까지 국정원장을 시킨다니 또 한 번 12·12 일으키면 되겠다.”

# 2008년 12월 30일, 연말 휴가가 시작된 날 오전 10시 정각이다. 모든 TV 방송에 속보가 떴다. 속보는 정규방송 도중에 밑부분 자막으로 나왔다.

“북한, 11시 정각에 대남 특별성명 발표.”

국민은 연속극을, 흘러간 명화를,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기분이 상했다. 들뜬 휴가 분위기가 깨진 것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홍대 근처 지하 슈퍼에서 정육점을 하는 윤재덕이 투덜거렸다. 윤재덕은 자신을 실향민 가족이라고 부른다. 함흥이 고향인 윤재덕의 부모가 6·25전쟁 때 월남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10년 전 돌아가셨지만 혼자 남은 아버지가 지금도 끈질기게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하고 있다. 이제 90세가 된 아버지가 집에서 TV를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윤재덕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6·25전쟁 때 할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터라 아버지는 북한을 용납하지 않는다.

“씨발놈들 무슨 성명이야?”

했지만 윤재덕은 예상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 판문점에서 있었던 남북군사회담 때문일 것이다. 한국 측은 의도적으로 강골(强骨) 장교를 내세워 북한 측을 제압했고 그것을 촬영해 방송했다. 북한 처지에서 이는 치욕이며 북한군 사기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복수다.

# 2008년 12월 30일 오전 11시 정각, TV 화면에 시장 아주머니처럼 생기고 괴상한 억양으로 유명해진 북한 아나운서가 나왔다. 아나운서가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남조선 당국은 이번 군사회담 때의 만행을 사과하지 않으면 그 몇만 배의 보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남조선의 대통령급 사죄 특사가 즉시 평양으로 출두할 것을 명령한다.”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12.06.18 842호 (p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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