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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은의 vitamin 詩

그때 아저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그때 아저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그때 아저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어깨 너머의 삶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

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



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굽은 등

투박한 손을 들키는 사람이다.

그는 그 거대한 손으로만 말을 할 줄 알았다.

언젠가 그가 소중하게 내민 손 안에는

산새 둥지에서 막 꺼내온 헐벗은 새끼 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새근대고 있었다.

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어두움의 음습한 숲에서

홀로 빛나던 새는 지금 어느 하늘을 꿰뚫고 있을까.

그의 손에 이끌리어 가보았던 하늘

구름 바람 태양 투명한 새.

그는 그런 것밖에 보여줄 줄 모르던 사람이다.

그가 내민 손 안의 시간.

그의 손에서 우리는 더 무엇을 읽으려는가.

그는 손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진짜 그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내민 손에 있지 않았다.

어깨 너머에 있었다.

닳아빠진 양복을 입고 선술집에 앉아

그는 술잔을 앞에 둔 채 어깨 너머에서 묵묵했다.

그 초라한 어깨 너머를 보고 싶은데

차마 볼 수 없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그는 어깨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다.

― 장이지 ‘어깨 너머의 삶’(‘연꽃의 입술’ 문학동네, 2011 중에서)

그때 아저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내게도 아저씨가 있었다. 슬프게도, 키다리는 아니었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돈이 많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았다. 그는 몸집이 작고 어깨가 구부정했다. 그래서 언제나 더 작아 보였다. 엎드려 있을 때면 “헐벗은 새끼 새”처럼 가냘파 보였다. 잔뜩 웅크린 채 길을 걸을 때면 어느 순간, 자진해서 아득해졌다.

그가 입는 옷은 하나같이 닳아 있었다. 닳아서 닮아 있었다. 옷은 서로 사이가 좋았다. 개중 돋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저씨는 매일같이 그 남루한 옷을 입었다. 그 옷을 입으면 그림자조차 낡아 보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남의집살이를 하는 사람은 다 저렇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저씨는 종일 열심히 일했다. 그야말로 “개미처럼 일했”다.

우리 집에는 큰방과 작은방이 있었는데, 아저씨는 작은방에 살았다. 아저씨가 왜 우리 집에서 사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아니, 아마 수도 없이 물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엄마는 어떻게든 내 입을 다물게 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저씨에 대해 묻지 않게 되었다. 어쩐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짜 그”에 대해서 아는 게 두려웠다. “그 초라한 어깨 너머”에 무시무시한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고 나는 혼자 옥상에 있었다. 분에 못 이겨 옥상에 흩뿌려진 자갈을 걷어차던 중이었다. 그때 아저씨가 올라왔다. 그의 손은 위쪽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의 손에 이끌리어” 나는 올려다보았다. 거기에, 하늘이 있었다. “구름 바람 태양 투명한 새”가 있었다. 울상이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날 오후 “그는 그런 것밖에 보여줄 줄 모르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것밖에 볼 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때 아저씨는 어디로 떠났을까
며칠 후, 아저씨는 홀연히 떠났다. “닳아빠진” 옷을 죄다 챙겨 갔다. 엄마 말에 따르면 쪽지 한 장 남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둘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아저씨가 어디로 떠났느냐는 질문 역시 입에 담지 않았다. 그날 밤, 새끼 새 한 마리가 둥지를 벗어나 힘겹게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다. 그 새는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투명해지다가 잠이 깨려는 순간, 하늘 속에 풍덩 빠졌다.

오은 1982년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와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졸업.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이 있음.



주간동아 2012.06.18 842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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