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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희숙의 미술관

다 입는 수영복 말고 섹시함을 보여줘

여자의 여름

다 입는 수영복 말고 섹시함을 보여줘

다 입는 수영복 말고 섹시함을 보여줘

‘수영복을 입은 소녀들’ 들로네, 1928년, 종이에 수채, 20×27, 개인 소장.

젊은 여자들이 6월부터 몸매 관리를 시작하는 이유는 한여름 해변에서 이성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다. 짧은 시간 안에 ‘몸짱’이 되려고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에 등록하기도 하지만, 운동을 싫어하는 여자들은 원 푸드 다이어트를 하거나 다이어트 음료를 마시고, 심지어 굶기도 한다. 이렇듯 가혹하게 살을 빼는 이유는 오로지 수영복 패션 때문이다.

해변에서 수영복에 신경 쓰는 소녀들을 그린 작품이 소니아 들로네(1885∼1979)의 ‘수영복을 입은 소녀들’이다. 물방울무늬와 사선무늬 수영복을 입은 소녀들, 그리고 조금 떨어져 기하학무늬의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소녀가 자태를 뽐낸다. 검은색 수영복을 입은 소녀는 날씬하다. 팔을 벌린 모습은 몸매에 자신 있다는 의미다. 소녀의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는 것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 때문이다.

사선무늬 수영복을 입은 소녀가 고개를 돌리고 선 것은 남들의 시선을 끌고 싶은 심리를 드러낸다. 물방울무늬 수영복을 입은 소녀의 얼굴이 정면을 향한 것은 수줍음이 많다는 의미다. 소녀들의 붉은 피부는 햇볕에 그을어 그렇다.

반원 형태의 무지개는 소녀들의 꿈과 환상을 상징하며 그림 아래쪽 노란색은 모래사장을 나타낸다. 그 위의 푸른색은 바다를 상징한다.

들로네는 폴 고갱과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원색에 매료됐다. 그는 색이 주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패션, 책, 의상 등을 디자인했다. 이 작품에서 들로네는 수영복을 입은 소녀를 통해 색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해변이나 수영장에서 누구나 다 입는 수영복 패션만으로는 이성의 시선을 끌어당기기 어렵다. 이성의 시선을 확실하게 사로잡으려면 섹시해 보여야 한다. 여름날 여자의 구릿빛 피부는 무척 섹시해 보인다. 구릿빛 피부는 청순한 여자를 섹시한 여자로 탈바꿈한다. 계절에 따라 섹시함의 기준도 달라진다. 눈처럼 깨끗한 피부는 겨울용이고 구릿빛 피부는 여름용이다. 유행을 거부하는 순간 이성으로부터 외면당한다.

다 입는 수영복 말고 섹시함을 보여줘

‘샤가 지나간 날’ 피슬, 1982년, 캔버스에 유채, 91×121, 개인 소장.(위) ‘위대한 미국 누드 No 57’ 웨셀만, 1964년, 합성보드에 합성폴리머와 종이 콜라주, 121×165, 휘트니 미술관 소장.(아래)

이성에게 섹시하게 보이려고 선탠을 하는 여자를 그린 작품이 에릭 피슬(1948∼)의 ‘샤가 지나간 날’이다. 해변에서 벌거벗은 여자가 강렬한 햇볕을 고스란히 쬐며 누워 있다. 손에 오일을 든 여자는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고 있다. 여자들 뒤에 있는 남자는 반바지를 입은 채 조깅 중이다.

여자들이 벌거벗고 있는 해변은 누드비치이며, 구릿빛 피부는 오래도록 선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누드비치에 어울리지 않는 반바지 차림의 남자는 1979년 미국으로 망명한 팔레비 전 이란 국왕이다. 그의 흰색 피부는 암살 위협 탓에 누드비치에서 평화롭게 선탠을 할 수 없는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일을 든 여자가 그를 보는 모습은 팔레비 왕의 출현으로 놀랐다는 의미다. 하지만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누운 여자는 팔레비의 출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팔레비 왕 뒤쪽으로 접혀 있는 파라솔은 해변에서 선탠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누드비치를 통해 미국의 풍요로운 일상을 표현하고 있다. 누드비치는 자연친화적 라이프스타일이 각광받으면서 유럽에서 시작됐으나, 오늘날에는 옷을 자유롭게 벗고 싶은 욕망에서 누드비치를 이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누드비치는 주로 고급 휴양지에 있다. 부자는 공식적인 누드비치를 이용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일반 해변에 옷을 벗고 누우면 풍기문란 죄로 경찰서에서 남은 휴가를 보내야 할 것이다.

평범한 여자가 섹시해 보이고 싶다면 수영장이나 해변에서 수영복 상의의 끈을 풀고 눕는 수밖에 없다. 단점은 수영복 자국이 몸에 남는다는 것.

선탠을 즐기는 평범한 여자를 그린 작품이 톰 웨셀만(1931∼2004)의 ‘위대한 미국 누드 No 57’이다. 옷을 벗은 금발 여성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붉은 입술과 금발은 전형적인 미국 미인의 모습이며, 선명한 비키니 자국은 여자가 옷을 벗고 있음을 강조한다.

호피무늬 의자는 남자를 암시하는 동시에 여자의 곧추선 유두가 가진 의미를 설명한다. 옆에 놓인 화병의 꽃과 오렌지는 결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남녀 간 성적 결합을 뜻한다. 유두와 벌어진 입술은 성적으로 흥분해 있음을 암시한다. 금발 머리에 얼굴이 없는 것은 평범한 젊은 여자가 선탠을 즐기고 있음을 나타내며 푸른색은 바다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위대한 미국 누드’ 연작의 한 작품이다. 웨셀만은 이 연작으로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상업광고의 전략을 차용해 여자의 개성을 제거하고 성적 이미지만 강조했다. 그는 벌어진 입술과 유두 등 에로틱한 요소를 노골적으로 집어넣은 반면, 형태를 단순화하고 강렬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여자가 가진 관능미는 나타내지 않았다.

해변에서 이성을 사로잡는 것은 좋지만 거기엔 책임이 따른다. 사전 피임약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성생활과 관련해 의사에게 상담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 박희숙은 서양화가다. 동덕여대 미술학부,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을 9회 열었다. 저서로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클림트’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12.06.18 842호 (p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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