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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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님전’엔 구수한 사투리가 제격이지요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6-11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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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님전’엔 구수한 사투리가 제격이지요
    “사람들도 원래는 점심을 안 묵었디야. 근디 요샌 묵더라고…. 사실 말이제 사람들은 너무 묵어. 배창시를 좀 비워놔야 허는디…. 개들은 예로부터 먹고 잡은 것 있어도 배창시가 다 찰 때까정은 안 묵었어. 그래서 위장병이 잡은. 근디 사람들은 배가 터질 때까정 묵는디야.”

    박상률의 청소년 소설 ‘개님전’(시공 청소년 문학 50)에서 어미 ‘진도개’ 황구가 딸 노랑이와 누렁이에게 단단히 이르는 대목이다. 작가는 순종 진돗개가 아니라 진도에서 나고 자라 진도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진도개’ 가족의 삶을 그린다. 집주인 황씨 할아버지는 곳간에 있는 쥐를 몽땅 잡고, 손자의 똥을 잘 핥아 먹는 황구네 가족이 고마워 시장에서 국밥을 사주기도 한다. 담뱃불 탓에 화재가 나 황씨 할아버지가 위험에 처하자 황구네 세 식구가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꺼 할아버지를 살려내기도 한다.

    ‘개님전’은 황구네 가족이 황씨 할아버지 가족과 생사를 뛰어넘는 애틋한 정을 쌓아가고 온갖 고초를 이겨내는 가운데 황구의 두 딸이 엄마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성장소설이다. 두 딸의 아버지 흑구는 자식이 태어난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죽어간다. 황씨 할아버지는 기력 회복을 위해 늙어서 출산도 할 수 없는 황구를 잡아먹으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황구네 가족을 보호해준다. 황구는 자식들과 함께 노루를 잡아 황씨 할아버지에게 바치지만 황씨 할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뜬다.

    황씨 할아버지가 죽은 이후 황구네 가족은 운명이 바뀐다. 황씨 할아버지 가족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황구네 가족에게 상복을 입혀 마지막 도리를 다하는 기회를 주지만 장례가 끝난 후 노랑이는 이웃 동네로, 누렁이는 서울로 팔아버린다. 소설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에서는 새끼를 밴 누렁이가 제 어미 품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다.

    이 소설은 사람보다 나은 ‘개’ 이야기지만 소설 속 무대는 진도다. 남자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가 많은 섬만의 특성과 여성이 장례의식에 참여하는 일, 장례의식이 ‘축제’에 가깝다는 사실 등은 진도의 풍속을 빼닮았다. 무엇보다 황구의 삶은 진도 여인의 삶과 무척 닮았다.



    진도의 거친 환경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그리면서 표준말을 썼다면 소설이 어떤 느낌을 전달했을까. 지역 언어(사투리)와 계층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진도 출신의 작가 박상률이 전라도 사투리를 자유롭게 활용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평상시 자유롭게 사용하는 언어가 삶의 농밀함을 제대로 표현할 테니 말이다. 표준어로만 된 청소년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표준어만 구사하는 ‘개그콘서트’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 시험성적과 관련된 문학만 추구해서인지 지금 시장이 크게 확장된 청소년 소설에서 사투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청소년 소설 작가 중 사투리를 활용하는 작가는 박상률이 거의 유일하다.

    ‘개님전’엔 구수한 사투리가 제격이지요
    오랫동안 불모지에 가까웠던 청소년 문학 출판에 첫 깃발을 꽂은 것은 사계절의 ‘1318문고’ 시리즈다. 그 시리즈 기획에 관여한 박상률의 성장소설 ‘봄바람’(사계절)은 ‘1318문고’에 포함된 최초의 창작소설로, 우리 청소년 문학의 한 전범이다. 13세 주인공의 첫사랑과 가출, 그리고 사흘 만의 귀가를 다룬 ‘봄바람’에서 사투리를 조심스럽게 사용하던 박상률은 지난해 출간한 ‘방자왈왈’(사계절)과 ‘개님전’에서는 사투리를 문학 언어로 승화시켰다. 박상률의 이런 시도는 소재주의에 함몰돼 답보상태에 빠진 우리 청소년 소설의 한 돌파구라 할 만하다.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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