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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섬김과 봉사만이 새 희망 덩치 키우기 경쟁은 공멸의 길”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사무총장 김종생 목사

“섬김과 봉사만이 새 희망 덩치 키우기 경쟁은 공멸의 길”

“섬김과 봉사만이 새 희망 덩치 키우기 경쟁은 공멸의 길”
‘재해와 아픔이 있는 곳에 한국 교회가 함께합니다.’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7층에 있는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이하 봉사단)의 구호다. 2007년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를 계기로 발족한 이 단체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 봉사활동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용산참사 중재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노숙자 돕기, 밀가루 북송(北送) 등이 대표적 활동으로 꼽힌다. 미얀마 수재, 인도네시아, 아이티,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등 국제적 재난 구호에도 적극 나섰다. 봉사단에 대한 교계 안팎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물량주의와 부동산 투기, 담임목사직 세습, 금권 교단선거, 갖가지 성추문, 성직자 간 폭력사태 등 한국 개신교의 어두운 면을 씻어줄 청량제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3월 20일 봉사단 사무총장 김종생(55) 목사를 만나 그간의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났을 당시 김 목사는 예장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측 사회봉사부 총무를 맡고 있었다. 사고가 나자 개신교는 태안에 11개 캠프를 차리고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교단별로 움직이다 보니 일이 중복되고 경쟁구도까지 생겼다.

“그해 봄에 발생한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 사건으로 교계 지도자 사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개신교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12월 14~1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교계 지도자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태안 사건을 계기로 교계가 하나 되자는 논의가 이뤄졌고 그 직후 한국교회봉사단이 탄생했다.”

한국 개신교계의 청량제 구실



12월 17일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해변에서 교계 지도자 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원봉사자 발대식을 열었다. 이듬해 1월 11일 연세대에서 한국교회봉사단(2010년 한국교회희망봉사단으로 개칭)이 출범했다. 김 목사는 봉사단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처장을 맡았다.

2007년 12월부터 2008년 3월까지 2000여 교회에서 약 17만 명이 봉사단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하루 평균 3000명이 다녀갔다. 비용 40억 원은 20여 개 교회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그중 15억 원을 명성교회와 순복음교회, 사랑의교회 3개 교회가 각 5억 원씩 내서 마련했다. 이 세 교회는 지금도 봉사단의 최대 후원자다. 각 교회가 연 1억 원 이상의 회비를 내고 있다. 현재 봉사단에 기금을 내는 회원 교회는 25개 교단 270여 개다.

김 목사는 40일 동안 태안 사고 현장에 머물며 봉사활동을 이끌었다. 자원봉사자는 모두 120만여 명이었는데, 그중 70만 명 정도가 개신교 소속이었다. 이를 두고 “3·1운동 이후 한국 개신교의 최대 기적”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방제작업 이후의 목표는 경제 살리기였다. 봉사단은 육쪽마늘을 비롯한 태안의 특산물 구매 운동을 벌였다. 모든 방제작업이 끝난 5월 말엔 만리포해변에서 태안주민을 위로하는 문화행사를 열었다. 초등학생을 위한 방과후 공부방도 설립했다. 봉사활동의 거점 구실을 했던 의항교회에는 기념관이 세워졌다. 봉사단은 이 무렵 미얀마 수재와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지진 구호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2008년 9월엔 북한에 두 차례에 걸쳐 밀가루 400t을 보냈다.

2008년 10월 발생한 서울 논현동 고시촌 방화살인 사건은 봉사단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봉사단은 이 사건으로 사망한 조선족 3명의 유가족에게 위로금으로 각 2000만 원씩을 전달하고 내국인 2명에게는 500만 원씩을 건네는 등 모두 1억3000만 원의 성금을 내놓았다. 또한 화상을 입은 조선족 방모 씨의 수술비를 대주는 한편, 유가족에게는 보상 문제에 대한 법률 지원과 장례 지원도 했다.

2009년 1월 용산참사가 터졌다. 책임 소재와 보상 문제를 두고 서울시와 유가족 측은 날카롭게 대립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서울시는 종교단체에 중재를 부탁했다. 봉사단은 개신교 측 대표로 나섰다. 결국 연말에 합의가 이뤄졌다. 사망자 한 사람당 4억 원의 보상비를 주기로 한 것. 현장 식당(함바식당) 운영권도 주기로 했다.

“양극화 사회에서 중재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유가족 측으로부터 오해도 받았다. 장례가 늦어지면서 사망자가 안치된 대학병원 영안실 사용료가 4억 원까지 올라갔다. 우리가 그 비용을 대겠다고 하자 ‘개신교가 정부 앞잡이로 나서서 우리를 회유하려 하느냐’고 반발했다. 사망한 경찰관의 유가족과 화해시키는 일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양측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했는데 그때까지도 앙금이 남아 있었다.”

봉사단은 현재 용산참사 유가족 자녀들의 대학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엔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사태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유가족에게도 손길을 내밀었다. 성탄절에 유가족 19명에게 100만 원씩 건네고 농성장을 찾아 방한복 30벌을 전달했다.

“섬김과 봉사만이 새 희망 덩치 키우기 경쟁은 공멸의 길”

서울역에서의 노숙자 성탄 잔치(왼쪽). 아이티 지진 구호 활동.

이젠 다문화가정 적극 지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돕기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8월 ‘한국교회 8·15대성회’라는 사회복지대회를 주관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부각했다. 봉사단 초청으로 행사에 참석한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은 단상에 올라 일본 정부를 대신해 사과했다. 현재 공식 위안부 피해자는 63명. 봉사단은 서울 충정로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 쉼터 운영비를 지원하고 성산동과 염리동 등지에 새 쉼터를 마련했다. 지난해엔 단체여행을 보내주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일본에 대지진이 발생하자 봉사단은 모금활동에 나섰다. 성금이 답지하는 가운데 일본 교과서 파동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학교 사회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반일감정으로 모금액이 줄고 심지어 성금 반환 움직임까지 일었다. 그 와중에 봉사단은 지진 피해지역인 미야기현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송신도 씨가 극적으로 살아남은 사실을 알고 성금으로 송씨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그의 고향은 대전 인근이다. 봉사단은 그해 광복절 송씨를 한국에 초청해 대전시장이 환영하고 위로하는 행사도 마련했다.

김 목사는 봉사를 통한 교회 연대를 강조했다.

“봉사는 한국 교회를 하나로 만드는 접착제 구실을 한다. 봉사를 통한 연합, 여기에 한국 교회의 새로운 희망이 있다. 선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교회 성장에 경쟁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공멸하는 길이다. 반면 사회적 약자를 돕는 길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고,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하나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가 남긴 교훈이다.”

봉사단은 앞으로 다문화가정 지원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교회가 해외선교는 많이 하면서 정작 국내에 있는 외국인 이주자에 대해선 소홀했다는 인식에서다. 봉사단의 신조는 ‘하나 되어 섬기고 섬기면서 하나 되자’다.



주간동아 2012.03.26 830호 (p36~37)

  •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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