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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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파파라치 데이트’ 해봤니

데이트 모습 몰래 촬영 부탁 20~30대 커플 늘어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2-03-26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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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도 ‘파파라치 데이트’ 해봤니
    지난겨울 ‘파파라치 데이트’ 중에 뜻하지 않게 발목을 다친 이혜진(가명·25) 씨는 촬영을 포기했다. 하지만 파파라치로부터 몇 장의 사진을 받은 그는 “잊지 못할 감동적인 장면을 포착해줘 고맙다”며 흔쾌히 돈을 지불했다.

    남자친구가 의뢰한 까닭에 서울 삼청동 일대 카페촌으로 파파라치 데이트를 나간 이씨는 평소와 다른 설렘을 안고 옷차림에도 유난히 신경 썼다. 마침 눈까지 내려 한껏 로맨틱한 분위기에 빠졌던 이씨는 언덕길을 내려오다 그만 눈길에 미끄러져 발목을 삐었다. 놀란 남자친구는 이씨를 업고 황급히 병원으로 내달렸다. 이씨에게 감동을 안겨준 사진은 바로 그 순간을 담은 것. 돌발 상황에 놀란 남자친구의 얼굴 표정과 다급했던 순간의 분위기를 생생히 담은 사진은 이씨와 남자친구에게 ‘다시없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파파라치 데이트는 최근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커플 사이에 인기를 끄는 신종 데이트 문화다. ‘나만의 특별함’과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선호하는 이들이 파파라치에게 의뢰해 데이트 모습을 자신들 몰래 촬영하게 함으로써 기억에 남을 만한 데이트, 정형화되지 않은 순간을 포착한 장면들을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남겨 추억하려는 것.

    우리만의 특별한 순간 포착

    파파라치 데이트를 촬영하는 이는 일반 카메라 장비를 쓰는 부류와 자동차열쇠 등의 모양으로 만든 특수 카메라를 사용하는 부류로 나뉜다. 전자에게 의뢰하는 고객은 8대 2 비율로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반면, 후자의 고객은 남성이 많다. 전자의 경우 여성 쪽에서 남자친구 몰래 의뢰하는 이유는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따라다니며 촬영해야 하므로 아무리 파파라치라 해도 간혹 들키기도 한다.



    반면 특수 카메라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촬영을 마칠 때까지 데이트 상대는 자신이 사진 찍히는 줄 모른다. 남성이 이런 형태를 많이 의뢰하는 이유는 프러포즈 날이나 여자친구 생일, ‘만남 100일’ 등 특별한 날에 깜짝 이벤트를 벌일 목적으로 촬영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평균 5건 정도 파파라치 데이트 촬영을 의뢰받는 이영진(39) 씨는 얼마 전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자신이 촬영해준 커플이 이벤트 현장에 그를 초대한 것. “데이트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편집할 때 마지막 부분에 남자친구가 직접 쓴 편지를 자막으로 올렸다. 그 내용을 본 여자가 감동받아 울었다. 나는 편집할 때 이미 본 장면인데도 새삼 가슴이 뭉클했다.”

    이씨에게 파파라치 데이트를 의뢰한 사람은 20대 중반의 오정호(가명) 씨. 오씨는 입대를 앞두고 여자친구에게 갑작스레 이별을 통고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 기다리지 말고 좋은 남자를 만나라는 뜻에서였다. 제대 후 전 여자친구가 ‘솔로’라는 걸 알게 된 오씨는 전화를 걸어 “내일 입대한다. 마지막으로 꼭 너를 만나고 싶다”며 어렵게 여자친구를 불러냈다. 그 전에 오씨는 미리 파파라치 데이트를 의뢰해뒀다. 그가 쓴 편지는 그간의 사정을 고백하고 “널 위해 거짓말을 했다. 이미 제대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영상 상영이 끝나자 오씨는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이날 동영상을 상영하고, 오씨가 여자친구에게 프러포즈한 곳은 스크린을 설치한 작은 클럽. 파파라치 데이트 동영상으로 이벤트를 하려는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이 바로 서울 강남이나 홍대 주변의 작은 클럽이다. 최근 돈을 받고 영업 시작 전 두 시간 정도 공간을 빌려주는 클럽도 늘고 있다.

    파파라치 데이트족은 ‘경복궁-인사동-청계천’ 식으로 걸어 이동할 수 있는 코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 즐겨 찾는 장소로는 북촌 한옥마을, 강남역 주변, 반포동 서래마을, 신사동 가로수길, 삼청동 거리 등이 있다. 더 독특한 장소를 원하는 사람 사이에 인기 지역으로 꼽히는 곳은 경기 파주 헤이리, 광릉수목원 등이다.

    파파라치 데이트는 의뢰자가 데이트 코스, 날짜와 시간 등을 정해 미리 파파라치에게 알려주면 보통 하루 정도 이들을 따라다니며 데이트 모습을 촬영한다. 촬영이 끝나면 의뢰자의 주문대로 사진을 슬라이드 형식으로 편집해주거나 자막과 배경음악을 넣어 동영상으로 만들어준다. 사진 20장에 10만 원이 기본 비용이다. 동영상의 경우 30~50분 길이며 촬영에서 CD 제작까지 드는 비용은 100만~130만 원. 촬영비, 편집비, 교통비, 식비 등 작업 전반에 필요한 부대비용까지 모두 포함한 가격이다.

    너도 ‘파파라치 데이트’ 해봤니

    파파라치 데이트 촬영에 사용하는 특수 카메라 장비들.

    “우리가 이런 적도 있었구나”

    ‘연인 커플 촬영’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는 천대필(37) 씨는 사진 찍기가 취미인 공무원이다. 그가 아르바이트 삼아 파파라치 데이트 촬영을 시작한 건 지난해 여름부터다. 천씨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까 처음엔 주변 사람이 하나 둘 의뢰해왔다. 그런데 사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아르바이트에도 나섰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파파라치 데이트를 촬영한 커플은 40쌍이다. 주로 주말에 작업하는데 1시간 30분 동안 2~3곳을 따라다니며 촬영한다. 편집 작업은 별도로 하지 않고 100~200장의 사진을 파일로 넘겨주는데, 한 번에 받는 비용은 5만 원이며 교통비는 따로 받는다.

    천씨는 “커플링을 낀 채 손잡고 걷는 두 사람의 손을 클로즈업해 찍거나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다리 부분만 촬영해주기도 하는데 의외로 그런 사진을 좋아한다. 평소 자신들이 사진 찍을 때는 잘 안 찍는 장면이니까. 나중에 사진을 받아보고 ‘내 여자친구 다리가 이렇게 예쁘고 매력적인 줄 몰랐다’며 감탄하는 남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친구의 운동화 끈이 풀어지자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묶어주는 걸 보고 그 모습을 바로 촬영한 적이 있다. 그런 모습은 흔히 접할 수 없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 한다. 의외로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잘 나오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여주면 ‘우리가 이런 적도 있었구나’ 하고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연인들이 파파라치 데이트를 하는 이유는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데이트 순간을 포착해 추억으로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생각지도 못한 얼굴 표정이나 행동을 포착하고, 지나고 나면 까마득히 잊힐 대화 내용이 녹음되기 때문에 특별한 순간, 특별한 모습을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 파파라치 데이트를 애용한다.

    파파라치들에 따르면 가끔 미심쩍은 촬영을 의뢰하는 사람도 있다. “펜션으로 여행을 가 음식을 만드는 등 실내 데이트를 할 건데 그런 모습을 촬영해줄 수 있느냐” “오피스텔로 여자친구를 불렀는데 미리 집 안에 숨어 있다 촬영해달라” “내 여자친구인데 그의 일상을 몰래 찍어줄 수 없느냐”는 등의 문의를 해오는 것. 이영진 씨는 “만나서 상담하다 보면 의뢰자가 스토커인지 변태인지 감이 온다. 여자친구도 아닌데 스토킹하려고 혹은 여자친구를 감시하려고 촬영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건 당연히 거절한다”고 말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사진과 이색 추억을 원하는 젊은 커플이 늘면서 최근 인터넷은 ‘파파라치 연인’ ‘파파라치 커플 촬영’ 같은 제목을 단 카페와 블로그로 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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