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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호 정치풍자소설

레임덕은 없다

3회 박근혜

레임덕은 없다

레임덕은 없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친박연대는 지역구 6명과 비례대표 8명을 합해 14명의 의석을 확보했다. 여당의 빛깔을 가진 의정사상 초유의 이색 파벌이 출현한 것이다. 여당 공천을 받지 못한 박근혜 계열의 당선자들이다. 이것만으로도 박근혜가 이명박 정권에 대해 얼마나 절치부심했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공천 칼자루를 쥐었던 이명박 계열의 이방호가 박근혜 지지자들의 낙선운동 대상이 됐겠는가. 결국 이방호는 낙선했고, 그 대신 등장한 두루마기 차림의 강기갑을 볼 때마다 국민은 ‘친이’ ‘친박’의 전쟁을 떠올리게 됐다. 따라서 여당 당선자가 153석이나 됐지만 친이, 친박으로 나뉘어 원수처럼 지내는 데다 친이는 또 이상득, 이재오 등의 세력으로 나뉘었다. 이것은 모두 이명박 책임이다. 이명박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것이나 같다. 정치가 실종돼 광우병 사태 등 국가 대란에 여당이 제구실을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득이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나흘째 되는 날 오전, 박근혜는 보좌관이 건네준 전화기를 받는다.

“저기, 정무수석인데요.”

보좌관의 얼굴은 굳어졌다. 이것은 청와대와의 첫 교신인 것이다. 지금까지 청와대가 아니라 백와대에서 온 전화도 없다. 잠깐 보좌관 얼굴에 시선을 주었던 박근혜가 천천히 손을 뻗어 전화기를 받는다. 박근혜는 20대 초반부터 퍼스트레이디를 대신한 경험이 있다. 조그만 동작 하나에서도 품위가 배어난다. 전화기를 귀에 붙인 박근혜가 응답하자 박재완이 정중히 말했다.

“의원님, 안녕하셨습니까? 저, 정무수석 박재완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갑자기 전화를 올려서 결례를 했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다름 아니오라 대통령께서 의원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이번 주 중에 시간이 있으신지요?”

그 순간 박근혜는 심호흡을 했다. 옆쪽에 서 있던 보좌관 이신길이 숨을 죽이고 있다. 아마 저쪽 이야기까지 다 들었을 것이다. 며칠 전 이상득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물러난 일은 박근혜 계열, 이른바 친박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제 이명박이가 제 형까지 쳐내고 혼자 다 해먹을 작정인갑다.”

하는 것이 친박계는 물론, 정치권과 국민의 생각이었으니까. 이윽고 박근혜가 말했다.

“좀 생각해 보고 말씀드리지요.”

“예, 의원님.”

박재완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배어났다.

“대통령께서는 의원님을 찾아뵐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알았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네, 그럼, 안녕히.”

해놓고 전화기를 이신길에게 건네준 박근혜가 말했다.

“회의를 해야겠어요.”

# “대운하를 파려면 우리 협조를 받아야 할 테니까요.”

하고 맨 먼저 말을 꺼낸 인물은 김무성이다. 김무성이 굵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 양반 재빠르게 움직이는구먼요. 예전하고 전혀 다른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시중에는 그 양반이 돌았다는 소문도 돕니다.”

회의석상이어서 좋게 표현한 것이지 인터넷에서는 ‘미쳤다’ ‘약 먹었다’ 등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긍정적이며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그때 홍사덕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노무현을 찾아가 협조를 받아내고, 또 아버지 같았던 형을 은퇴시키더니 이젠 우리한테로 창끝을 겨누는 느낌이 드는구먼요.”

홍사덕의 목소리는 낭랑해서 여운이 있다. 웃음 띤 얼굴로 홍사덕이 말을 잇는다.

“언론 플레이도 발맞춰 하고 있습니다. 여기 오면서 들었는데 벌써 매스컴에다 면담 제의 정보를 제공했더군요. 여러 군데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근혜의 시선을 잡은 홍사덕이 말을 잇는다.

“거절한다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습니다. 그럴 이유도 없으니 준비하고 만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 속셈인지.”

듣기만 하던 유승민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김무성이 결론을 냈다.

“만나시지요. 우리가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의도의 일식당 방 안에는 넷이 둘러앉았다. 박근혜와 김무성, 홍사덕, 유승민이다. 청와대 전화를 받고나서 급하게 불러모았기 때문이다. 홍사덕은 집에 있다가 넥타이도 안 매고 왔다. 이윽고 박근혜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 공천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과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조금 들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박근혜가 말을 잇는다.

“이 만남이 물론 요즘 이 대통령의 행동을 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앉지만, 선전용으로 이용되는 것이라면 사태는 더 악화될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유승민이 먼저 말을 받는다.

“그럼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하고 김무성이 낙천적으로 되물었고 홍사덕이 머리를 끄덕이며 박근혜를 봤다.

“그럼 미리 정무수석한테 그렇게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는 게 낫겠네요.”

대답한 박근혜가 김무성을 봤다.

“김 의원이 해주시지요.”

레임덕은 없다
# 그 시간에 이명박은 청와대 식당에서 이재오와 저녁을 먹는 중이다. 이재오는 지난번 총선에서 낙선한 후 청와대는 처음 들어온다. 식탁에는 대통령실장 유우익과 정무수석 박재완이 배석했다.

“박 비서관이 잘되었구먼요.”

수저를 내려놓은 이재오가 말했다.

“이 의원님 지역구까지 물려받게 되다니, 그 사람, 관운이 저보다 세네요.”

“아이고, 그러지 마세요.”

쓴웃음을 지은 이명박이 물그릇을 들면서 말을 잇는다.

“그 사람이 그 말 들으면 국회의원 안 하려고 할 겁니다.”

“잘하셨습니다.”

정색한 이재오가 지그시 이명박을 봤다. 이재오가 누구인가. 이명박의 정치적 동지이자 후배로 대권 도전에서부터 당선할 때까지 선봉장 구실을 했다. 대선의 일등공신이며 친이계의 좌장. 그러나 친박계로부터는 경계 대상이 됐다. 이재오가 말을 잇는다.

“박근혜 씨는 거부할 명분이 없습니다. 만날 겁니다. 하지만 해명이나 사과를 요구하겠지요.”

식사를 하면서 박근혜와의 회동 제의를 이야기해준 것이다. 이명박의 시선을 받은 이재오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광우병 사태부터 이 의원님 정계 은퇴, 그리고 기습적인 박근혜 의원과의 회동.”

말을 그친 이재오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명박을 봤다.

“지금 반정부세력은 물론, 민주당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러자 이명박이 쓴웃음을 짓는다.

“글쎄, 시중에는 내가 미국산 쇠고기 먹고 미쳤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나도 모르겠습니다.”

식탁에 앉은 셋을 차례로 둘러본 이명박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자신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시늉 같다.

# “안 나가요?”

하고 박금옥이 묻는 순간 안병한은 혈압이 확 솟구쳤다. 오후 6시 반, 예전 같으면 지금 출정 준비를 하고 집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전장(戰場)은 시청 앞. 어린 전경들한테는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함성을 지르며 수만 인파를 밀어붙일 때의 쾌감은 말도 못 한다. 세상이 확 뒤집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쥐박이가 노통을 만난 직후부터 소금 맞은 지렁이가 돼버렸다. 그리고 보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마누라한테서 수모를 당하는 신세가 됐다. 마누라는 뻔히 알면서도 저렇게 한마디씩 내질러 오장을 뒤집어놓는 것이다. 그때 개수대에 선 박금옥이 다시 구시렁거렸다.

“쇠고기 먹으면 금방 다 죽을 것처럼 난리치더니, 지금은 왜들 이렇게 멀쩡한지 모르겄네? 언제 죽는 거여?”

# 오종택과 서상국은 전라도 전주 출신으로 고등학교 동창이다. 각각 50대 중반으로, 상경한 지 30년 가깝게 됐는데 지난 대선 때 정동영을 찍었다. 둘 다 먹고살기 바쁜 터라 정치에는 관심 없었지만 그냥 동향인 정동영을 찍은 것이다. 같은 고향이라 연줄을 따지면 이리저리 얽혀 있기도 하다.

“너 들었냐? 이명박이가 박근혜 만난다는 거.”

홍대 앞 삼겹살집에서 오종택이 불쑥 물었을 때는 소주를 두 병쯤 마신 후였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서상국이 머리를 끄덕였다.

“어, 명박이가 대운하를 팔라면 근혜 협조부터 받아야지.”

“협조 허까? 그동안 그렇게 당혔는디.”

오종택은 인테리어 업자로 밥은 먹는다. 그래서 오늘도 오종택이 술을 샀는데 출판사 사장인 서상국은 셋밖에 없는 직원 월급도 못 만들어 빌빌거린다. 그렇지만 정치인 자서전도 냈고 기업 경영에 대한 책도 낸 터라 대화 폭이 넓다. 공부는 오종택이 잘했는데도 사회생활의 영향을 받으면 이렇게 된다. 서상국이 말을 이었다.

“명박이가 빤한 꼼수를 쓰는 겨. 허지만 근혜는 안 만날 수가 없어.”

“허긴 그렇지.”

“틀림없이 명박이가 무신 제의를 헐거셔. 당대표를 맡어 달라든지 전권을 준다든지 허고 말여.”

“신문에도 그렇게 나왔더만.”

“그럼 근혜는 점잖게 사양허겄지. 그러다가 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받어들이고.”

“암먼, 지가 안 받고 배겨?”

“그러고 대운하가 시작되는거셔.”

“민주당은 가만 있으까?”

“뎀비겄지만 노통이 명박이한티 붙었는디 기운이 나겄냐?”

“긍게 말여.”

술잔을 든 오종택이 쓴웃음을 짓는다.

“좆 돼 부렀지. 노통 땜시.”

# 역사적인 회담이라고 부를 형편은 못되지만 언론은 그렇게 되는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청와대도 놔두는 분위기여서 동아일보 취재기자 말대로 개나 소나 청와대로 다 모였다. 어디 기자인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대는 놈도 있었다. 박근혜는 김무성, 홍사덕 등 중진은 물론이고, 초선까지 10여 명의 의원을 대동하고 왔다. 친이계에서는 김형오와 박진, 공성진 등 대여섯이 그들을 맞았는데 마치 대선 직후의 모임 같았다. 모두 상기됐고 조금 얼떨떨했으며 어색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연회실의 대형 원탁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중심으로 친이, 친박, 그리고 청와대 고위층까지 모여 덕담을 나눈 지 10여 분이 지났을 때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청했다.

“자, 가실까요?”

옆방으로 가자는 말이다. 순간 연회실이 조용해졌을 때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독대라는 걸 하려고 합니다. 박 의원하고.”

그러자 몇 명이 웃었고 분위기에 흥이 난 초선 한 명이 박수를 치다가 말았다.

레임덕은 없다
# 자, 둘이 마주보고 앉았다. 방에는 둘뿐이다. 의자도 낮고 푹신한 가죽 의자 둘뿐이었고, 둥근 탁자 위에는 생수병과 잔이 놓여 있다. 그리고 조용하다. 소음이 딱 끊기면서 숨소리까지 들렸다. 그때 이명박이 말했다.

“지난 공천 문제, 또 그전에 일어났던 여러 사건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겠군요.”

그러면서 이명박이 머리를 숙였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결과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든 이명박이 박근혜를 봤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명박의 표정을 본 박근혜의 입술이 떼어졌다.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그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래야지요. 그런데.”

어깨를 들었다가 내리면서 긴 숨을 뱉은 이명박이 박근혜를 봤다.

“저하고 박 의원 둘이서 국정을 이끌어가야만 합니다. 앞으로 국회에서 할 일이 산적해 있으니만치.”

박근혜는 시선만 줬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장사를 시작하는 것으로 느낀 것 같다. 이명박의 말이 이어졌다.

“박 의원이 차기를 보장받으시려면 그래야만 하구요.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는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대통령님, 잠깐만요.”

쓴웃음을 지은 박근혜가 이명박의 말을 막았다. 얼굴이 굳어져 있다.

“누구한테서 차기를 보장받는단 말씀입니까?”

“누군 누굽니까? 바로 저 아닙니까?”

눈을 가늘게 뜬 이명박이 박근혜를 노려봤다. 이명박의 얼굴도 굳어져 있다. 그 표정으로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저하고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든지, 그래서 명실 공히 2인자가 돼 차기 대권을 쥐시든지 그럴 의향이 없으시다면.”

다시 심호흡을 한 이명박이 똑바로 박근혜를 봤다.

“이 방을 나가신 즉시 탈당해주시지요. 예, 친박계 의원들하고 말씀입니다.”

“아니, 지금….”

박근혜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만 묻는다. 말끝이 떨렸다.

“그 말, 진심이세요?”

“진심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요.”

어깨를 편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나하고 고락을 함께하면서 자연스럽게 차기를 보장받든가, 아니면 추종 세력과 함께 떠나시라는 말씀입니다. 임기가 4년 반이나 남았는데 도저히 이런 식으로는 장사, 아니 국정을 운영 못 합니다. 이해 가십니까?”

이명박의 눈이 치켜떠졌고 어느덧 얼굴은 상기됐다.

이원호

레임덕은 없다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2014’ 등이 있다.




주간동아 2012.03.26 830호 (p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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