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9

2012.03.19

서울 아이들의 서울 생각 들어보실래요?

컴필레이션 음반 ‘Seoul Seoul Seoul’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3-19 11: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서울 아이들의 서울 생각 들어보실래요?
    이촌향도가 한창이던 1960∼70년대 대중음악은 대부분 고향을 소재로 했다. ‘서울 드림‘을 꿈꾸고 상경했지만 성공은 소수의 몫이었고, 다수는 도시 정글에서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살았던 시대다(물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꿈에서나마 달래고, 구슬픈 노랫가락에 위로받던 시절이다.

    서울은 찬양의 대상이었다. 1948년 발표한 현인의 ‘럭키 서울’, 1969년에 나온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는 20여 년의 시차를 뒀지만 한결같이 서울을 찬양할 뿐 어떤 소회도 담지 않았다. 그저 시대의 상징으로 서울이 등장할 뿐이다. 고향이 오직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 건 1980년대 후반이다. 88서울올림픽이 있던 해 조용필은 ‘서울 서울 서울’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모두가 건국 이래 초유의 잔치를 예찬할 때 조용필은 그 잔치가 끝난 후의 스산함을 노래에 담았다. 같은 시기 그룹 ‘동물원’은 2집 ‘혜화동’을 통해 서울에서의 성장을 노래했으며, 3집 ‘시청앞 지하철역에서’를 통해 서울의 일상을 그렸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어떤 날’의 ‘취중독백’ 역시 그들이 나고 자란 서울에 대한 소회를 다뤘다. 1960년대 전후에 태어난 이들에게 서울이란 고향이자 성장의 터전이며, 일상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일부 트로트 계열의 곡을 제외하고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가요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도 그즈음부터다.

    많은 시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서울의 지난 20년은 말 그대로 격변의 시간이었다. 강남·북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가 삶의 주된 형태가 됐다. 63빌딩 부럽지 않은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섰다. 청계고가가 철거되고 피맛골이 사라졌다. 자그마한 단독주택에 살며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는 연립주택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재개발 아파트에 사는 어른이 됐다. ‘시골’은 부모님의 고향이자 조부모가 살고 있는 곳일 뿐, 더는 자신의 고향이 아닌 세대가 문화의 주요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된 것이다. 그런 ‘서울 아이들’의 음악을 담은 컴필레이션 음반이 나왔다. 바로 ‘Seoul Seoul Seoul’.

    27개 팀 뮤지션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 서울이라는 거대한 욕망의 도시는 구석구석 속살을 드러낸다. 이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은 서울토박이에서부터 음악을 위해 상경한 이들까지, 그리고 1960년대 후반 태생에서부터 1980년대 후반 태생까지 스펙트럼도 넓다. 그리고 각기 다른 위치에서 저마다 다른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느끼고 말하고 싶었던 서울에 대해 얘기한다. 각자의 음악 방식으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서울사람’은 고향을 등지고 올라온 이들의 사연이다.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을 수밖에 없는 도시 서민의 얘기는 그 옛날 고향을 그리워하며 상경한 이들의 후일담일 것이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다시 가 보니 흔적도 없네’는 멈춤 없는 재개발로 유년 시절의 기억을 박탈당한 도시 아이들의 속내를 담았으며, 오소영은 ‘매일 떠나는 여행’에서 대학 진학과 함께 상경했으나 여전히 낯설기만 한 서울의 삶을 노래한다. 압구정이 번화가가 되기 전, 그리고 그 후에도 강남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이태원의 새벽 모습은 ‘모임별’의 ‘빛으로 만든 도시’로 살아나고,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뮤지션들의 천국 구실을 하는 낙원상가의 풍경은 ‘바비빌’의 ‘낙원상가’에 배어들었다. 김목인은 ‘열정의 디자이너에게’를 통해 철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서울의 디자인 정책에 항의하며, ‘아폴로 18’은 ‘Sex, Eat Or Under Lives’에서 서울을 잔혹한 정글로 표현한다.

    서울 아이들의 서울 생각 들어보실래요?
    이런 얘기가 한데 모여, 1500만 명이 사는 도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음악적으로 박약했던 서울이 마침내 음악적 지리지를 얻은 셈이다. 이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든 지금 서울의 모습이 ‘Seoul Seoul Seoul’에 담겼다. 여기 있는 스물일곱 곡의 노래 가운데 당신이 생각하는 서울은 어떤 곡일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한 명의 ‘서울 아이’로서.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