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4

2012.02.13

조국 그리며 가슴으로 부른 통일의 노래

북한이 버린 천재 음악가 정추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2-02-13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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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그리며 가슴으로 부른 통일의 노래

    구해우ㆍ송홍근 지음/ 시대정신 펴냄/ 208쪽/ 1만 원

    불운한 시대를 만난 비운의 작곡가 정추(89)를 아는가. 정추의 삶은 파란만장 그 이상이다. 식민지 조선의 소년으로 살다 사회주의자가 됐고 혁명국가 건설에 일조하겠다면서 38선을 넘었다. 그곳에서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하다 고난의 삶을 기꺼이 끌어안았다. 한국 근현대사의 수많은 고통과 시련, 통일조국 건설에 대한 소망이 그가 작곡한 음악이 됐고 삶이 됐다.

    2009년 3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선 ‘정추 헌정 기념 음악회’가 열렸다. 통일조국을 그리면서 작곡한 ‘내 조국’을 웅장하게 연주했다. 분단된 두 조국에게서 버림받은 그의 회한과 통일에 대한 절절한 염원이 사람들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정추의 인생과 그가 만난 내로라하는 남북한의 문화·예술계 인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중 한 명인 구해우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겸임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조국은 그에게 많은 고통과 질곡의 삶을 안겼지만,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열정을 한평생 식히지 않고 불태워왔다. 조국을 향한 그의 열정은 톈산의 만년설도 누그러뜨릴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인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정추처럼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극적인 인생, 그것도 매 순간 역사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조국을 사랑하고자 했던 삶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 민족의 고통과 희망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자 한 정추의 삶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957년 10월 17일 모스크바대 광장에 서 있었던 ‘청년 정추’의 외침은 쩌렁쩌렁했다.



    “북한에 김일성 숭배가 있다는 게 사실 아닌가. 소련에서도 스탈린을 격하한다. 독재는 마르크스 사회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정추는 모스크바 유학생을 규합해 김일성 우상화 반대 시위를 벌이다 배신자로 낙인찍혀 북한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살지만 북한에서는 반체제 인사로, 한국에서는 월북 인사로 규정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정추는 차이콥스키 4세대 제자로 선정될 만큼 음악적 재능이 탁월했다. 세계 3대 음악원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졸업 작품인 ‘조국’은 음악원 사상 첫 만점을 받았다. 당시 소련이 1961년 성대하게 주최한 ‘가가린 쾌거 축하 공연’에서 연주된 ‘뗏목의 노래’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유리 가가린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한 소련 출신 우주인이다. 카자흐스탄 음악 교과서에는 그의 작품 60여 곡이 실렸다. 1991년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카자크 공화국 공훈 문화인’ 칭호도 받았다.

    조국애가 강한 정추는 평생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부르는 고려인의 노래 1000여 편을 발굴해 하나하나 악보에 옮겼다. 한국 전통 음계를 사용한 곡도 다수 작곡했다.

    이 책은 정추가 일본의 한글말살정책에 맞서 한글사전 편찬에 진력했던 장지영 선생에게 중국어 과외를 받은 이야기, 현제명 선생이 운영하는 음악학원에서 벌어진 일화, 어린 시절 형 정준채가 무용수 최승희 공연에 감동했다가 훗날 북한에서 다시 만난 최승희와 함께 영화를 만든 사연 등을 실었다. 또 북한에서 숙청 바람이 불게 된 원인인 흐루쇼프와 김일성 면담 일화를 당시 촬영기사였던 이진환의 증언을 통해 들려준다. 이 밖에 소설가 이태준 숙청 등 문화·예술계 인사의 ‘월북 그후’도 담았다.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조국을 뜨겁게 끌어안았던 정추의 선율은 감동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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