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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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삶에서도 늘 섬세한 ‘그’

곁에서 본 문재인의 매력…원칙과 정도 지키는 모습 ‘즐거운 발견’

  • 박선원 전 청와대 통일안보전략비서관 sunwon_park@hotmail.com

    입력2012-02-13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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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한 삶에서도 늘 섬세한 ‘그’

    2007년 9월 18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청와대라는 곳은 험하다. 각박하고 숨 가쁜 긴장감이 늘 가득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전략기획국장’이라는 무거운 타이틀을 달고 이라크전쟁과 2차 북핵 위기, 늘 가파른 비탈길에서 뒤로만 넘어가려는 것처럼 보이던 한미관계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러저런 문제를 겪던 필자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문재인은 맑았다. 2003년 이른 봄, 청와대 경내를 넓은 보폭을 자랑하듯 성큼성큼 걷는 문재인의 얼굴에서 느껴진 것은 수양이 잘된 사람의 품격이었다. 격무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그의 얼굴엔 언제나 미소가 넘쳤고 눈매엔 따스함이 묻어났다. 언젠가 그는 이 무렵 치아가 빠질 정도로 체력적 한계에 시달렸고, 수면 부족으로 대화 중에도 고개가 꺾일 만큼 쏟아지는 잠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그런 중에도 ‘왕수석’ 문재인의 표정이 늘 맑고 부드러웠다는 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하지만 즐거운 발견이다.

    ‘또 한 사람의 노무현’

    비서실장 시절 그는 매일 아침 수석비서관과 선임비서관을 모아 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 쏟아지는 공격과 매도에 대응하는 상황점검회의라는 게 애당초 유쾌한 자리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큰 소리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언제나 낮고 다정다감한 목소리였다. 반대로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타협하거나 돌아가는 법도 없었다. 원칙과 상황에 부합하는 근본적인 방향을 도출하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필자의 눈에 그는 곧 ‘또 한 사람의 노무현’이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많은 사람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문재인을 ‘재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정서적 울림이 돼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대를 만들었다. 2009년 늦가을 미국 워싱턴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제 한국의 진보진영은 끝났다. 이명박 정부를 적절히 고무·격려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면 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당시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초빙연구원으로 일하던 필자는 그들에게 문재인의 존재를 소개했다. “다음 한국의 대통령선거에서 지역과 여성, 젊은 층의 표심을 흔들 수 있는 숨은 보석”이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진보는 사라진 게 아니라 잠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에 돌아온 뒤 평소 존경하던 어른 세 분께 미국인들과 토론했던 보고서를 드렸다. 양산자택에 찾아가 문재인 이사장에게도 “워싱턴 정가에 이사장님을 상장시켰다”며 영문 보고서를 전달했다. “2012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하고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시간이 부족해 진척시키지 못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 순간 반짝하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만 2년여가 지났다. 그가 대통령 후보감으로 여론조사 수위에 오른 것을 보며 필자는 어떤 경이로움을 느낀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선이 분명한 인생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 그가 바로 문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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