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3

2012.02.06

‘부러진 화살’ 흥행 돌풍에 사법부 화들짝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2-02-06 13: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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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러진 화살’ 흥행 돌풍에 사법부 화들짝
    187만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2주차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 ‘부러진 화살’의 기세가 심상찮다. 영화가 흥행 조짐을 보이자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은 ‘부러진 화살’이 “흥행을 염두에 둔 예술적 허구며, 1심에서 이뤄진 각종 증거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항소심의 특정 국면만을 부각시켜 전체적으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곧이어 양승태 대법원장도 영화 흥행으로 사법 불신 정서가 확산되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사법부의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도가니’에 혼쭐난 경험이 있는 사법부는 ‘부러진 화살’ 열풍을 조기 차단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다루는 내용은 단순하다.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였던 김명호 씨가 대학을 상대로 낸 교수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담당 부장판사를 찾아가 석궁으로 보복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법원은 명백한 ‘사법 테러’로 규정하지만 많은 국민은 ‘사법 불신’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긴다.

    이 사건의 재판 과정을 발로 뛰며 명쾌하게 정리한 책 ‘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을 펴낸 르포작가 서형은 “대한민국 판사들의 실력과 수준, 그 우스꽝스러움에 맞서는 돈키호테의 무모한 도전”으로 볼 수 있는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법 집행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실증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법의 판결이 “출제 오류를 지적한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역할”은 포기하고 오로지 “사법부와 법관의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특권 의식”만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헌법의 풍경’(교양인)을 펴낸 검사 출신 법학자 김두식 교수(경북대)는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가 특권 계급이 돼 법과 시민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통렬히 고발했다. 한 온라인 매체는 이 책을 “법학 분야에서 글쓰기 방식을 바꾼 최초의 책”이라고 평가하면서 ‘2000년대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2009년에도 학연, 지연, 혈연을 중시하고 여러 관계를 삶의 가장 중요한 준거점으로 삼아 특권 의식, 서열 의식, 연고주의 등으로 각종 법조비리를 만들어내는 ‘사법부 패밀리’에 ‘불멸의 신성가족’(창비)이라는 이름을 붙인 책을 냈다. 책에서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검사와 판사와 변호사 세 사람이 있으면 누가 돈을 내는가? 20대 판사가 법대에 앉아 있고, 30대 검사가 공소유지를 담당하며, 40~50대 변호사가 변론을 하는 현실”에서 말이다. 전관예우, 청탁, 평판에 따라 ‘선출되지 않은 최고의 권력’인 사법부 엘리트 계층의 운명이 달라지는 현실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수 있을까. 변호사에게 사건을 물어다주는 브로커가 신성가족의 제사장 구실을 하며 소송료의 30% 정도를 챙기기까지 하니 결국 ‘거절할 수 없는 돈’과 ‘거절할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문제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부러진 화살’ 흥행 돌풍에 사법부 화들짝
    또한 “재래식 똥간에 들어가 똥이 머리까지 찬 상태에서, 가끔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숨 한 번 내쉴 때도 있지만, 편안하게 지내려면 그 안에 들어가서 그냥 입에까지 똥이 들어가는 편이 나은” 생활이라는 한 판사의 표현도 소개하고 있다. 사법 불신의 원인은 누구보다 사법부 패밀리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영화 흥행에 지레 놀라 ‘사법 정의’를 외쳐대는 ‘초현실주의적 부조리극’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58년 출생.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학교도서관저널’ ‘기획회의’ 등 발행. 저서 ‘출판마케팅 입문’ ‘열정시대’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베스트셀러 30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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