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0

2012.01.09

이탈리아가 연금체계 도끼질 하는 이유

정년 연장과 연금개혁 갈등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01-09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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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요,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잖아요?”

    2010년 10월 프랑스는 ‘연금개혁법’을 놓고 사회갈등이 극에 달했다. 연금개혁의 골자는 기존 60세던 정년을 62세로 연장하고,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늦추는 것. 법안에서 청년들이 문제 삼은 것은 정년 연장 대목이었다. 2009년 프랑스 실업률은 8.2%였으며, 그중 15∼24세 청년실업률이 21.2%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더욱이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보지 못한 청년이 전체 청년 백수의 40%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법안이 통과돼 현역 근로 세대의 정년이 연장되면 젊은이의 취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에 생존에 위협을 느낀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정년 연장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현역 근로자 또한 법안을 저지하려고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정년을 연장해주겠다는 데 뭐가 불만인지 프랑스 노동자들이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프랑스의 노후 사회보장 수준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국민연금 외에 별다른 노후대책이 없는 우리나라 근로자는 조금이라도 더 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안달이다. 하지만 노후 사회보장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진 프랑스 근로자는 연금을 받아 느긋하게 인생을 즐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데 일을 더 하라며 정년을 연장하고,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2년이나 늦춘다니 화가 날 만도 하다. 기득권인 그들로서는 ‘더 많이 일하고 덜 받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연금개혁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는 청년과 장년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연금개혁을 왜 단행해야 했을까. 다름 아닌 재정적자 때문이다. 만일 프랑스가 기존 연금제도를 그대로 뒀다면 재정적자 규모가 2030년 700억 유로, 2050년 1000억 유로에 이르게 된다. 재정적자는 결국 미래 세대에게 부담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 역시 정년 연장과 연금개혁에 앞장서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일본은 이미 2004년 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기존 60세던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기업들은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 도입, 정년제도 폐지 중 하나를 선택해 2013년까지 65세 정년을 지켜야 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벌써 직원 수 31명 이상 기업의 96.6%가 셋 중 한 가지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

    이탈리아가 연금체계 도끼질 하는 이유
    2011년에는 일본 국민연금의 재정상태가 악화하면서 후생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8∼70세로 상향 조정하자는 법안이 상정됐다. 후생성은 2000년에도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2013년도부터 3년에 1세씩 올려 남성은 2025년, 여성은 2030년까지 65세로 만드는 개혁안을 확정한 바 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베이비부머라 할 수 있는 ‘단카이(團塊·1947∼49년 출생)’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더 높이는 법안이 제출된 것이다. 법안은 비록 고령자에 대한 고용대책 없이 연금 수령 개시 연령만 상향할 수는 없다는 반대에 부딪혀 부결됐지만, 노인대국 일본의 연금 재정적자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최근 남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을 두고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정책에 주목하는 이가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남유럽 위기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인 95.7%다. 이는 그리스 은퇴자들이 일하지 않고 놀면서 현역 시절 월급과 비슷한 수준의 연금을 받는다는 의미다. 스페인(81.2%)과 이탈리아(64.5%)도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평균(60.6%)을 훨씬 상회한다. 소득대체율이 높다는 것은 경제활동인구의 은퇴자 부양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따라서 남유럽국가들은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열쇠를 연금개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가 연금체계 도끼질 하는 이유
    오래 일할수록 많이 받도록

    “우리는 (연금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심리적으로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고… 요구합니다.”

    2011년 12월 4일 이탈리아 복지부 장관 엘사 포르네로(64)는 기자들에게 연금개혁에 대해 설명하던 중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경제학자로서 복지부 장관에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이 같은 발표를 해야 하는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 옆에 있던 마리오 몬티 총리가 포르네로의 말을 이어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중심에서 이탈리아를 구해내려면 국민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이탈리아 정부는 ‘잘못된 연금체계에 도끼질을 했다’는 표현을 쓸 만큼 연금개혁의 강도가 세다. 현재 남성 65세, 여성 60세인 은퇴 연령이 2012년부터 66세와 62세로 높아지고, 여성의 은퇴 연령은 2018년까지 66세로 조정된다. 은퇴 연령이 연장된 만큼 연금 수령 개시 시기도 늦춰진다. 조기에 은퇴하면 연금이 깎이고 70세까지 일하면 혜택이 많아진다. 연금산정 기준도 퇴직 당시 임금이 아니라 근로연수로 바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퇴직 연령에 접어들고 있다. 반면, 저출산 등의 여파로 경제활동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식의 연금제도는 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으니 지금 상황에 맞지 않다. 만약 은퇴자들이 기존 연금제도가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개혁을 미루면, 국가부채는 커질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미래 세대가 떠안아야 한다. 자기만 살겠다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꼴이다.

    이탈리아가 연금체계 도끼질 하는 이유
    지금 한국의 고령화는 유럽이나 일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고령화는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유지되던 국가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지 모른다. 노령인구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지면 정치, 경제, 사회, 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연령대 균형이 무너진다. 세대 간 균형이 급격히 무너져 갈등이 심화되는 곳이 바로 일자리와 연금 부문이다. 갈등 해결의 실마리는 포르네로 복지부 장관이 울먹이며 말하고자 했던 ‘희생’이 아닌가 싶다.

    *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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