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0

2012.01.09

꾹, ‘모바일 투표’…민주당 혁명전야

1월 15일 지도부 경선 ‘표심의 반란’ 예고…시민이 권력 창출 공감대 확산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2-01-09 0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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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갖고 계신 휴대전화를 꺼내주세요. 1666-0101을 눌러주세요…. 잘 들으셨죠. 이제 선거인단에 참여해주세요.”

    1월 15일 실시하는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 나선 한명숙 후보는 웅변조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 대신 휴대전화를 매개로 한 경선 참여 독려에 더 큰 노력을 쏟는다. 휴대전화로 전화(1666-0101)를 걸면 “2007년 대선 때 제가 최초로 제안했던 ‘모바일 투표’가 이번 경선에 도입돼 기쁘다”는 한 후보의 음성이 나오고, 문자메시지로 한 후보와 관련한 홍보 메시지가 도착한다. 메시지에는 선거인단 신청을 할 수 있는 메뉴도 포함됐다.

    민주당이 새 지도부 경선에 참여한 선거인단 스스로 투표 방식을 현장 투표와 모바일 투표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이후 시민 선거인단 참여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1월 5일까지 민주당에 선거인단으로 등록한 시민이 40만 명을 넘어섰고, 이들 가운데 모바일 투표를 선택한 비율이 90%를 넘는다.

    정창교 정치컨설턴트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모바일 투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의지는 있지만 시간 제약 등으로 참여를 꺼렸던 시민까지 가세해 선거인단 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시민 선거인단이 크게 늘자, “민심이 반영된 지도부 선출로 새 지도부는 폭넓은 국민 지지를 받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선거인단 수가 대폭 증가하면서 후보들의 선거운동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조직 선거의 위력이 감소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1인2표제를 활용하려는 합종연횡도 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도부 경선에 나선 후보들이 전국 유세를 통해 조직 구축에 열을 올렸다면, 이번 경선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모바일 선거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시민 선거인단 90%가 “모바일 투표”

    시민 선거인단이 많아지면서 후보자 간 희비도 엇갈린다. 한 선거 전문가는 “선거인단이 많아지면 당원 사이에서 인기 있는 후보보다 국민이 좋아하는 후보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다”며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문성근 후보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박영선 후보 등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초 민주당 지도부 경선은 친노 세력의 지원을 받는 한명숙 후보와 구(舊)민주계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박지원 후보의 양자 대결구도 가능성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시민 선거인단의 참여가 폭발하면서 모바일 표심이 변수로 등장했다.

    특히 민주당 통합 과정에 합류한 사회단체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대표하는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리란 분석이 많다. 시민 선거인단 중에는 YMCA 회원과 한국노총 조합원이 수만 명씩 집단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YMCA사무총장 출신 이학영 후보와 민주노동당 대변인 출신 박용진 후보의 선전 가능성을 제기하는 이유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 출신으로 민주당 최고위원을 맡았던 이인영 후보도 모바일 투표 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얼마 전 타계한 김근태 상임고문의 직계인 데다, 지도부 경선 판도를 바꿀 주축으로 떠오른 2040세대와 당심을 이을 적임자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부산의 한 지역위원장은 “1인2표를 행사하는 선거인단은 한 표는 당대표로 밀고 싶은 후보를 찍고, 다른 한 표는 미래를 보고 투표한다”며 “후보 가운데 거부감이 가장 적은 이인영 후보가 이번 경선에서 파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도부 경선 판도를 뒤바꿔놓을 만큼 파괴력이 큰 모바일 투표가 당내 경선에 도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 때도 부분적으로 도입한 바 있다. 정창교 정치컨설턴트는 “2007년 대선 때는 후보 간 경선 룰 합의 과정에서 모바일 투표에 대한 이견이 커 제한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에는 지도부 경선에 폭넓게 적용하므로 모바일 투표의 위력을 실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 선출에서도 위력 발휘할 듯

    2007년 대선 경선 때 모바일 투표가 빛을 발하지 못한 이유는 반영 비율이 30%에 불과해 경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선 후보 경선에서 모바일 투표에서 1위를 기록한 손학규 후보는 전체 선거인단 경선에서는 2위에 그쳤다. 그러나 1월 15일 치러지는 경선에서는 모바일 투표 비율이 대의원 투표 비율 30%보다 2배 이상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표 참여가 편리하다는 점에서 모바일 투표율은 획기적으로 높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선거인단에 신청한 국민선거인단은 168만840명이었고, 모바일 선거인단은 23만8725명이었다. 외형상 현장 투표를 신청한 선거인단이 7배 이상 많았다. 그러나 실제 투표한 인원은 일반 선거인단이 27만2169명, 모바일 투표 17만9083명이었다. 모바일 선거인단 투표율이 75%로, 일반 선거인단 투표율 16%보다 5배 가까이 높았다.

    해외에서도 모바일 투표나 모바일 참여가 활성화하는 추세다. 2011년 총선에서 세계 최초로 모바일 투표를 도입한 에스토니아는 젊은 층의 높은 관심을 받았던 개혁당이 중앙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투표율도 62%에 근접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2007년 대선 때 모바일을 통해 소액 다수 후원금 모금에 나섰고, 310만 명으로부터 후원금을 거둬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1월 15일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 모바일 투표가 당내 권력지도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모바일 투표로 시민이 당 지도부 선출에까지 개입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정당정치의 주체는 명실상부하게 당원에서 시민으로 바뀌었다. 또한 모바일 투표는 12월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영향력과 위력이 더 커질 전망이다. ‘참여하는 시민이 권력을 만든다’는 국민주권의 의미를 모바일 투표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국민 공감대가 점차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바일 투표 혁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정당의 책임정치가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선후보는 물론 당대표 선출에까지 모바일 투표 등을 실시해 시민 참여의 문호는 넓어졌지만, 정작 투표권 행사 이후 시민들이 당 운영에 개입할 수단과 방법은 여전히 없기 때문이다.

    1월 15일 모바일 투표 등 시민 선거인단의 참여로 들어설 민주당 새 지도부는 모바일 투표 혁명의 성패를 가늠해볼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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