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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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주유소 알고 보니 ‘허풍주유소’

주유소 업계 반발하고 정유사들 난색… 정부는 유류세 논란 피해 가기 엉거주춤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12-12 10: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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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뜰주유소 알고 보니 ‘허풍주유소’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도입하려 하자 주유소 업계는 생존권 위협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기름값이 올랐으니 돈 많이 벌었느냐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끓습니다.”

    12월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주유소에서 만난 김모 대표는 “고유가로 돈을 번 것은 주유소 사업자가 아니라 정부”라며 반박했다. 고유가는 원유값 인상과 환율 상승, 높은 유류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긴 현상인데, 마치 주유소 사업자가 고유가의 주범인 양 매도하는 게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알뜰주유소 같은, 주유소 사업자를 고사(枯死)시키는 정책만 내놓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국 곳곳에 주유소가 너무 많아 일부는 정리해야 해요.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는 곤란하고 자연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가뜩이나 매출이 줄어 힘든데 제발 (정부가) 우리를 가만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습니다. 부탁이에요.”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이후 관련 부처에선 기름값을 잡는 데 다걸기(올인)를 했다.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장관은 “정유사 기름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며 고유가의 주범으로 정유사를 정조준했다. 결국 업계 1위 SK에너지가 ‘3개월간 ℓ당 100원 인하’ 카드를 꺼내들었고, 나머지 정유사도 잇따라 인하했다. 그러나 주유소와 유류 도매사업자들이 인하분을 마진으로 대부분 흡수해 소비자가 느끼는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나마 한시적인 인하 기간이 끝나자 7월부터 기름값은 제자리를 찾았다.

    대량 구입으로 기름값 인하



    11월 3일 정부는 고심 끝에 올해 7월 발표했던 대안주유소 도입 방안을 구체화한 ‘알뜰주유소’ 카드를 내놓았다. 즉,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가 정유사들로부터 기름을 대량으로 사들여 구입 단가를 낮춘 뒤 이른바 알뜰주유소(농협주유소, 주유소 상표가 없는 자체 브랜드 주유소, 한국도로공사가 허가해준 고속도로 주유소 등)에 저렴하게 기름을 공급한다는 것이다(그림). 여기에 셀프 주유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고 사은품도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주유소 전반의 가격 인하를 선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은 시작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현대오일뱅크가 “알뜰주유소 입찰에 불참하겠다”며 발을 뺀 데 이어, 나머지 정유사도 정부와 공급 가격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11월 15일 입찰은 유찰됐다. ℓ당 최소 50원 이상 낮춘 공급가를 원하는 정부 측과 더 낮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정유사가 팽팽히 맞선 것이다.

    더욱이 주유소 업계가 ‘생존권 위협’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기존 풀 주유소가 아닌 알뜰주유소에만 싼값에 기름을 공급하면 일반 자영주유소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주유소 사장은 “정부가 가격경쟁을 부추기면 영세 사업자는 망할 수밖에 없다. 10%를 위해 90%를 죽이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회원사들의 격앙된 분위기를 반영하듯 1차 입찰이 유찰되자 한진우 한국주유소협회장과 정유사별 자영주유소협의회 대표들은 각 정유사 본사를 찾아가 알뜰주유소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한편, 정부와 정유사를 상대로 동맹휴업 같은 실력 행사도 불사하겠다며 강한 압박에 나섰다.

    알뜰주유소 알고 보니 ‘허풍주유소’
    12월 8일 재입찰도 유찰

    정부는 비록 첫 번째 입찰은 유찰됐지만 재입찰을 통해 알뜰주유소에 석유제품을 공급할 정유사를 선정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첫 번째 입찰에서 낙찰되는 경우가 드문 만큼 한두 번 유찰되는 것은 큰 흠이 아니라는 것. 지경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입찰에 정유사들이 전혀 참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격에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향후 협의 과정을 통해 낙찰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지경부의 낙관적인 기대와 달리 12월 8일 알뜰주유소의 공동구매 재입찰 또한 유찰됐다. 이번에도 정부가 제시하는 가격과 정유사가 원하는 가격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처음 입찰에 참가했을 때도 마진을 포기하고 최저 가격을 제시했다”며 “더 가격을 낮추는 것은 출혈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재입찰을 추진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알뜰주유소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정부 측의 조급함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심지어 업계 일각에선 정부가 재입찰에 앞서 물밑 접촉을 통해 일부 정유사에 입찰 가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이에 지경부나 농협중앙회 측은 “경쟁 입찰을 원칙으로 하는데 사전에 입찰 참가자를 만나서 가격 조정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전면 부인했다.

    더군다나 보도자료를 내고 대대적으로 알렸던 첫 번째 입찰 때와 달리 이번 재입찰은 은밀하게 이뤄져 여론의 빈축을 샀다. 재입찰을 주관한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주유소 업계의 반발도 거세고 또다시 유찰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알뜰주유소 추진이 나쁜 일도 아닌데 논란이 되다 보니 최대한 조용하게 진행하려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번 재입찰마저 유찰되면서 정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외국산 휘발유 수입이 현실화될지도 관심거리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이 한국산 석유제품을 사가는 형편인데 과연 그곳에서 수입할 물량이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환경품질기준이 달라 수입이 어려우며, 미국과 러시아까지 눈을 돌린다 하더라도 물류비와 기타 부대비용을 고려하면 결코 싼 가격에 사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알뜰주유소 추진이 난항에 빠지면서 유류세 인하 같은 근본적인 기름값 낮추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또다시 힘을 얻는다. 기름값을 ℓ당 2000원으로 가정했을 경우 개별소비세,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지방주행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명목의 세금이 50%가량을 차지한다. 세금을 건드리지 않고 알뜰주유소나 대형마트의 자영주유소를 통해 기름값을 낮추려는 발상 자체가 임시방편적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11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법심사소위원회에서 오제세, 최규성 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유류세율 인하 방안은 정부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유류세 인하가 기름값을 낮추는 데 큰 효과가 없을뿐더러 기름값에서 세금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점이 반대 논리의 근거였다. 당시 논의 과정에서 정부 측은 “고유가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만큼 유류세를 낮출 것이 아니라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고유가 행진이 이어지지만 알뜰주유소 재입찰마저 유찰되면서 ‘백약이 무효’가 된 상황이다. 일단 정부가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 형식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관측되지만, 과연 얼마만큼 싼 값에 기름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의 기름값 인하 방안이 갈수록 꼬여가면서 서민이 느끼는 체감고통지수는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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