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0

2011.10.31

국가가 소멸시효 운운 바람직한 태도인가

공권력 피해 소멸시효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1-10-31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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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소멸시효 운운 바람직한 태도인가
    최근 대법원은 1991년 선임병들의 집단 구타를 견디지 못하고 부대에서 자살한 사병 유족에게 6100여만 원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재판부는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시효가 소멸하지만, 진상 규명이 이뤄지기 전까지 원고가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먼저 군생활 중인 사병이 자살한 경우, 그에 대한 구제 제도를 살펴보자. 유족은 일반적으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거나 국가배상을 받길 원한다. 그러나 전자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다만 유족이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면, 계속되는 가혹행위나 부대의 관리 소홀로 자살했다고 판명된 경우 손해배상액의 20∼30%를 국가가 배상하도록 판결한다. 사병이 자살한 것에 대한 국가 책임을 20∼30%로 보는 것이다. 위 판결 사례의 경우에도 20% 정도의 배상액이 6100여만 원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핵심 쟁점은 소멸시효에 관한 판단이다. 소송을 제기해 진정한 권리자임이 확인됐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로 패소한 사례를 들어봤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멸시효는 일정 기간 계속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시간이 경과해 어려워진 증거보전으로부터 구제하며,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법적 보호에서 배제하려고 인정한 제도다.

    일반인 간의 소멸시효 기간은 10년이며,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5년이다. 그러나 이 사례의 경우 20년이 지나 행사한 국가배상 청구에 대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국가의 주장에도 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 권위주의 정권 시절 공권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취지에서 과거사정리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했다. 그 결과, 공권력에 의한 피해 사례들이 밝혀졌고, 그 유족이 뒤늦게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미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소멸시효가 쟁점이 됐다. 소멸시효는 그 진행이 정지되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원고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를 지녔던 경우나, 채권자 보호 필요성이 크고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그러하다.



    이번 사례의 경우, 군이라는 공권력이 모든 정보를 독점했기 때문에 유족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최근 위의 사례 외에도 유사한 취지의 판결이 있었다. 그리고 법원은 그 장애사유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자살 원인을 고의로 은닉하려고 증거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실을 은폐했거나 유족에게 허위 사실을 알려준 경우”를 제시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나 반인륜적 범죄로 인한 피해배상의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논의가 있었다. 과거 군과 정보기관 등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을 진실 규명한 경우, 국가가 소멸시효 운운하면서 그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태도로 보인다. 그 진실을 명백히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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