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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죽으라 강요, 이게 무슨 실용정부냐”

남북경협 기업 실태조사 보고서 입수…5·24봉쇄조치로 한국 170억 달러 손실 추정

“우리만 죽으라 강요, 이게 무슨 실용정부냐”

“우리만 죽으라 강요, 이게 무슨 실용정부냐”

경기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 검문소.

“북한에서 육로를 통해 모래를 반입했다. 사업 중단 3년째다. 실용주의 정부라는데, 북한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실용주의인가. 일이 이렇게 됐는데도 통일부 국장 하나 보지 못했다. 상생을 표방한다면서, 상생은커녕 우리만 죽으라 한다. 사람 다 내보내고 2명 남았는데, 통일부는 몇 명을 줄였는가. 정치적 이유로 손실이 발생했을 때 보상해준다고 했으면 보상해줘야 하지 않나. 김길태만 살인자냐, 통일부도 살인자다.”(남북경협 사업자 A씨)

“바지락은 한국 수요 90%가 북한산이었다. 북한산 바지락 품질이 우수하다. 가격 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가 남북경협에서 실용주의를 한 번이라도 한 적 있나. 한국 기업이 떠난 자리에 유럽 기업이 들어왔다. 정부가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기업을 죽이는 정부는 처음 봤다. 북한은 타격받은 것이 없다. 우리는 정부가 없는, 사회의 고아나 마찬가지다.”(남북경협 사업자 B씨)

올해 1월 19일 북한에 투자한 기업가들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이하 외통위) 남경필 위원장과 점심을 먹으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이들은 “5·24조치는 북한을 압박하는 실효성은 별로 없고, 한국 기업인만 죽인다”고 주장했다. 5·24조치란 사람이 굶는데도 선민은커녕 선군을 외치며 대남 도발을 일삼는 김정일 집단을 압박하려고 지난해 5월 발효한 대북봉쇄정책이다.

남 위원장은 이들에게 “국회 차원에서 의견을 내놓으려 한다. 북한이 받은 피해가 얼마인지, 남한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 비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외통위는 1월 25일~3월 25일 남북경협 기업을 상대로 피해 실태조사를 벌였다. 넉 달 동안 조사 결과를 분석한 최종 보고서가 8월 초 나왔다.

‘주간동아’가 이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남경필 위원장’ 명의로 작성한 보고서 서문은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5·24조치가 남북경협 기업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대외교역량 변화를 봤을 때 정부가 의도한 만큼 북한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 5·24조치의 대북 압박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남북경협 기업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는데, 죽지 않고 마지못해 산다. 어렵다는 표현이 사치스러울 만큼 죽거나, 죽어가고 있다.”

“우리만 죽으라 강요, 이게 무슨 실용정부냐”
남경필 위원장 “돌이킬 수 없는 피해”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북한 내륙 진출 기업 △금강산 진출 기업 △위탁 및 임가공 사업자 △교역업자는 “사망선고를 받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빈사지경”(보고서 서문 중)이다. 내륙 진출 기업은 평양 일대, 개성 인근에 투자하거나 공장을 세운 업체를 가리킨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상당수는 불황 무풍지대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활황이지만, 개성공단에서도 5·24조치로 고생하는 기업이 있다. 뒤늦게 개성공단에 진출해 안착하지 못한 상황에서 회오리를 맞은 곳이다.

대북 봉쇄 정책으로 한국과 북한 가운데 누가 더 손실을 봤을까. 보고서는 2008~2010년 한국이 북한보다 더 큰 손실을 봤다고 분석했다. 북한 손실을 8억8400만 달러, 한국 손실을 170억6200만 달러(간접효과 포함)로 추산했다. 또한 한국에서 일자리 8만7224개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다(표1, 표2 참조). 보고서는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로 국가신인도 하락, 중장기적 통일비용 증가 같은 손실도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남북경협 단절로 기업이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으로 평양 및 내륙지역(58.6%)을 꼽았다. 개성지역(29.3%), 금강산지역(11.1%)이 뒤를 이었다. 안동대마방직 김정태 회장은 전 재산을 잃고 빈털터리가 됐다. 평양공장에 1500만 달러(170억 원)를 투자한 그는 “방직기술로 북한 동포를 돕고 싶었는데, 다 끝난 것 같다. 정부는 바보짓 그만하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권이 과한 게 많았다. 과거 정권이 만들어놓은 북한의 나쁜 습관은 고쳐야 한다. 이번 정권이 그 일을 하겠다는 건 참 잘한 일이다. 성숙하게 기다렸으면 북한이 고개 숙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자존심밖에 안 남은 놈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긁어대니, 자존심이 긁힌 쪽은 반발한다. 대통령이 실용적으로 잘할 줄 알았다. 애석하고 안타깝다. 바보 같은 짓을 했다.”

향후 사업계획과 전망을 묻는 질문엔 “완전 중단 상태로 향후에도 재개 불가”라고 응답한 업체가 12.3%, “일시 중단 상태로 향후 재개 계획”이라고 밝힌 업체가 66.3%로 나타났다.

A사는 1998년 11월 금강호 출발 때부터 북한에서 사업을 했다. 금강산지구에서 맥주 및 관광기념품을 제조했다. 2006년부터 준비한 ‘금강산 맥주’ 사업은 준비 기간을 마치고 사업을 시작할 무렵인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이 막히면서 중단됐다. 금강산 관광객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제작한 기념품은 재고로 쌓였다. A사 관계자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한국에서 판매할 수도 없다. 금강산 현지와 한국에 제품이 쌓였다. 사업장, 기계, 설비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재사용이 어렵다. 맥주 생산 설비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했다. 한국으로 가져올 수도 없는 처지다.”

고용 감축 수준은 20% 정도라고 밝힌 곳이 가장 많았다. 금강산 진출 기업은 100% 가까운 고용 감소가 나타났다. 보고서는 “관광 중단 기간이 3년에 달해 고용을 축소해도 기업 운영이 어려운 데 기인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금강산 진출 기업의 업체당 평균 손실액(2008~2010년)은 39억2000만 원으로 나타났다(표3 참조).

“우리만 죽으라 강요, 이게 무슨 실용정부냐”
납북경협 단절 조치가 북한을 압박하는 데 실효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매우 실효성이 있다”고 응답한 업체가 5.8%,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다”고 밝힌 기업은 16.2%다. 설문에 응한 기업 가운데 22%가 실효성이 있다고 평가한 것. 반면 실효성이 없거나, 전혀 없다고 평가한 기업은 62.4%에 달했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15.6%다(그림1 참조).

경협 단절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업종은 섬유·의복·가죽 산업(32.4%)으로 나타났다. 농수산물(24.6%), 비금속·광물·1차 산업(5.6%), 반도체·전기·전자 제조업(5.6%), 음식료 제조업(4.5%)이 뒤를 이었다(그림3 참조). 단, 개성공단 입주업체는 5·24조치에도 생산량이 늘었다.

물류업체 B사는 2001년부터 인천-남포 항로에 선박을 투입했다. 2008년 4월부터 선적량이 급감했다. 외통위 실태조사에서 B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적자가 누적해 직원 수를 줄였다. 경협 중단으로 피해보는 것은 한국이다. 북한은 빈 공간을 중국이 채워주면서 피해를 입지 않고 있다. 중국 업체가 북한에 진출하면서 한국 기업이 다시 들어갈 여건도 좋지 않은 실정이다. 현재의 농수산물 가격 오름세와 교역 중단이 연결된다고 본다. 결국 국민이 2차 피해를 보는 셈이다. 특히 위탁가공, 교역업체가 입은 손실이 심각하다.”

C사는 북한 내륙지역에서 라이터를 생산했다. C사 관계자의 하소연.

“우리만 죽으라 강요, 이게 무슨 실용정부냐”
우리 국민과 교역업체만 당하는 꼴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금융비용 부담이 증가했다. 직원 임금을 50% 삭감했다. 우리 회사와 관계를 맺고 사업을 추진하던 북한 회사 가운데 5·24조치 이후 중국 기업을 들어오게 해 사업을 진행하는 곳이 있다. 다시 사업을 시작하면 비용이 더 들겠지만 북한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우리를 받아들일지가 문제다.”

남북교역에 종사해온 D사 관계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남북교역 전면 중단으로 800여 개 교역업체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종업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임금이 밀리고,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참고 견딘 것은 정부 정책에 혼선을 빚어선 안 된다는 애국심 때문이었지만, 북한으로의 현금 유입 차단이라는 효과는 실현하지 못했다. 남한에 수출하던 상품을 중국에 수출해 북한으로 현금이 계속 들어가고 있다. 북한산이 중국으로 수출된 뒤 중국산으로 둔갑해 한국에 비싼 가격으로 들어온다(중국 업자 이윤+추가 유통비+관세). 국민이 두세 배로 높은 가격에 소비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북한으로의 현금 유입은 그대로인데, 이익은 중국인이 얻고 피해는 우리 국민과 교역업체가 끌어안는 것이다.”

남북교역을 하는 E사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교역업체가 북한에서 반입하는 품목은 서민 물가와 직결되는 농수산물이 대부분이었다. 교역 중단으로 시장 물가, 식당 밥값이 올랐다. 북한 물품을 취급하던 도매업체가 정상 거래를 못하면서 유통업체도 피해를 보고 있다. 남북농림수산물협의회는 5·24조치로 유통업체, 소포장, 물류 종사자 34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정한다. 지역별로는 인천, 강원 속초시가 입은 피해가 가장 크다.”

외통위는 1017개 북한 진출 기업 가운데 통일부를 통해 연락처를 확보한 829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가운데 연락처가 정확한 곳은 610개. 보고서는 통일부가 경협 기업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일부의 경협 기업 관리 목적이 기업 활동 지원보다 통제에 있다 보니 기업은 가급적 통일부와 거리를 두려 한다. 또한 통일부도 기업을 잘 찾지 않는다. 경협 기업 관리 부실은 통일부가 그동안 어떤 자세와 의지로 남북경협 업무에 임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통위가 구성한 실태조사단은 연락처를 확보한 610개 업체와 최소 3차례씩 접촉하고 설문지를 보냈다. 설문에 응하겠다고 밝힌 493개 업체 가운데 154개만 실제로 조사에 응했다. 보고서는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만 죽으라 강요, 이게 무슨 실용정부냐”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실태조사니 뭐니 해서 통일부, 상공회의소, 학계에서 조사를 해갔지만 애로를 풀어주기는커녕 ‘왜 이런 식으로 답변했느냐’는 추궁을 받은 기업도 있었다. 이런 불신이 조사 참여를 막은 원인이다. 피해 조사에 응했다는 이유로 향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업체가 적지 않았다.”

외통위는 경협 기업을 전수조사해 전체 피해 금액을 파악하고자 했으나 계량화에는 실패했다. 보고서는 154개 업체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와 그중 14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대면조사를 거쳐 작성했다. 보고서 결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5·24조치는 남북경협 기업인에게 큰 타격인 데 반해, 북한에는 큰 손실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업인 사이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치로 이해되고 있다. 유예기간 없는 갑작스러운 교역 중단으로 발주한 물량마저 확보하지 못해 손실을 입었으며, 기업의 존립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는 입법기관으로서 남북경협이 외부 요인에 지배받지 않도록 법을 제정·개정해 본연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또한 국회 차원의 대북정책 거버넌스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도 살인자다” 절규

남북경협 사업자를 상대로 한 조사라는 점에서 보고서에 담긴 실상이 과장됐거나 비틀어졌을 소지를 배제하긴 어렵다. 또한 5·24조치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 북한 도발이 원인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이 희생당한 미증유의 일을 덮고 넘어갈 수 없는 데다, 북한은 막무가내식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대북정책이라는 큰 줄기에서 일부 기업, 기업인의 고통을 곁가지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정부가 없는, 사회의 고아나 마찬가지다” “통일부도 살인자다”라는 절규는 아프다 못해 슬프다. 납북경협 기업인은 대북 진출을 장려하던 지난 정권 시절에 정부 정책을 믿고 북한에 투자한 이들이다.

남 위원장은 남북경협 기업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 조사에 근거해 작성한 최초, 유일의 보고서라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5·24조치로 납북 간 교류, 협력이 전면 중단됐다. 남북경협 기업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국회를 찾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인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정부와 대책을 논의했지만 정부의 의견은 미온적이었다. 5·24조치로 남북경협 기업이 입은 피해 규모와 실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통일부를 비롯해 남북경협 기업의 절규를 들어야 할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 외교통상통일위원장으로서의 고뇌와 한계도 담겨 있다. 대결과 일방통행식 남북관계는 민족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보고서가 남북경협 발전의 작은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주간동아 2011.08.16 800호 (p22~25)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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