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6

2011.07.18

‘베이징 야망’ 싣고 고속鐵, 新실크로드 달린다

중국, 징후 노선 개통 대혁신의 출발점 삼아…동아시아 허브 목표 ‘거미줄 프로젝트’ 본격 가동

  • 리초판·심페이순 싱가포르 무역산업부 미래그룹 연구위원 번역 | 부승찬 연세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baramy1001@naver.com

    입력2011-07-18 11: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베이징 야망’ 싣고 고속鐵, 新실크로드 달린다
    최근 개통한 중국의 징후(京濠) 고속철도(베이징-상하이)는 ‘떠오르는 중화 경제’의 상징이다. 동부연안 주요 거점도시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든 총 길이 1318km의 이 철도는 2020년까지 건설할 예정인 4종(縱)·4횡(橫) 거미줄 고속철도망 프로젝트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이보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 정부가 일본,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를 모두 연결하는 중국 중심의 대륙횡단 고속철도망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이징이 그리는 이 거대한 고속철도망은 과연 중국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영문 계간지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 2011년 봄호에 실린 해외 전문가의 기고를 번역, 게재한다.

    여객기에 필적하는 속도로 운행할 수 있는 고속철도는 이미 아시아에서 운송 르네상스시대를 열 만큼 새로운 실크로드 구실을 한다. 중국은 최고시속 350km에 달하는 고속열차를 상당수 보유했는데, 특히 상하이 자기부상열차(Maglev)는 시속 431km로 운행 가능하다. 이러한 중국의 고속철도망은 미래에 두 가지 대혁신을 예고한다. 하나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국내 고속철도망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주요 국가들과 중앙아시아를 잇는 대륙횡단 고속철도망 구축 계획이다.

    대륙횡단 철도망 구축 거대한 꿈

    물론 중국의 모든 도시가 고속철도망 구축 계획에 포함된 것은 아니다. 일본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고속철도망에 속한 도시가 철도망에서 배제된 곳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향유하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졌다. 중국의 고속철도망이 아무리 방대해도 이러한 경제적 집적효과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고속철도망이 전국을 대도시권역으로 통합하는 도시집중화 현상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전국이 일일생활권에 속하면 중국 국내시장은 사실상 하나로 통합될 것이다.

    유럽 전문 연구기관들은 고속철도망 구축에 따른 경제적 성과가 국가 전체로 확산되지 못한 채 특정지역에 편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인접지역 간 경제 수준 차이가 심한 경우 고속철도망 연결은 이를 더욱 강화하는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며, 경제활동이 몇몇 역동적인 대도시에 집중하면서 중간 규모 도시는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예상 수혜 지역은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분야에 강점을 가진 대도시다. 교육, 금융, 비즈니스 서비스, 미디어, 연구개발 등의 인적 자원이 한데 모여 이익을 창출하는 분야가 발달한 기존의 거대 거점도시는 그 위상이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주장(珠江), 창장(長江) 삼각주와 보하이(渤海) 연안 대도시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망이 국가 경제 성장의 중심을 연안에서 내륙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고속철도 노선 선정은 이러한 요인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내륙 고속철도망 구축 계획을 들여다보면 중국 정부의 이 같은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오른쪽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속철도망을 통해 창사(長沙)-우한(武漢)-정저우(鄭州)-스자좡(石家莊) 같은 도시를 노선 끝에 자리한 베이징이나 홍콩의 도시군(群)에 연결하려는 복안이다. 항저우(杭州)-난창(南昌)을 상하이와 창사, 정저우-시안(西安)-바오지(寶鷄)를 쉬저우(徐州)와 란조우(蘭州)에 연결하는 노선도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대도시와 연결한 내륙 회랑은 앞으로 중국 경제의 성장거점으로 부상할 지역이 어디인지와 관련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선을 좀 더 큰 틀로 바꿔보자. 중국은 주변국과의 무역 인프라 구축이라는 거시적 목표를 위해 아시아 대륙 전체를 횡단하는 고속철도망 건설을 추진 중이다. 미얀마나 파키스탄 같은 인접 국가와 추진하는 고속도로, 항만, 공항, 석유 및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과 같은 맥락으로, 이를 통해 대체에너지 공급 루트를 개척하고 새로운 무역로를 구축해나가는 한편 소외됐던 내륙지역의 경제적 활로도 모색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대륙횡단 고속철도망을 완성하면 중국은 명실공히 아시아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현재 중국이 계획하는 대륙횡단 고속철도 노선은 모두 4개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를 관통해 유럽까지, 남쪽으로는 아세안을 관통해 싱가포르까지 이어진다. 먼저 우루무치(烏魯木齊)-중앙아시아 노선은 서부 도시 우루무치를 출발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거쳐 독일까지 연결한다. 중국 서부지역 발전과 중앙아시아 천연자원 획득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위해 구축하는 노선인 셈이다. 다음으로 하얼빈(哈爾濱)-러시아 노선은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을 출발해 몽고를 관통한 뒤 시베리아와 유럽까지 연결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2010년 11월 러시아, 벨로루시와 고속철도망 연결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쿤밍(昆明)-중동 노선은 쿤밍에서 미얀마, 방글라데시, 북인도, 남부 파키스탄을 지나 이란의 테헤란까지 연결한다는 계획이며, 이는 향후 영국 런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이 이미 말라카 해협을 우회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미얀마를 경유하는 상당 규모의 인프라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다만 인도가 중국 고속철도의 자국 통과를 허용할지가 아직 분명하지 않은 까닭에 이 노선은 중간에 끊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쿤밍-아세안 노선은 쿤밍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연결한다. 이와 함께 쿤밍에서 미얀마를 통과하는 구간과 쿤밍에서 라오스를 경유하는 구간 등 2개의 간선도 추진하고 있다. 당초 베트남은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하노이와 호치민을 고속철도로 연결하려 했지만 비용 증가로 중단했으며, 그 대신 중국이 나서서 더욱 저렴한 방식의 고속철도망 계획을 베트남에 제안한 상태다. 태국 역시 방콕과 라오스를 연결하는 노선을 포함해 4개의 국내 고속철도 노선 구축사업에 중국의 기술과 운영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베이징 야망’ 싣고 고속鐵, 新실크로드 달린다
    장밋빛 비전 실현의 어려움

    대륙횡단 고속철도 계획과 별도로 중국의 동북부(산둥-웨이하이 경유)와 한국(부산 경유), 일본(후쿠오카 경유)을 연결하는 해양횡단 고속철도 구상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노선을 구축하는 데는 기술이나 자금 문제가 아닌 지정학적 고려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동북아 3국을 고속철도로 연결하는 일이 해당 국가 사이의 세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손익계산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한 고위관료는 “해양횡단 고속철도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프로젝트 개시까지는 수십 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노선을 구축한다면 향후 동북아 경제 통합이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중국의 고속철도망 구축 계획이 장밋빛 비전을 실현해내려면 몇 가지 장애물을 돌파해야 한다. 먼저 재래식 철도에 비해 3배 이상 비싼 건설비다. 미얀마 등 일부 국가는 중국이 대륙횡단 철도 건설비를 지원해주면 리튬 같은 자원 교역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지만, 성사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검역이나 출입국관리, 세관절차와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적잖은 조율이 필요하다.

    더욱이 중국의 고속철도 사업은 아직까지 이익을 내지 못한다. 이용자의 대폭 증가에도 모든 노선이 운행 첫해에 적자를 면치 못한 것이다. 베이징-톈진 노선의 경우 운행 개시 후 2년 동안 4100만 명 이상을 운송했지만 수익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최근에는 모든 노선에서 매년 이용자 수가 3000만 명 이상이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고, 연 4000만 명을 돌파해야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나온다.

    ‘베이징 야망’ 싣고 고속鐵, 新실크로드 달린다
    예상을 뛰어넘는 변화 닥쳐올 듯

    또한 중국이 대륙횡단 고속철도망 구축을 위해 주변 국가의 건설사업에 진출할 경우, 이전에 합작투자를 진행하던 서구 기업과 지적재산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세계 철도장비 시장의 65%를 차지하는 캐나다의 봄바르디에, 프랑스의 알스톰, 독일의 지멘스, 미국의 GE가 그들이다. 중국은 이들 기업과의 합작을 통해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합작법인 관계는 종료된 상태. 이미 중국 업체들은 국제 입찰시장에서 서구 기업과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들이 중국을 상대로 고속철도 기술 관련 지적재산권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국가 간 고속철도는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슈다. 베트남, 러시아, 인도는 모두 자국 영토 중심까지 중국의 고속철도가 연결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품고 있다. 대륙횡단 고속철도가 중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급속도로 강화하면 역내 국가 사이의 힘의 균형에도 변화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변국의 시선 때문에 대륙횡단 고속철도 구축이 좌초할 경우 부분적으로 연결한 철도망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분명한 점은 고속철도망 구축이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는 중국의 변화를 훨씬 극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사실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고속철도가 인구나 주택 증가에 끼친 영향이 미미했던 것과 달리, 중국의 고속철도 구축은 급속한 도시화나 막대한 노동력 이동, 운송망 혁신 등 다른 경제 구조 변화와 동시에 추진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혁의 흐름이 서로 맞물려 상승효과를 일으킬 때의 파급력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까닭이다. 고속철도망이 만들어갈 중국과 동아시아의 미래는 오늘날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수도 있다.

    *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 문제 전문의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 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 하에 아시아 지역의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의 공론장 구실을 담당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