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5

2011.07.11

“저비용 항공사 키우면 항공요금 반값 가능”

인천-나리타 취항 이스타항공 이상직 회장

  • 도쿄=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1-07-11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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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비용 항공사 키우면 항공요금 반값 가능”
    일본 도쿄로 가는 값싼 하늘길이 열렸다. 비즈니스 석이 없다. 기내식도 내지 않는다. 티백 커피, 농심 새우탕면컵, 냉동 건조 비빔밥을 2000~5000원에 판다. 한마디로 거품을 빼고, 가격을 낮췄다. 승무원 유니폼은 메이드 인(made in) 동대문일 정도.

    7월 1일 이스타항공이 인천-나리타 노선에 취항했다. 왕복 19만9000~52만 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보다 30%가량 저렴하다. 19만9000원 항공권은 ‘미끼 상품’. 매일 1회, 주 7회 운항한다.

    7월 1일 나리타공항에서 열린 기념행사. 일본 언론이 이상직(48) 회장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LCC(Low cost carrier·저비용 항공사)는 일본에서 생소하다. 신주쿠 힐튼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 항공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다. 초기 투자 비용도 많다. 왜 뛰어들었나.

    “현대그룹에 입사해 현대증권에서 일했다. 정주영 회장의 경영 철학에 감명받았다. 울산에 조선소, 자동차 공장을 왜 지었겠나. 미래를 보고 투자한 것이다.”



    “항공산업 규모 계속 커질 것”

    그는 이스타항공을 2007년 10월 26일 설립했다. 2009년 1월 7일 김포-제주 노선에 정식 취항했다.

    ▼ 고유가, 글로벌 경제위기 등 악재가 많았다. 한성항공이 삐걱거렸고, 영남에어는 부도났다. 레드 오션이란 말도 나왔다.

    “먹고살기 어렵더라도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 항공산업은 커진다. 저비용 항공사가 각 대륙에서 시장점유율 1위다. 한국, 중국, 일본만 독과점을 유지한다. 한성한공, 영남에어가 쓰러지면서 누구도 진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그때가 기회라고 봤다.”

    김포-제주 노선의 저비용 항공사 점유율은 2008년 16.8%에서 2010년 46.9%로 높아졌다. 승객 2명 중 1명이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한 것이다. 이스타항공의 지난해 김포-제주 노선 점유율은 19%.

    “승객 70명 타는 프로펠러 비행기로 시작한 게 한성항공 실책이었다. 보잉 737-NG 도입을 우리가 선도했다.”

    한국에 터 잡은 저비용 항공사로는 이스타항공, 제주항공, 티웨이항공(옛 한성항공)을 비롯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자회사인 진에어와 에어부산이 있다.

    그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독과점 혜택을 누리는 반면 소비자는 그만큼 손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친서민, 동반성장을 강조한다. 인천-나리타 노선을 우리에게 내준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본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저비용 항공사에 노선을 내줄 수 있다. 대한항공이 김포-하네다 항공요금을 80만 원씩 받는다. 나랏돈으로 지은 김포공항이 귀족 공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롯데그룹이 김포공항에 호텔을 짓는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를 운영한다. 국민을 위해 지은 시설에서 대기업이 부가이익을 가져가는 기형적 구조다.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하는 서민도 김포공항에서 중국, 일본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정치권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잡을 수 있다.”

    ▼ 초기엔 고생이 많았겠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여행사에 우리와 거래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는다. 공정위(공정거래위원회)가 이따금 두 항공사에 벌금을 부과하지만, 그들은 공정위 벌금을 교통신호 위반 범칙금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벌금 내고, 안 고친다. 5월 5일 우리가 인천-삿포로 정기편 운항을 시작했다. 대한항공이 곧바로 진에어를 투입했다. 그러곤 여행사에 압력을 넣고 있다. 삿포로를 여행한 사람은 그간 바가지를 쓴 셈이다. 독과점 폐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뒤집어쓴다.”

    “저비용 항공사 키우면 항공요금 반값 가능”

    7월 1일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열린 취항 기념 행사.

    ▼ 심판이 휘슬을 공정하게 불지 않는다는 건가.

    “소비자가 ‘소비자 운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정부 혹은 항공사에 목소리를 높이면 노선을 배정받을 때나 여행사와 거래할 때 불이익을 당한다.”

    그는 ‘로 프라이스(Low price)’라는 표현이 아니라 ‘로 코스트(Low cost)’라는 수사를 강조했다. 대한항공 승무원 유니폼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잔프랑코 페레가 디자인했다. 이스타항공은 사회적 기업 ‘참 신나는 옷’에 제작을 의뢰했다. 1970년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했던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박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말했다시피 항공요금에 거품이 많은 것은 독과점 탓이다. 몽골에 대한항공만 들어간다. 비행거리 대비 요금이 얼마나 비싼가. 대한항공이 몽골 정부에 로비해 노선을 획득했다. 소비자 처지에선 손해 아닌가. 여럿이 함께 취항하면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그것이 공정한 사회 아닌가. 한국은 정유, 통신, 항공 같은 민생과 직결한 사업을 독과점 형태로 영위한다. 바로잡아야 한다.”

    “김포공항 저비용 항공사에 개방해야”

    ▼ 저비용 항공사가 자리 잡으면 항공요금을 반값 아래로 낮출 수 있나.

    “그렇다. 정부가 국민이 선호하는 노선을 저비용 항공사에 배분하는 것만으로도 원가가 떨어진다.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항공요금을 낮출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저비용 항공사가 얼라이언스를 맺으면 원가가 더욱 낮아진다. 전략적으로 저비용 항공사를 육성해야 할 측면도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이 독과점에 안주할 때 호주, 말레이시아의 저비용 항공사가 아시아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정부가 적지 않은 구실을 했다. 잘한 일이다. 항공시장이 저비용 항공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느리게 움직이면 결국 먹힌다. 김포공항 문호를 저비용 항공사에 개방하면 3년 내에 항공요금을 지금의 반으로 낮출 수 있다. 김포공항은 매력이 가득하다. 김포공항을 귀족 공항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 인천공항 지분 매각을 비롯한 공항 민영화 정책은 어떻게 보나.

    “절대 반대다. 공항은 공공시설이다. 외국자본이 주주이익을 강조하면서 승객에게 비용을 전가할 것이다.”

    7월 1일자 신문에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채 조종간을 잡으려던 이스타항공 조종사를 음주단속에서 적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지난해 10월엔 대한항공 조종사, 지난달엔 아시아나항공 조종사가 음주단속에 걸렸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전례가 없었다면 매를 더 맞았을 것이다.

    ▼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날로 끝이다. 메이저 항공사가 저비용 항공사의 안전을 문제 삼는다.

    “저가 항공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게 그들이다. 우리는 저가 항공사가 아닌 저비용 항공사다. 바가지 씌우는 고가 항공사가 언론에 소스를 제공해 저비용 항공사의 문제점을 대서특필하게끔 한다. 저비용 항공사는 아직 입지가 약하다. 안전에 문제가 생기면 한 방에 비즈니스 모델이 사라진다.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비행기 수가 적어 오히려 안전관리에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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