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5

2011.07.11

자존심 건 항공 화물운송 전쟁

대한항공, 캐세이패시픽에 1위 내줘 … “이젠 서비스 질로 승부” 패러다임 전환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7-11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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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심 건 항공 화물운송 전쟁

    캐세이패시픽 항공(왼쪽)은 중국의 수요 증가에 힘입어 대한항공(오른쪽)을 제치고 국제화물운송 부문 1위에 올라섰다.

    매년 6월이면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세계 항공수송 통계를 내놓는다. 그동안 대한항공은 이때마다 표정관리를 하기 바빴다. 국제화물운송 부문에서 6년간 내리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항공편당 수송 톤수에 비행거리를 곱한 값의 합계로 산출하는 FTK(Freight ton-kilometers)는 항공사의 수송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수다.

    1985년부터 19년 동안 부동의 1위를 차지한 독일 루프트한자의 아성을 무너뜨린 대한항공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대한항공 임직원은 “한국 기업 중 제조업이 아닌 물류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기업은 대한항공이 처음”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6월 21일 발표한 IATA의 ‘2010년 세계 항공수송 통계’에서 대한항공은 홍콩의 캐세이패시픽항공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영업이익 1조 원 사상 최대 실적

    비록 2위로 내려앉았지만 대한항공의 실적이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난해 수송량은 전년 대비 15.3% 증가한 94억8700만FTK를 기록했다. 이런 실적에 힘입어 대한항공은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은 수송량이 전년 대비 24% 급증한 95억8700만FTK를 기록하면서 대한항공을 1억FTK 차이로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국제화물운송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항공업계에선 캐세이패시픽항공이 국제화물운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2004대한항공이 처음 1위를 차지했을 때, 캐세이패시픽항공은 4위였지만 수송량은 대한항공에 비해 23억FTK나 뒤졌다. 그러나 매년 순위가 올라가더니 2008년에는 불과 5억FTK 모자란 2위로 발돋움하면서 대한항공을 턱밑까지 추격했다(표 참조).



    캐세이패시픽항공의 부상은 국제화물운송에 대한 수요 증가와 이에 따른 공급 확대 전략이 맞아떨어진 덕이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은 세계 무역의 중심으로 떠오른 중국시장의 국제화물운송 수요를 잡았다. 중국은 지난해 전자제품과 의류 등 각종 상품 수출이 31% 증가했다. 여기에 경제 성장으로 소득이 증가하면서 고가 사치품과 식품 등의 수입도 크게 늘었다. 자국 항공기로는 이처럼 증가하는 국제화물운송 수요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 빈자리를 메우려고 세계 각국의 항공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캐세이패시픽항공의 판정승. 캐세이패시픽항공 본사가 있는 홍콩은 중국 경제의 중심지이자 관문인 광둥성과 맞닿아 있는 지리적 이점을 지녔다. 네트워크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캐세이패시픽항공 관계자는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갖춰 화물운송에도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 허브 전력과 자국기 육성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캐세이패시픽항공이 힘을 받았다. 화물운송에서 나타난 자국 항공기 중심 경향도 캐세이패시픽항공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캐세이패시픽항공이 비록 홍콩 항공사지만 범중국계 항공사다. 중국시장 수요가 늘어도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은 중국 시장 수요에 대응해 공급을 늘리는 데도 성공을 거뒀다. 다른 외국 항공사보다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요가 늘어도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케세이퍼시픽항공은 중국 시장 수요에 대응해 공급을 늘리는 데도 성공을 거뒀다. 미국 보잉사의 점보화물기 B747F는 대한항공이 27대, 캐세이패시픽항공이 24대로 대한항공이 3대 더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화물운송은 화물기뿐 아니라 여객기 화물칸을 통해서도 이뤄진다.

    자존심 건 항공 화물운송 전쟁
    신시장 개척에도 적극 도전

    이런 여객기 기종이 대한항공은 소형인 반면, 캐세이패시픽항공은 중·대형이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은 화물기에서 밀리는 수송량을 여객기 운송을 통해 메웠다. 또한 2010년 신기종을 대거 도입한 데 이어 2012년까지 최신 화물기 B747-8F 10대를 추가로 주문하는 등 항공기 공급에 박차를 가한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이 1위로 올라서자 대한항공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애써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면에선 캐세이패시픽항공의 공격적인 물량공세를 막으려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B747-8F 2대 도입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B747-8F 총 7대, B777F 총 5대를 도입하고 여객기 활용도를 제고해 공급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대한항공이 투자에 참여한 나보이공항 같은 새로운 물류 허브를 지속적으로 찾고 네트워크도 구축해 새로운 화물 수요를 발굴할 계획이다. 2010년 중국과 유럽을 잇는 화물노선을 운항한 데 이어 5월에는 미국과 유럽을 잇는 대서양 노선 운항도 개시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스페인 사라고자에 신규 화물기 노선도 개설했다.

    그러나 당분간 중국을 오가는 화물 운송량이 계속 팽창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양적 승부만으로는 단기간에 뒤집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한항공은 “양적 경쟁을 하기보다 다양한 노하우와 운송 품질 관리가 필요한 서비스 상품 개발 등을 통해 서비스 질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조선업이 1990년대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우뚝 섰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자 대형 컨테이너선, 드릴십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눈을 돌렸던 전략과 흡사하다.

    이를 위해 신시장 개척에도 적극 뛰어들 계획이다. 현재 대한항공이 주목하는 시장은 ‘의약품 운송 전문 상품(Variation Pharma)’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6월 의약품 운송 전문 상품을 재출시했다. 의약품 운송을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최신 특수 컨테이너를 도입하는 등 전면 재정비하면서 시장에서 운송 품질을 인정받았다. 생선, 채소 등을 대상으로 하는‘신선화물 운송 전문 상품(Variation Fresh)’도 내놓았다.

    송유관, 동물, 핵연료 등 다른 항공사가 취급하지 못하는 화물 수송으로 틈새시장 공략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대한항공은 특수화물 수송에서 일인자로 손꼽힌다. 1982년 7월 도쿄에서 쿠웨이트까지 송유관 33개(약 77t)를 1회 운항으로 완벽하게 수송했다. 당시 일본항공과 미국의 플라잉타이거에선 1회 운항으로는 전량 수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품목이었다. 이 밖에도 희귀어류, 운송이 까다로운 악어 등을 성공적으로 목적지까지 운송했다.

    조선,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산업 거의 전 부문에서 한국은 중국 등 후발주자의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이제는 항공운송 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양보다 질’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대한항공의 승부수가 통할지, 향후 치열하게 펼쳐질 화물전쟁의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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