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4

2011.07.04

링컨 암살 누명 법과 정의는 있는가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의 ‘음모자’

  • 신지혜 CBS-FM ‘신지혜의 영화음악’ 제작 및 진행 ice-cold@hanmail.net

    입력2011-07-04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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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프레더릭이다

    그는 군인이다. 남북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친구 목숨까지 구한 영웅이자 조국에 충성을 다한 애국자다. 아름답고 정숙한 그의 연인은 전쟁이 끝나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상류사회에서 자란 그는 무공까지 더해져 따스한 시선과 칭송을 한 몸에 받는다. 그는 멤버십 클럽에서 고위 인사들과 어울린다.

    # 그녀는 메리다

    그녀는 여관을 운영한다. 수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딸과 조용히 산다. 아들은 수개월 전 유명 배우 부스와 친해졌다. 여관으로 부스와 동료들이 자주 놀러와 아들과 오래도록 얘기를 나누곤 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날 밤 울린 한 발의 총성. 링컨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런데 대통령 암살에 그녀가 연루됐다는 것이다.

    링컨 암살 누명 법과 정의는 있는가
    # 그는 프레더릭 에이컨이다



    그는 변호사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랑하는 애인, 친구들과 클럽에서 유쾌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들려온 대통령 서거 소식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북군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해 링컨 대통령과 조국을 위해 용맹하게 싸운 그에게 대통령 서거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다. 그런데 그에게 더 큰일이 생긴다. 존경하는 의원 한 분이 그에게 메리의 변호를 맡긴 것. 대통령 암살을 주도한 부스 일당이 근거지로 삼았던 여관의 주인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암살 모의 용의자인 메리를 변호할 수 있단 말인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하는 그에게 의원은 말한다. “어떤 사람이든 재판받을 권리가 있으며, 변호받을 권리도 있다”고. 그리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배웠던 내용을 떠올려보라고, 그럼 변호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 그녀는 메리 서랫이다

    그녀는 대통령 암살 모의에 가담한 용의자다. 하지만 “그런 음모에 가담한 적 없다”고, “그런 무서운 일에 가담한 적 없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그녀는 단지 아들이 부스와 친했을 뿐이며, 부스가 동료를 몰고 와 비밀 회합을 몇 차례 가진 사실 외에는 아는 바가 없고, 또 들은 바도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기 며칠 전 아들은 어디론가 떠나 종적을 감췄다. 그녀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이미 암살 모의 가담자로 낙인찍혀 사형 집행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녀 앞에 27세 젊은 변호사가 나타난다.

    링컨 암살 누명 법과 정의는 있는가
    # 이것은 실화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대통령이 된 링컨.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링컨. 그가 한 발의 총탄에 세상을 떠났을 때 유명 배우였던 부스와 일당이 체포됐고, 그들은 대통령 암살죄로 처형됐다. 그 가운데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메리 서랫이다. 영화 ‘음모자’는 이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역사를 바꾼 한 사람의 진정성이 지닌 힘을 차분하면서도 면밀하게 그린다. 북군의 영웅인 에이컨 변호사. 변호사로는 새내기인 그는 서랫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서랫의 변호를 맡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자신이 재판에서 이기면 대통령 암살 모의 용의자를 구해내는 것이기에 득이 될 리 없다. 재판에서 진다면 변호사로서의 능력이 폄하될 테니 이 역시 득이 될 것이 없다. 불리한 조건이지만 그는 ‘자신이 배운 대로’ 서랫의 변호를 맡는다. 그런데 서랫의 행적을 좇다 보니 마음이 점점 무죄 쪽으로 기운다. 음모에 가담한 것은 서랫의 아들 존 서랫. 아들이 어딘가로 사라져 그 죄를 고스란히 어머니가 덮어쓴 것이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범죄를 저지르고 음모에 가담한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그 죄를 어머니가 덮어쓸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무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에서 서랫의 유죄를 확정해놓고 진행하는 분위기라 에이컨의 노력은 아무런 결실도 거두지 못한다. 한 사람을 유죄로 단정해놓고 형식적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일이다. 내키지 않는 변호를 억지로 맡았지만, 이제 에이컨은 한 사람의 인권을 위해, 한 사람의 진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런 그를 압박할 뿐이다. 친구들도, 애인도 서랫에 집착하는 에이컨을 이해하지 못한 채 등을 돌린다. 결국 그는 사교계에서도 퇴출당한다.

    에이컨은 아들이 음모자임을 밝혀 어머니를 살리려 하지만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강렬한 모성은 그것을 거부했고, 에어컨의 온갖 노력에도 결국 서랫은 처형된다. 아들과 목숨을 바꾼 어머니. 그 어머니의 마음은 헛되지 않아 수개월 뒤 자수한 아들은 여러 정황이 참작돼 풀려난다. 그리고 법과 재판에 대한 규정도 바뀐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뒤 에이컨은 변호사 자리를 버리고 막 창간된 ‘워싱턴포스트’의 초대 사회부장이 된다.

    # 감독은 로버트 레드퍼드다

    수려한 외모에 뛰어난 연기력으로 배우로서 명성을 날린 로버트 레드퍼드는 1980년 ‘보통사람들’로 감독으로 데뷔하며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는 가족을 다뤘다. 부모의 편애, 그것이 불러온 마음의 상처. 레드퍼드는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에 속지 않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 및 관계를 세밀히 그려냈다. 그의 이런 작풍은 ‘흐르는 강물처럼’ 등의 수작으로 이어져 인간관계와 사랑, 특히 가족관계와 가족애를 무척 잘 그리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사형당한 서랫. 그녀의 인권과 무죄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음모자’였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사형을 해야 한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벌이는 군사재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크다. 또한 한 사람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력했던 한 변호사의 얘기는 우리 마음을 크게 울린다. 레드퍼드 감독의 진실한 마음이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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